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역사] 쾨페니크 대위 사건(1906.10.16) 外

2009-10-12 10:05:00

1906년 10월 16일 독일 베를린, 보초를 교대하려는 제4근위대 경비병들 앞에 한 대위가 나타났다. 그는 황제의 명이라며 9명의 교대병들에게 쾨페니크로 동행할 것을 명령했다. 쾨페니크는 베를린 외곽에 있는 작은 도시. 병사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상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 쾨페니크로 갔다. 대위는 병사들에게 지시해 쾨페니크 시청을 장악하고 시장과 재정담당관을 체포했다. 죄목은 공금횡령죄. 그리고는 시청 창구에 있는 돈 4천마르크를 받은 후 영수증을 써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석연치 않은 사건의 진상은 몇 시간 후 드러났다. 군대는 진짜였지만 대위는 가짜였던 것. 경찰은 현상금을 내걸고 수사를 벌인 끝에 사건 발생 열흘 뒤에 범인을 검거했다. 뜻밖에도 범인은 57세의 구두수선공이었다. 이름은 빌헬름 보이크트.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25년을 감옥에서 보낸 전과자였다. 14살 때부터 절도, 우편환 위조 등으로 7번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린 상습범이었다.

언론은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제복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획일적인 사고를 질타했다. 독일 군부와 관료사회는 시민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권력을 마음껏 농락한 보이크트는 영웅처럼 받들어졌다. 재미있는 건 황제의 반응. 견고한 군 계급의식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이크트는 황제의 특사로 4년 징역형 중 20개월만 복역하고 풀려났다.

석방된 보이크트는 대위 제복을 입고 도시를 돌며 희가극에 출연해 인기를 모았다. 자신의 사진이 찍힌 엽서와 자서전을 팔아 큰돈을 번 뒤엔 룩셈부르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1922년 숨질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극작가 추크마이어는 희곡 <쾨페니크의 대위>를 작품으로 남겼다.

정광용 기자 kyjeong@


△마산-오사카 정기항로 개설(1923.10.12)

△이집트군, 시리아 침입(1957.10.13)

△대입 예비고사 실시 발표(1968.10.14)

△서울 장애인올림픽 개막(1988.10.15)

△독일 극작가 뷔히너 출생(1813.10.17)

△미국-소련 통신협정 조인(197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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