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2026-09-22 11:16:01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부산일보DB
“지금 내리는 선택은 올해 임금과 성과만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한화오션의 경쟁력과 일터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는 일입니다. 당장의 임금 인상이나 일시금 규모만 놓고 판단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인지 함께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한화오션 경영진이 ‘임금 및 단체 협약’ 교섭 장기화에 노조가 파업 수위를 끌어올리면서 공정 차질이 현실화하고 협력사와 지역 경제 위축 우려도 커지자(부산닷컴 9월 21일 보도), 긴급 담화문을 발표하며 조합원 설득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22일 오전 거제사업장 각 출입문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임단협 회사 담화문’을 배부했다. 담화문은 4쪽 분량 인쇄물로 한화오션 경영지원실장으로 노조와 교섭을 책임진 정인섭 사장 명의로 작성됐다.
한화오션 노사는 지난 6월 4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23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노조는 △기본급 14만 9600원 인상 △상여금 900%(기존 800%) 인상 △정년 연장 △성과급 지급 기준 명문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사 측은 지난 17일 교섭에서 △기본급 12만 3689원 인상 △일시 타결금 650만 원 △복지포인트 연 100만 원 △경조사비 인상 △미취학 자녀 지원금 20만 원 인상 △성과급제 개선 TF 신설을 담은 2차 제시안을 냈지만, 노조는 조합원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며 반려했다.
한화오션 노사 교섭을 책임진 정인섭 경영지원실장이 22일 임단협 관련 담화문을 발표했다. 독자 제공
이에 대해 정 사장은 “수정제시안을 마련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과거부터 누적돼 온 순차입금 등 재무적 부담으로 인해 일시적 보상을 확대하는 데 제약이 많았지만, 과거 교섭을 고려할 때 최고 수준의 기본급 인상과 일시금 지급 등을 담았다”고 했다.
실제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인수 직전인 2021년과 2022년 각각 1조 7000억 원, 1조 6000억 원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벼랑 끝까지 내몰렸었다. 다행히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큰 폭의 이익을 실현 중이지만, 여전히 12조 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 자기자본 대비 168%로 조선 3사 중 가장 높다. 그럼에도 2023년 출범 이후 올해까지 4년간 기본급 기준 단순 합산으로 약 20%의 임금인상을 단행했다.
정 사장은 “현재 업황과 회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회사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와 임직원 기대를 함께 고민해 수정제시안을 마련했다”며 “향후 업황이 어려워지더라도 임직원이 안정적인 근무 여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회성 보상보다 지속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을 강화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화오션을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회사로 만들어 후배에게 물려주는 것 역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책임”이라고 강조하며 “교섭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하루빨리 일터를 정상화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에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덧붙여 “올해 교섭 결과가 모두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처우와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이어가겠다”며 “노조도 회사가 처한 현실과 미래를 함께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단협 과정에 경영진이 노조원을 상대로 담화문까지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최근 노조가 부분 파업에 이어 핵심 생산 설비인 골리앗 크레인 가동까지 중단시키며 공정 차질이 현실화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는 지난 7일과 11일 그리고 14일 전체 조합원 4~7시간 부분 파업을 벌인 데 이어 15일~18일에는 조선소의 상장인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 일명 골리앗 크레인)까지 멈춰 세웠다. 골리앗 크레인은 선체 블록을 조립장에서 건조 독으로 옮겨 탑재하는 핵심 연결고리다. 이 크레인이 멈추면 공정도 함께 중단된다. 조선업은 수많은 공정과 협력사가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산업이다. 어느 한 부분의 생산 차질이 그 지점에서 끝나지 않는 구조다. 건조 일정이 지연되면 후속 공정은 물론 인도 일정까지 연쇄적으로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로 인한 손실은 고스란히 협력업체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한화오션과 연관된 경남 지역 협력사만 1000곳이 넘는다. 소속 노동자는 줄잡아 10만 명 안팎이다. 노사 갈등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엉뚱한 다수가 피해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2022년 하청지회 독 점거 농성 모습. 부산일보DB
정 사장은 “PE, 탑재 공정 지연 영향으로 내업 및 선행공정의 작업물량 감소 및 후속공정 작업 지연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며 “추석기간을 포함한 휴일 기간 중 생산 공정 전면 중단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으로 당분간 정상적인 생산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이는 회사의 실적 뿐만 아니라 임직원 성과급 그리고 어렵게 쌓아 올린 대외신인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한화오션은 2022년 하청지회 불법 파업으로 독 가동이 중단되며 자체 추산 8000억 원에 달하는 잠정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로 인한 납기지연으로 고객사 신뢰도 추락해 수십 년간 이어온 파트너쉽도 산산조각 났다. 이번 임단협이 장기화할 경우, 어렵게 회복한 경영 기반이 다시 흔들려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화오션 노사는 22일 오후 2시부터 24차 교섭을 진행한다. 그러나 노조가 ‘성과급제 기준 개선’을 핵심 요구 사항으로 내걸고 있어 이날도 합의안이 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기업 영업의 자유 또는 주주 등 제3자의 권익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경영성과급 요구까지 의무적 교섭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노조도 이를 의식한 듯 의무 교섭 대상인 ‘기본급 및 임금’에 성과급을 하나로 묶어 의제로 던졌다.
지역 상공계 관계자는 “노조가 이를 빌미로 교섭을 지연시키고 핵심 설비 가동을 중단하는 건 꼼수다. 이대로는 협력사는 물론 지역 경제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입장이 다를 순 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