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2024-12-29 18:24:34
국내에서 벌어진 최악의 항공기 사고 발생 현장인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29일 사고 직후 한순간에 거대한 빈소가 됐다. 들뜬 여행객들로 붐벼야 할 전남 무안공항은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엉킨 아비규환의 실사판이나 다름 없었다.
29일 오후 탑승객 181명을 태운 여객기가 추락하는 대참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대합실에는 유가족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항공 당국 측에서 유가족들 위해 공항 3층에 가족 대기실을 마련했으나 가족을 찾으려는 유가족들로 곧바로 수용 인원을 넘겨버렸다. 자리를 잡지 못한 가족들은 대합실로 나와 바닥이나 의자에 주저 앉아 기약 없는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사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 보도 한 장면, 한 장면에 울음과 탄식이 터졌다. 이들 수백 명의 가족들은 뉴스가 나오는 TV 앞을 떠나지 못한 채 자막에 뜬 사망자 숫자가 바뀔 때마다 탄식과 울음을 터트렸다. 일부 가족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어떡해, 어떡해”만 반복했다.
“아빠!” 이날 오후 2시 30분께, 유족과 탑승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첫 브리핑에서 구조대 관계자 신원이 확인된 5명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외마디 비명이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아빠다 아빠야” 믿지 못하는 얼굴로 생년월일까지 들은 자매가 서로 끌어안았다. 자매가 뒤에 있던 엄마에게 가 소식을 전하자 이 50대 여성이 “나는 어찌 살라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탑승자 가족 수백 명이 모인 대기실에서는 서로를 알아보는 경우도 잇따랐다. 이들은 서로에게 “여길 왜 왔느냐” 묻다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광주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안 모(53) 씨는 “친한 동생이 탔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여기서 어머니 친구 분을 만났다”며 “하나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무안공항 이용객 대다수는 인근 광주와 전남 지역민이다.
“생사라도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며 늦어지는 사고 수습에 항의하던 최동석(57·광주) 씨도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최 씨는 “가족처럼 지내던 처남이 비행기에 탔다”며 “전화를 하면 신호가 가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계속 전화를 걸고 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말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울먹거렸다.
사고 가족들은 성탄절을 맞아 떠난 여행이 한순간에 비극이 됐다고 울부짖었다. “우리 딸 우리 딸”을 연신 부르짖던 한 80대 여성은 4박 5일 부부 동반 여행을 간 외동딸이 비행기에 탔다고 했다. “딱 하나 있는 우리 딸 이제 막 쉰셋인데 불쌍해서 어떡해”라며 “공항 오는 길에 사상자가 20명이라고 전해들어 병원에만 있어라 기도하며 왔는데…”라며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차라리 나를 데려가지, 이제 막 재밌게 사는 걸 어떻게 알고 데려가는지”라며 오열했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80대 남성도 딸이 비행기에 타 있다고 했다. 딸이 겨울방학을 맞은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인 자녀 2명,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오늘이 오는 날인데 이렇게 됐다”며 “아이들이 타 있는데 아이들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탑승자 가족 60대 김 모 씨도 “동생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임 친구들과 출발했다”며 “평생 여수에서 공직 생활 하다가 올해 6월 퇴직하고 첫 여행이라 많이 기대하고 갔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4시께 정부 관계자가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22명의 명단을 공지했다. 앞다퉈 달려가 화면에 띄워진 이름과 생년월일을 맞춰보던 가족들 중 이름을 확인한 가족들은 비명을 지르며 통곡했고,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가족들도 주저앉았다.
전남 무안=김현우·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