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좀비 바이러스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러나 좀비 영화처럼 전 세계가 삽시간에 좀비 세상이 건 아닙니다. 군대가 나서 감염자를 사살한 덕에 확산이 억제된 겁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 좀비가 됐습니다. 내가 아이의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0일 개봉한 ‘좀비딸’은 이러한 상상을 영화화 한 코미디입니다. 이윤창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이 작품은 개봉 전부터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낳았습니다. 웹툰이 큰 인기를 끌었고 ‘흥행 보증수표’ 조정석을 주연으로 내세운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스토리상 신파로 물든 흔한 한국식 코미디 영화에 그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공존했습니다. 최근 개봉한 웹툰 원작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과연 ‘좀비딸’은 다를지, 직접 극장에서 봤습니다.
맹수 전문 사육사 정환(조정석)은 사춘기 딸 수아(최유리)와 오순도순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적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두 사람이 사는 서울도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정환은 좀비를 피해 엄마인 밤순(이정은)이 있는 한적한 고향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아가 좀비에 물려버립니다. 그렇다고 딸을 포기할 수는 없는 정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딸을 훈련해 보기로 합니다.
‘좀비딸’은 기본 장르인 코미디에 충실하면서도 좀비물의 긴장감과 드라마의 감동까지 잡으려 했습니다. 좀비들이 뛰어다니는 도심의 모습을 그린 초반부 퀄리티는 ‘부산행’(2016)의 한 장면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정환과 수아가 좀비들을 피해 다니는 시퀀스에서 좀비 묘사가 꽤 리얼합니다. 다만 ‘12세 관람가’에 맞게 그로테스크한 묘사를 자제하고 코믹한 순간을 집어넣는 등 서스펜스를 극한으로 끌어올리지는 않습니다. 유머 포인트가 재치 있고 억지스럽지 않은 점이 좋았습니다.
수아가 할머니 집으로 온 뒤로는 본격 코미디가 펼쳐집니다. 기존에도 ‘좀비랜드’ 시리즈나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등 좀비와 코미디를 결합한 B급 장르 영화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좀비딸’은 좀비가 된 딸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웃음 포인트를 녹여 냈습니다. 엄연히 좀비인 수아가 인간처럼 행동할 때 자연스럽게 웃음이 납니다. 조정석, 이정은, 윤경호의 코믹 연기와 반려묘인 ‘애용이’의 귀여움도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일부 작위적 연출도 있었지만, 코미디 장르임을 감안하면 크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닙니다. 극장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났고, 기자도 함께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관객들을 웃긴 뒤 눈물 버튼을 자극합니다. 전형적인 한국식 코미디 영화 흐름인데,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일단 영화는 중반부까지는 개연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흘러갑니다. 혹평받는 코미디 영화의 문제점인 과한 캐릭터 설정이나 호들갑스러운 연기 대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와 적당히 완급 조절을 한 자연스러운 연기가 몰입을 돕습니다.
그러나 정환의 지인이자 마을 중학교 교사인 연화(조여정)가 등장한 이후의 이야기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공식 예고편에 나온 것처럼, 연화는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 최다 신고로 포상을 받은 좀비 혐오자입니다. 그런 연화의 등장은 당연히 갈등과 위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스토리 개연성이 떨어지는 탓에 갈등과 위기를 억지로 유발한다는 인상입니다. 코미디 장르니까 이해한다는 심정으로 넘어갈 수는 있지만, 유치하다는 느낌이 드니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결말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좀비가 된 딸을 숨기는 영화에서 뻔히 예측할 만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때 부성애와 가족애를 강조하는 신파적 연출이 호오를 가를 만합니다. 물론 조정석의 연기와 눈물을 쥐어 짜내는 연출 때문에 (자존심 상하지만) 기자 역시 눈물이 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의 원인은 진한 감동보다는 일명 ‘공업적 최루법’에 가까웠습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조정석은 유쾌하고 능글맞으면서도 진중할 땐 진중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연기를 너무나 잘 소화합니다. 다만 ‘엑시트’(2019), ‘파일럿’(2024) 등에서 본 기존 캐릭터와 겹친다는 느낌도 듭니다. 신예 최유리는 어려운 배역을 맡았는데, 눈도장을 찍을 만한 호연을 펼쳤습니다. 오디션을 거쳐 정식 캐스팅된 고양이는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좀비딸’은 소위 ‘한 방’이 없는 전형적인 오락 영화입니다. 감정이 있는 좀비들의 로맨스를 다룬 ‘웜 바디스’(2013)와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키진 못할 겁니다. 그래서 신선하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찾는 시네필에게는 적극 추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볼 영화로는 추천할 만합니다. 실제 극장을 찾은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고, 결말부에선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필감성 감독도 언론 인터뷰에서 “좀비물이라는 쫄깃한 장르이면서도 따뜻한 감동과 코미디가 있다”며 “오랜만에 가족이 다 같이 무해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습니다.
제 점수는요~: 7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