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득한 B급 감성에 멀티버스 한 스푼…‘데드풀과 울버린’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2024-07-26 07:00:00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전설로 남은 MBC ‘무한도전’과 KBS 2TV ‘1박 2일’은 사실 ‘컬래버’가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1박 2일’ 나영석 PD와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두 프로그램 멤버들이 함께 출연하는 특집 회차를 연출하는 데 뜻이 통했으나, 양쪽 방송사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세월이 지나 영화계에선 ‘레전드’ 영화들의 협업(컬래버레이션)이 유행입니다. 유수의 배급사와 제작사가 인수 합병되고, ‘멀티버스’ 개념이 도입되면서 인기 영화들의 캐릭터와 세계관이 통합되는 양상입니다. 지난 24일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글로벌 히트를 친 두 캐릭터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빠르게 자연 치유되는 ‘재생력’을 가졌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많지 않습니다. 데드풀이 언행이 심하게 가볍고 본능에 충실한 반영웅이라면, 울버린은 책임감과 리더십이 강한 전형적인 영웅입니다. 쉽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캐릭터의 컬래버는 시너지 효과와 불협화음을 동시에 냈습니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데드풀’(2016)은 코믹한 안티히어로 영화의 대표 주자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이 영화 캐릭터임을 인지한 채 관객에게 말을 걸고 스크린과 현실을 오가는 농담을 던지는 메타픽션적인 대사들은 B급 감성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웃음 버튼을 연타했습니다. 주연 배우인 할리우드 스타 라이언 레이놀즈의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매력이 극 중 캐릭터 성격과 맞아떨어진 것도 글로벌 흥행에 한몫했습니다.

‘데드풀2’(2018)에 이어 약 6년 만에 탄생한 3편 역시 시리즈 특유의 유머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액션을 펼치면서도 관객에게 말을 걸고 깐족거리는 오프닝신부터 여타 히어로 영화에선 느끼기 힘든 B급 감성을 연출합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스토리는 약간 복잡합니다. 히어로 생활을 접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데드풀은 ‘시간 변동 관리국’(TVA)에 잡혀가 일생일대의 제안을 받습니다. 대신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는 곧 사라지게 됩니다. 데드풀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친구들을 지키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제안을 거절하고 히어로로 복귀합니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수위 높아진 말장난과 액션…데드풀 팬이라면 취향저격

문제는 데드풀이 우주를 지키기 위해 울버린(휴 잭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울버린은 영화 ‘로건’(2017)에서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멀티버스 설정은 죽은 히어로까지 살려냅니다. 데드풀은 또 다른 우주에서 울버린을 데려왔는데, 하필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힌 알코올 중독자 버전의 울버린입니다.

비관론자 울버린과 천방지축 데드풀은 서로를 죽여버릴 것처럼 싸우지만, 결국 TVA의 음모에 맞서 세상을 구한다는 공동의 목표로 뭉칩니다. 이제 이들은 막강한 능력을 가진 빌런이자 ‘엑스맨’ 시리즈 속 찰스 자비에 교수의 쌍둥이인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 일당을 상대해야 합니다.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역시 데드풀의 입담입니다. 영화 속 세상과 관객을 구분하는 ‘제4의 벽’을 넘나드는 대사들은 데드풀 시리즈 팬의 취향에 딱 맞는 유머를 구사합니다. 데드풀 전작들과 엑스맨 시리즈의 배급사인 20세기폭스사가 월트디즈니에 인수된 것을 희화화하거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남용한 멀티버스 설정의 오점을 신랄하게 비꼬는 등 선도 넘고 벽도 넘는 매콤한 ‘드립’이 속사포로 쏟아집니다. 제4의 벽을 연출로 넘는 대목도 기발합니다. 예컨대 휴 잭맨이 출연했던 뮤지컬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이 짧게 나마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잔웃음이 새어나오게 됩니다.

보통의 영화에선 진지해야 할 상황에서 산통을 깨는 식의 B급 감성 유머도 관람 포인트입니다. 분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초를 치는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유치하고 저속한 데드풀의 말장난은 시리즈 팬 입장에선 익숙하겠지만, 빈도나 수위가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맛깔난 ‘초월번역’으로 대사의 의미를 최대한 살린 자막을 보는 재미도 있는데, 일부 관객에겐 익숙지 않을 수 있는 신조어를 활용한 점은 호불호가 갈릴 요소입니다. 기존 데드풀 시리즈보다도 한층 수위가 높아진 잔인하고 고어한 묘사에도 호오가 갈리겠습니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정신 없지만 볼거리는 풍성…전작들보단 호불호 갈릴 듯

‘데드풀과 울버린’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다른 세계관과의 충돌입니다.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의 세계관과 캐릭터가 무더기로 깜짝 등장해 묘한 감정들을 부릅니다. B급 감성을 자극해 대놓고 웃기기도 하고,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다만 평소 영화를 자주 즐기지 않는 관객이라면 이들 세계관과 캐릭터가 낯설어 별다른 느낌이 없을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많은 캐릭터가 난립해 어수선하게 느껴지기만 하는 역효과가 우려됩니다.

영화의 핵심 소재인 데드풀과 울버린 캐릭터 조화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이 워낙 매력적인 배우들이라 티격태격하면서도 도울 땐 돕는 브로맨스 연출이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휴 잭맨의 열연은 순식간에 극의 분위기를 바꾸며 몰입을 유발합니다.

화려한 액션신들도 눈길을 끕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정면대결, 카산드라 노바 일당과의 한판승부 등 다양한 대결 구도로 여러 액션신을 선보입니다. 영화 ‘올드보이’(2003) 속 ‘장도리 신’이 떠오르는 롱테이크 액션신도 있었습니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다만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난잡하고 산만해진 것이 아쉽습니다. 극 중 데드풀도 비판하는 지긋지긋한 멀티버스 세계관이 피로감을 부르고, 이전 MCU 영화들과 유사한 대목들에서 기시감이 듭니다. 애초 데드풀이 울버린을 필요로 하게 된 이유부터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고, 이야기 흐름이 중구난방입니다. B급 감성을 방패로 갈등과 위기를 너무 쉽게 해결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연출한 숀 레비 감독은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와 ‘리얼 스틸’(2011), ‘프리 가이’(2021) 등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대체로 가족애를 강조한다는 것인데,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사랑과 희생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아이맥스(IMAX) 포맷으로도 개봉했지만 화면비가 일반 영화와 동일한 시네마스코프(2.35:1)라 굳이 아이맥스로 관람할 필요는 없습니다. 쿠키 영상은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나오는 영상과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뒤 나오는 영상까지 총 2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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