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5-04-10 16:36:48
배우 라미 말렉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에서 미친 연기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렸습니다. 이후 ‘빠삐용’(2019),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 ‘오펜하이머’(2023) 등 굵직한 할리우드 영화에 연이어 얼굴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런 그가 조금은 특이한 킬러 연기에 도전합니다. 지난 9일 개봉한 ‘아마추어’는 얌전한 미국 CIA 암호 해독가가 복수를 위해 킬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라미 말렉의 스파이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작품은 나름의 관람 포인트는 있지만, 제목처럼 ‘아마추어’스러운 부분들도 있습니다.
찰리 헬러(라미 말렉)는 CIA 직원이지만 현장을 뛰어다니는 요원은 아닙니다. 직장인들처럼 정해진 시각에 출퇴근을 하고, 책상에 앉아 모니터 속 자료들을 분석하는 암호 해독가인 그는 킬러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헬러는 이내 ‘흑화’합니다. 런던 출장 중이던 아내 세라 헬러(레이첼 브로스나한)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당한 탓입니다. 분노에 휩싸인 헬러는 자신이 직접 테러리스트들을 죽여버리겠다며 혈혈단신으로 나섭니다.
문제는 헬러의 심성입니다. 킬러로 거듭나기 위해 현장 요원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아보지만, 실제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눌 때 그의 손은 덜덜 떨립니다. CIA 최고 교관인 헨더슨 대령(로렌스 피시번)은 “너는 킬러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습니다.
‘아마추어’의 차별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아내를 잃은 특수요원이 복수를 위해 악당들을 홀로 상대한다는 스토리는 흔해빠졌습니다. 그런데 ‘아마추어’의 주인공은 차마 사람을 향해 총을 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대신 헬러는 천재적인 두뇌로 승부를 봅니다. IQ가 무려 170인 헬러는 해킹, 데이터·영상 분석 등 자신만의 기술과 속성 훈련에서 배운 폭탄 제조법을 활용해 CIA의 추적을 따돌리고 표적들을 제거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헬러는 아마추어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실수를 범하고,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초짜’의 허술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헨더슨 대령의 존재도 긴장감을 더합니다. 표적을 좇는 동시에 헨더슨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헬러의 두뇌 싸움이 극을 이끌어갑니다. 또 헬러를 돕는 조력자, CIA 내부에서의 알력 다툼 등 여러 요소를 통해 몰입을 유발합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연성과 설득력입니다. 현장 경험 없는 직원이 킬러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다소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흐름이 허술하지 않고 설득력이 있어 헬러의 선택과 결정들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이 갑니다.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극한의 긴장감이나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특징과 장점들이 원인이기도 합니다. 총을 못 쏘는 헬러는 폭탄이나 해킹을 활용해 표적들을 제거하는데, 아무래도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나 제이슨 스테이섬의 ‘메카닉’ 시리즈처럼 액션이 폭발하는 장르와 비교하면 밋밋한 느낌입니다.
‘아마추어’는 CIA를 상대하는 요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합니다. CIA 내부에서 간부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비밀 작전을 펼치며 눈치싸움을 벌이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이슨 본’의 폭발적인 액션이 빠져버리니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정쩡해졌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하위스 감독은 “주인공은 제임스 본드도, 제이슨 본도 아니다. 뜻밖의 영웅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었는지는 의문입니다.
헬러의 표적 제거 방식이 엄청나게 치밀한 것도 아닙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전개가 느린 편입니다. 헬러가 킬러가 되는 과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서사를 천천히 쌓아 올리는데, 이 대목이 조금은 지루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막상 표적을 제거할 때는 준비 과정을 대폭 생략하고 실행 장면에만 집중합니다. 대체로 계획한 그대로 일이 술술 풀리니 현실성도 긴장감도 떨어지는 편입니다. 그를 추격하고 압박하는 CIA 측 존재감도 약합니다. 반대로 테러리스트들은 유럽 한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이고도 경찰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수준 높은 범죄자들인데, 정작 아마추어 킬러인 헬러 앞에서는 허술한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의 원작은 로버트 리텔의 동명 소설입니다.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개연성을 갖춘 탄탄한 초반 전개는 인상적입니다. 헬러가 CIA 추격을 벗어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는 장면들에선 번뜩임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라미 말렉의 오묘한 눈빛과 절제된 표정 연기, 로렌스 피시번의 카리스마도 관람 포인트입니다.
제 점수는요~: 65점(100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