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봉한 영화 ‘파묘’ 흥행세가 무섭습니다. 지난 21일 기준 국내 누적 관객 수가 95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올해 첫 ‘천만 영화’가 될 공산이 커 보입니다. 극장가에 불어온 봄바람이 반갑습니다.

그러나 봄바람이 불어오면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흥행작이 탄생할 때마다 일어나는 ‘상영관 싹쓸이’ 현상은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시네필에겐 반가울 수 없습니다. 잘 만든 작품이 인기작 흥행세에 묻혀버리는 경우도 잦습니다. 지난 13일 개봉한 ‘랜드 오브 배드’도 그런 작품입니다. 상영관이 적어 무관심이라는 무덤에 묻힐 위기에 빠진 ‘랜드 오브 배드’를 파헤쳐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영화 ‘랜드 오브 배드’. 메가박스 중앙 제공

남중국해 남동쪽 바다인 ‘술루 해’는 필리핀 내 이슬람 반군 세력인 ‘아부사야프’가 활개를 치는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지형이 험난한 ‘홀로 섬’에서 CIA 요원이 납치됐고, 구출 작전에 미 특수부대 군인 3명과 공군 통제관 킨리(리암 헴스워스)가 투입됩니다.

실전경험이 많지 않은 27살 청년 킨리는 사실 ‘티어-원’으로 분류되는 베테랑 군인들과는 ‘급’이 맞지 않는 햇병아리이지만, ‘JTAC’(합동최종공격통제관) 요원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군 항공기의 공격 여부를 결정해 적의 핵심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겁니다.

이번 작전에서 킨리의 역할은 무인정찰기 ‘워호크’ 조종사와 소통하며 정찰이나 타격 등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공군 기지에서 워호크를 조종하는 리퍼(러셀 크로)가 지상팀의 눈과 귀가 되어주면서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영화 ‘랜드 오브 배드’. 메가박스 중앙 제공

드론 활용한 사실적 액션과 역동성…극장 관람에 특화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킨리 팀은 테러 단체와의 전투에 휘말리게 됩니다. 숫자 싸움에서 불리한 킨리 팀은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혼을 쏙 빼놓는 교전을 치르다 킨리는 홀로 고립됩니다. 이제 그는 혈혈단신으로 아군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탈출 지점으로 내달립니다.

윌리엄 유뱅크 감독의 신작 ‘랜드 오브 배드’는 현실적인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돋보이는 밀리터리 영화입니다. 유뱅크 감독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뱅상 카셀 주연의 생존 스릴러물 ‘언더워터’(2020)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언더워터’는 심해에 고립된 소수의 대원들이 괴물을 피해 생존한다는 이야기인데, ‘랜드 오브 배드’의 스토리와 꽤 비슷합니다. 언더워터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상당해 킬링타임으로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랜드 오브 배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밀리터리 영화 관객은 현실적이거나 화려한 액션 신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습니다. ‘랜드 오브 배드’는 이러한 기대를 충족합니다. 다양한 화기가 등장하고, 교전 장면이 사실적입니다. 리얼한 총기 사운드와 재장전 장면 등 디테일에서도 현실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드론 파일럿이 지상의 통제관과 통신하며 정밀 타격을 실행하는 과정을 자세히 고증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특히 폭발 장면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고속으로 촬영한 공대지 폭격 장면들이 역동적이면서도 사실적입니다. 영화 ‘덩케르크’(2017)과 ‘미드웨이’(2019) 제작진이 참여한 만큼, 공중 폭격 신 하나는 믿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극장에서 관람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극 중반부까지는 밀리터리 명작으로 꼽히는 ‘론 서바이버’(2014)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론 서바이버’는 미군 특수부대원 4명이 아프가니스탄 산맥에서 수많은 탈레반을 상대하며 사투를 벌였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입니다. ‘랜드 오브 배드’는 ‘론 서바이버’의 스토리 전개는 물론이고, 실제 작전 수행을 관찰하는 듯 현실적이고 긴박한 액션 장면들까지 쏙 빼닮았습니다.

영화 ‘랜드 오브 배드’. 메가박스 중앙 제공

긴장감 넘치는 연출에 러셀 크로 호연까지…관객들 “상영관 늘려달라”

물론 차별점도 있습니다. 영화가 작전 현장인 밀림과 드론을 조종하는 공군 기지를 오가며 펼쳐져 지루함은 덜어내고 현실감을 더했습니다. 중반부터는 이야기가 더 극적으로 전개되는데, 개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긴장감은 한층 커집니다. 몰입을 유발하는 서스펜스 장치들을 영리하게 활용해 마지막까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드론 조종사인 리퍼의 존재도 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편집증적 성격이 흠이지만 그만큼 원칙을 중시하는 리퍼는 고립된 킨리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참군인입니다. 옳은 일이라고 믿으면 상관에게도 망설임 없이 들이받는 선역 캐릭터가 카리스마를 겸비한 러셀 크로의 열연과 만나니 시너지가 상당합니다. 리퍼가 일면식도 없는 킨리를 살리는 데 혈안이 된 이유를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감정선도 적절히 조절했습니다. 또 한편으론 리퍼가 킨리의 눈과 귀가 되어 적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장면들이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헴스워스의 동생인 리암 헴스워스도 주연으로서 준수한 연기를 펼칩니다. 다만 극적인 표정 연기가 어울릴 법한 몇몇 장면에서의 연기가 아쉽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형제인 루크 헴스워스도 베테랑 군인 캐릭터인 ‘아벨’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메시지도 잊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의 본질은 참혹하고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극장을 나서며 CGV 실관람객 후기를 살피니 하나 같이 호평입니다. 그만큼 상영관이 적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후기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한 관람객은 “너무 재밌게 봤는데 상영관 좀 늘려주세요”라며 “누구 보라고 말해줘도 (상영관이) 없어서 못 본다고 하지 않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이런 평가 덕분일까요? ‘랜드 오브 배드’ 상영관은 실제로 늘어났습니다. 기자가 영화를 예매한 지난 19일만 해도 22일 금요일이 지나면 더 이상 부산에서는 ‘랜드 오브 배드’를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1일 현재 부산 일부 영화관에서 상영관을 늘리며 내주 초까지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부산의 경우 CGV보다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상영관이 더 많으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랜드 오브 배드’. 메가박스 중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