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잔치의 황홀경…빛과 색을 쌓다

어컴퍼니의 이수경 ‘팔림세스트’
파리·브뤼셀·서울 오가며 활동

비트리 권용래 ‘빛을 머금다’
스테인레스조각 빛 반사 이용

두 전시 모두 15일까지 진행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4-06-09 14:38:00

이수경 ‘H Lucirole 4’. 어컴퍼니 제공 이수경 ‘H Lucirole 4’. 어컴퍼니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비트리 갤러리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비트리 갤러리 제공

좋은 공연을 추천하거나 맛집 정보를 공유하는 글은 SNS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많은 호응을 얻는다. 좋은 건 함께 나누고 싶다는 선한 마음이 통한 것이 아닐까. 이번 주 막 내리는 두 전시에 대한 미술 기자의 마음이 비슷하다. 이 좋은 전시를 놓치면 아까우니 이번 주 꼭 방문해야 할 곳 목록에 넣길 추천한다.



이수경 ‘S24150 Vert C’. 어컴퍼니 제공 이수경 ‘S24150 Vert C’. 어컴퍼니 제공

우선 파리와 브뤼셀, 서울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동을 펼치는 이수경 작가의 전시가 있다. 해운대 갤러리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팔림세스트(Palimpsest)’전은 2024년 신작 작품으로 꾸몄다.

“팔림세스트는 라틴어로 이미 적힌 글씨를 긁어내거나 씻어내는 행위를 뜻하는데요. 글이 쓰여져 있는 종이 위에 글을 지우거나 긁어내고 다시 다른 글을 덧쒸어 쓰는 거죠. 글과 글이 겹쳐지는 과정에서 풍부한 의미가 발생합니다.”

어컴퍼니 장지영 대표가 제목의 뜻을 소개한다. 작가의 이번 작업은 팔림세스트라는 행위에서 시작됐다. 형태가 있는 그림을 그리고 원하는 부분만 남기고 다시 물감을 덮어 지우고 이 같은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다보면 형태들이 겹쳐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드러난다. 작가는 마지막 형태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순간의 직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영역과 형태가 탄생하는 점이 흥미롭다고 한다.

이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색채와 질감, 형태가 기존 작가들과 굉장히 다른 점이 돋보인다. 색 조합과 보색 대비, 띠의 다발, 선의 굵기를 자신만의 미학으로 창조했다. 여러 번 쌓인 층은 입체감이 생겨 평면 회화와 다른 매력도 있다.

“색깔들로 인해 대조적이기도 하고 두껍게 칠해지며 조형적이기도 하다. 형상들은 서로 어우러지고 부딪치며 함께 존재한다.”

작가의 설명이다. 평면에 쌓인 층들은 반복된 시간, 무한한 율동감과 깊이감을 드러내며 보는 이들을 매혹시킨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선이 다르게 보여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작가는 초기부터 자유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추상 작업을 했고, 직감으로 나온 흔적들이 미학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이수경 ‘팔림세스트’ 전시 전경. 어컴퍼니 제공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이수경 ‘팔림세스트’ 전시 전경. 어컴퍼니 제공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이수경 ‘팔림세스트’ 전시 전경. 어컴퍼니 제공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이수경 ‘팔림세스트’ 전시 전경. 어컴퍼니 제공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이수경 ‘팔림세스트’ 전시 전경. 어컴퍼니 제공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이수경 ‘팔림세스트’ 전시 전경. 어컴퍼니 제공

이번 부산 전시에선 회화 말고 직접 작업한 도로잉 책상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유니크한 색감과 형태가 들어간 가구가 매력적이다. 처음 만들었는데 관람객의 구매 요청이 쏟아져 작가의 가구 시리즈도 곧 시작될 것 같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 열린다. 수~토요일 낮 12시~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용래 작가 전시 전경. 비트갤러리 제공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용래 작가 전시 전경. 비트갤러리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비트리 갤러리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비트리 갤러리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단면 모습. 비트리 갤러리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단면 모습. 비트리 갤러리 제공

남천동 주택을 개조한 비트리 부산에선 권용래 작가의 개인전 ‘빛을 머금다’가 열리고 있다. 권 작가의 작품은 환성적이고 입체적이다. 처음 사진으로 접했을 때는 감흥은 약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보니 연신 “이런 작품도 있군요”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권 작가는 서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빛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물감과 붓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치킨을 먹고 남은 은박지에 반사된 빛의 형태를 발견한다. 지금 작품의 시작이었다.

권 작가는 물감으로 채워야 할 흰 캔버스에 둥그런 스테인리스 조각들을 촘촘하게 꽂는다. 은색의 스테인레스 조각만 사용하기도 하고 노랑 주황 파랑 등 색을 칠한 조각도 있다. 조각이 꽂힌 캔버스에 조명을 넣으면 반사된 오색찬란한 빛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빛과 빛이 겹겹이 쌓여 산수 풍경이 보이기도 하고 시원한 파도가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스테인레스 조각의 크기부터 형태, 꽂는 위치, 색깔, 반사 위치까지 완벽하게 계산해 자신만의 조형미를 최대치로 끌어낸다.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용래 작가 전시 전경. 비트갤러리 제공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용래 작가 전시 전경. 비트갤러리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비트리 갤러리 제공 권용래 작가의 ‘Eternal flame’ 시리즈. 비트리 갤러리 제공

2004년부터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을 활용해 회화와 부조를 융합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조각을 망치로 두들겨 다양한 변주 작품도 내놓고 있다. 스티인레스스틸 조각을 채색하며 오색찬란한 빛을 만들고 있다. 하얀 캔버스 위에 펼쳐진 색 잔치를 보고 있으면 행복한 감정에 빠져든다.

비트리 갤러리 부산점에서는 4가지 색상으로 4가지 공간을 구성해 전시 보는 재미를 더했다. 15일까지 열리며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휴무.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갤러리가 운영된다.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용래 작가 전시 전경. 비트갤러리 제공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용래 작가 전시 전경. 비트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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