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 2025-08-03 08:00:00
부산의 백화점이 변하고 있다.
캐릭터 포토존 앞에서 ‘인증샷’이 끊이지 않고, 보디빌더가 만든 짐웨어 브랜드에는 길게 줄이 이어진다. 외국인 관광객은 K패션 쇼핑에 진심이고, 작은 로컬 브랜드는 이 무대를 발판 삼아 수도권으로 진출한다.
이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바로 백화점 상품기획자(MD)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MD 이범석 책임과 신세계 센텀시티 ASM(Assistant Sales Manager) 이정우 파트너에게 무대 뒤 이야기를 들었다.
흥행 증명한 지역 팝업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지난 4월 지하 1층에 200평 규모의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을 조성했다. 그곳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콘텐츠는 K팝 그룹 ‘아이브’를 캐릭터화한 브랜드 ‘미니브’ 팝업이었다. 서울 외 지역 최초 사례로, SNS에는 “팝업 보러 부산 가야 하나”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후 마르디메크르디, 드리미 등 20여 개 브랜드가 이 공간을 거쳤고, 이 공간의 매출은 전년 대비 85% 이상 신장했다. 첫 방문 고객 비중도 15% 넘게 늘었다. 이범석 책임은 “지역일수록 콘텐츠의 힘이 중요하다”며 “팝업을 통해 늘 새로운 경험을 주는 이미지를 만든다”고 말했다.
팝업은 콘텐츠다
신세계 센텀시티 지하 2층 ‘하이퍼그라운드’는 하나의 실험실이다. 올해 행사 중 단연 눈길을 끈 팝업은 부산 보디빌더가 만든 로컬 짐웨어 브랜드 ‘압도’였다. 팬사인회에는 긴 줄이 이어졌고, 주말 오전에는 ‘오픈런’까지 벌어졌다.
이정우 파트너는 “지역 브랜드도 고객 감성과 연결되면 전국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고 말했다.
하이퍼그라운드는 입점 브랜드의 절반 이상을 로컬로 구성하며, 2030 비중은 전체 고객의 절반에 달한다. 이 파트너는 “‘국내 최초’ ‘지역 단독’ 같은 희소성이 있는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을 때 반응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했다.
MD는 감각이 전부
MD의 일은 단순히 브랜드를 유치하는 것을 넘어선다. 공간 기획과 동선 설계, 마케팅과 이벤트 운영, SNS 확산 전략까지 모든 기획을 총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역량은 ‘현장을 읽는 감각’이다.
롯데백화점 이범석 책임이 꼽은 사례는 지난 5월 열린 ‘청년농부 팝업’이다. 이 책임은 “처음엔 파머스마켓은 올드하다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평일 유동 인구가 많고 체험형 콘텐츠에 민감하다는 부산 상권 특성을 믿었다”고 했다.
결과는 하루 평균 매출 2000만 원의 성과를 거뒀고, 청년 농부들의 팝업은 전국 백화점으로 확산됐다. 이 책임은 “고객이 ‘백화점이 재밌어졌네’라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신세계 센텀시티 이정우 파트너도 비슷한 보람을 말한다. “팝업 오픈 전부터 줄을 서는 고객을 보면, 준비한 모든 과정이 보상받는 느낌이다”며 “기획이 실제 공간에 구현되는 순간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관광객도 체험 선호
부산은 연간 3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도시다. 최근 백화점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관광 콘텐츠의 일부가 되고 있다.
신세계 센텀시티는 외국인 고객을 위한 택스프리 데스크, 비짓부산패스 혜택, 다국어 응대 인력을 마련했다. 이정우 파트너는 “해외 고객은 ‘지금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에 민감하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K컬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K패션·K팝 연계 행사에 집중하고 있다. 이범석 책임은 “K컬처 팝업에 외국인 수요가 몰리는 것을 체감한다”며 “마르디메크리디와 미니브 팝업에 외국인 구매 수요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전국으로 로컬 띄운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강조한 또 하나는 로컬 브랜드와의 동반 성장이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8월 1~7일, 부산 전포동 인기 로컬 브랜드들과 함께 ‘전포크루’ 팝업 기획전을 연다. 반려식물숍 ‘페이퍼가든’, 빈티지 소품숍 ‘누셀렉’ 등이 참여한다. 이 책임은 “서울은 브랜드가 백화점을 찾아오지만, 로컬은 우리가 직접 뛰어야 한다”며 “SNS에서 신호를 찾고, 찾아가서 설득하는 것도 다 MD의 일이다”고 설명했다.
신세계 센텀시티도 니티드, 말렌, 올리언스스토어 등 부산 기반 브랜드를 하이퍼그라운드에서 선보였고, 일부 브랜드는 이를 계기로 수도권 팝업까지 성공했다. 이 파트너는 “신생 로컬 브랜드의 성장 발판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상품보다 기억 팝니다
MD의 하루는 늘 현장에서 시작된다. 고객의 눈길이 어디 머무는지, 어떤 콘텐츠에 줄이 서는지, 어떤 굿즈를 인증샷으로 남기는지, 그 모든 반응을 읽는 것이 ‘기획의 출발점’이다.
이들의 일에는 트렌드를 포착하는 감각, 브랜드와의 소통력, SNS에 대한 이해, 공간을 읽는 통찰이 모두 요구된다. 과거에는 주로 매장 운영과 매출을 관리하는 역할이었다면, 현재는 기획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강조된다.
롯데백화점 이범석 책임은 “우리가 설계하는 것은 기대”라며 “기대가 현실이 되는 순간 백화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경험의 무대가 된다”고 말했다.
신세계 센텀시티 이정우 파트너는 “온라인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며 “상품보다 기억을 남기는 일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