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모르고 세계는 아는 부산맛 K치킨

세계 10개국 480개 매장 갖춘 본촌치킨
해운대서 시작한 치킨집 조류독감에 정리
2005년 미국 뉴욕에 1호점 내고 재도전
마크 저커버그도 찾는 치킨집으로 명성
국내 매장 없지만 양념은 기장서 공급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8-01 09:00:00

한식의 인기가 뜨겁다. 2023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식은 9년 연속 한국 콘텐츠 중 인기도 1위를 차지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는 한식당이 7곳이 포함됐다. 뉴욕 시의 미쉐린 스타 한식당은 11곳으로 미식 강국인 프랑스 7곳, 이탈리아 4곳을 앞섰다.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때 고려하는 사유 1위도 3년 연속 ‘음식 관광’이었다.

전 세계 한식당 숫자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2027년까지 해외 한식당을 1만 5000개 늘려 총 4만 500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밝힌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세계 한식 산업 규모를 2021년 152조 원에서 2027년 300조 원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과 유럽의 컨설팅 업계는 2024년을 주도할 음식 트렌드로 한식을 꼽았고,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는 국내 식품기업의 ‘K-푸드 세계화 성공 과정’을 연구 교재로 채택했다. ‘위크앤조이’ 는 한식 세계화가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성공했는지 되돌아봤다.


본촌치킨 홈페이지에는 ‘부산’이라는 검은색 글자가 대한민국 지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적혀 있다. 본촌치킨 홈페이지에는 ‘부산’이라는 검은색 글자가 대한민국 지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적혀 있다.

■정부가 선수로도 뛰어봤지만

‘한식 세계화'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국정 과제로 채택했다. 한식 세계화 정책은 김윤옥 여사가 직접 나서 ‘영부인 사업’으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수백억 원의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예산만 낭비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 주도의 해외 한식당 개설 사업은 부실한 사전 검토와 민간 투자자 확보 실패로 중단되거나 폐지됐다.

떡볶이와 막걸리가 세계화 주력 상품으로 선정됐지만 철저한 시장 조사나 현지화 전략 없이 사업이 진행됐다. 이내 떡볶이의 식감은 서구인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막걸리는 짧은 유통기한으로 세계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에는 한식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민간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나름 긍정적인 분석도 나온다. 아무튼 정부가 직접 ‘선수’로 뛰었지만 당시의 한식 세계화는 성공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한식은 ‘K푸드’라는 이름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특히 2020년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K팝,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 전반에 관한 관심이 증폭됐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노출되면서 외국인들은 한식에 호기심을 갖고, 직접 맛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진 것이다.

BTS 등 K-팝 아이돌이나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한식을 먹는 모습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한식이 ‘힙하고 트렌디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매운맛 챌린지를 통해 전 세계적인 화제를 일으키며 K푸드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냉동만두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글로벌 히트 상품이 되었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도 전 세계적인 먹방 챌린지 열풍을 일으켰다.


본촌치킨 해외 매장에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본촌치킨 홈페이지 본촌치킨 해외 매장에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본촌치킨 홈페이지

■한식 논란 빚던 한국식 치킨의 선전

한식 세계화에는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도 한몫했다. 사실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국내 시장의 포화로 인한 경쟁 심화로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치킨을 한식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한식 세계화에 치킨 프랜차이즈의 큰 기여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BBQ는 치킨 프랜차이즈 중 해외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결과, 한국 업체 가운데 세계 최다 매장 수를 자랑한다. BBQ는 전 세계 57개국에서 700여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만 25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해 북미 지역의 성공 DNA를 바탕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교촌치킨은 2007년 미국을 시작으로 15개국에 67개 매장을 두고 있다. SK증권은 올해 교촌치킨의 글로벌 매장이 115개까지 폭발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해외 진출 후발 주자인 bhc는 2018년부터 7개국에 29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bhc도 지난해에 “향후 5년 이내에 북미 지역에 300개 매장을 개설할 것”이라고 밝히며 뒷심을 발휘할 각오를 보이고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 치킨을 한식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식 치킨은 인기 있는 한식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한국식 치킨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소비됐고, 고유한 양념이나 조리법을 활용하기 때문에 한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닭고기를 튀기는 방식이 서양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한식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음식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 치킨 역시 이제는 한국 음식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고 봐야겠다.


본촌치킨의 필리핀 지역 광고. 본촌치킨 홈페이지 본촌치킨의 필리핀 지역 광고. 본촌치킨 홈페이지

■부산에서 태어난 ‘본촌치킨’ 아시나요

치킨 프랜차이즈의 해외 진출 사례를 추적하다 ‘본촌치킨’의 존재를 알게 됐다. 본죽과 교촌치킨을 합쳐서 본촌치킨을 만들었나? 미국이나 동남아에서 본촌치킨을 처음 본 한국인들은 교촌치킨의 짝퉁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미안하지만 부산에서 시작한 본촌치킨은 세계 10개국에 매장 480개를 보유한 세계적인 치킨·한식 브랜드다. 본촌치킨을 모른다면 그 이유는 한국의 치킨 브랜드이지만 정작 국내에는 지점이 없어서다.

본촌치킨 홈페이지(www.bonchon.com)의 ‘우리 이야기’ 카테고리에는 ‘부산’이라는 검은색 글자가 대한민국 지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적혀 있다. 본촌은 내 고향이란 뜻으로 영어로는 ‘my hometown, my root’라고 적었다. 본촌치킨 창립자 서진덕 전 회장은 “한국 부산에서 자라면서 고향의 맛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본촌은 바로 그 꿈에서 탄생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한국의 맛있는 음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었다.

뒤늦게 따라가 본 본촌치킨의 스토리는 너무 흥미진진했다. 때는 월드컵 열기로 대한민국이 불타오르던 2002년이었다. 뉴질랜드에 이민 가서 닭갈비 장사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서 씨는 해운대에 10평 남짓한 본촌치킨 매장을 연다. 본촌치킨은 해운대를 시작으로 부산·경남권에서 가맹 사업을 키워나가 2005년까지 한국에 매장이 20개 이상 있을 정도로 잘나갔다. 그러다 2005년 조류독감 사태가 터지면서 사업이 난항을 겪자, 서 씨는 2006년 혈혈단신 미국으로 향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실 저는 겁쟁이입니다. 이미 포화 상태인 한국의 치킨 시장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외국으로 도망친 거죠.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2007년 뉴욕에 본촌치킨 1호점을 내고 미국 상륙에 성공한다. 한국 치킨 브랜드 최초의 미국 진출이었다. 서 전 회장은 홈페이지에서 “2007년 뉴욕에 본촌을 오픈하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지만, 블록을 둘러싼 줄과 교통 통제 경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날부터 본촌은 세상을 사로잡았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었다. 페이스북과 구글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본촌치킨 서니베일점에는 마크 저커버그가 찾을 정도였다.

현재 본촌치킨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 본촌인터내셔날 측은 “올해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을 집중 공략해 본촌의 매장 수를 현재보다 70개 더 늘려 550개까지 확보하고, 총매출을 지난해 5510억 원보다 12%가량 증가한 6200억 원까지 달성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등 유럽 다른 국가에도 가맹점을 열게 해달라는 문의가 있어 올해 유럽에 추가 매장을 낼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본촌치킨은 한국에서 양념을 생산해 해외 판매점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본촌치킨 양념을 만드는 공장은 부산 기장군 장안읍 명례산단2로 48에 위치한 본촌인터내셔날이다. 본촌치킨이 고향 부산에서도 사라져 국내에서는 맛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못내 아쉽다. 또 다른 해외 진출 성공 신화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본촌치킨에 관한 기사가 <뉴욕타임즈>에 실려 있다. 본촌치킨 홈페이지 본촌치킨에 관한 기사가 <뉴욕타임즈>에 실려 있다. 본촌치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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