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2026-06-30 17:54:36
30일 그랜드 조선 부산에서 열린 영상물등급위원회 창립 60주년 특별 포럼. 한양대학교 미디어학과 박세진 교수가 발표 중이다. 김준현 기자 joon@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존의 규제 중심적이었던 공공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영등위는 30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 그랜드조선 호텔에서 ‘창립 60주년 특별 포럼’을 개최했다. 196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로 출발해 1999년 현재의 체제를 갖춘 영등위는 이번 포럼을 통해 기존의 공공 중심 사전 심의 체계가 직면한 한계를 진단하고 미래지향적인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OTT와 유튜브 등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생성형 AI로 인한 콘텐츠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기존의 수동적 심의 방식으로는 청소년 보호라는 공적 책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실제로 영등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비디오물 등급분류 건수는 1만 3559편에 달한다. 영등위 위원 1인당 연간 800편이 넘는 콘텐츠를 심의해야 하는 물리적 과부하와 더불어 SNS 등 규제 사각지대 콘텐츠가 급증하는 현실이 이번 논의를 촉발했다.
김병재 영등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 포럼이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넘어, 급변하는 콘텐츠 환경 속에서 청소년 보호와 제도 발전의 균형을 모색하는 실질적인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영등위가 과거의 ‘규제자’ 역할에서 벗어나 민간과 협력하는 ‘컨트롤 타워’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영국의 영화등급분류위원회(BBFC)가 시민 1만 2000명의 의견을 반영해 가이드라인을 갱신하는 사례를 들어, 민관 협업 기반의 신뢰 구축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이성민 교수는 “공공의 역할이 단순히 콘텐츠를 사후 차단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며 “수용자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하기 위한 교육적 역할과 정보 제공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 해법으로는 ‘AI 보조 심의’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한양대학교 미디어학과 박세진 교수는 “AI를 통해 데이터와 패턴 중심의 1차 판단을 수행함으로써 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콘텐츠의 맥락과 의미를 해석하는 영역에서는 인간의 고유한 책임과 판단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주제 발표 후 진행된 종합 토론에 나선 영등위 김동진 위원은 실시간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김 위원은 “대규모 유통 데이터 속에서 특정 콘텐츠가 어떤 맥락으로 반복 노출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새로운 위험 구조의 핵심”이라며, “AI를 활용해 유해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등급을 예측하는 시스템 혁신이 제도의 지속성을 담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포럼은 영등위가 향후 60년을 대비해 산업의 자율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