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2026-06-18 10:02:11
세 개의 도시가 통합된 곳이 있다. 바로 창원특례시다. 2010년 창원·마산·진해시의 행정구역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한 지붕 세 가족이 탄생했다. 비록 이름은 창원으로 통일됐지만, 옛 마산과 진해가 품은 고유한 풍경은 그대로다. SNS 핫플이 된 ‘바다를 품은 사찰’부터 1970~1980년대를 떠올릴 수 있는 골목길 박물관, 기찻길이 놓인 바닷마을을 조명한다.
장수암에서 바라본 바다. 김준현 기자 joon@
장수암에서 바라본 바다. 김준현 기자 joon@
장수암에서 바라본 바다. 김준현 기자 joon@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장수암 입구. 김준현 기자 joon@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장수암 입구. 김준현 기자 joon@
■SNS 핫플이 된 창원의 숨은 사찰, ‘장수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자리한 ‘장수암’은 SNS에서 ‘오션뷰 사찰’로 입소문을 타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산 중턱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남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6년에 창건된 비교적 젊은 사찰이지만, 바다를 품은 절경 덕분에 창원을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장수암은 평화로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풍경(風磬) 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는 바다는 지친 일상에 위로를 건넨다.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 12일은 평일 낮임에도 많은 이들이 장수암을 찾았다. 방문객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느라 분주했다.
장수암 일주문 옆에 서 있는 금강역사 입과 몸에 돈이 꽂혀 있다. 김준현 기자 joon@
장수암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일주문이 여행객을 반긴다. 문 양옆에는 금강역사가 위용을 뽐내며 서 있다. 불법을 수호하는 인도의 문지기 신인 금강역사는 인왕 혹은 야차로도 불린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입이나 배꼽 등에 사람들이 정성스레 지폐를 꽂아둔 이색적인 모습이다.
장수암의 ‘암(庵)’이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찰을 의미하지만, 실제 장수암의 규모는 암자라고 불리기에는 규모가 큰 편이다. 이 이름에는 독특한 유래가 있다. 주지 스님에 따르면 사찰이 자리한 산의 이름이 ‘장수산(長壽山)’이며, 이곳에는 전설이 깃든 ‘장수바위’가 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사찰의 명칭에 바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고자 했던 스님은 ‘암(巖)’ 자를 떠올렸다. 마침 암자를 뜻하는 한자(庵)와 바위를 의미하는 한자(巖)의 음이 모두 ‘암’으로 동일하다는 점에 착안해, ‘장수사’가 아닌 ‘장수암(將帥庵)’이라는 현재 이름을 짓게 됐다. 실제 사찰 앞에는 ‘장수산 장수암(將帥山 將帥庵)’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의미와 발음을 모두 고려한 작명인 셈이다.
장수암은 마치 산이 사찰을 포근히 안고 있는 듯한 형세다. 천수관음나한전, 대웅전, 광명편조전이 중심을 이루며, 그 주변으로 용왕각과 산신각 등 성인 한두 명 정도가 겨우 들어갈 법한 작은 법당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사찰의 중심에 대웅전이 아닌 광명편조전이 위치한다는 것이다. 대웅전은 광명편조전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주지 스님은 “처음에는 광명편조전 자리를 대웅전으로 사용했으나, 사찰을 확장하면서 건물 배치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108계단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장수암의 백미는 단연 ‘108계단’이다. 일주문에서 광명편조전까지 이어지는 이 계단은 불교에서 번뇌를 참회하고 극복하는 수행의 과정을 상징한다.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며 복잡한 잡념을 털어내다 보면, 어느덧 탁 트인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사찰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면 위치와 각도에 따라 색다른 절경이 펼쳐지는 것도 장수암만의 매력이다.
장수암까지는 62번 시내버스가 운행되지만, 가급적 자가용 이용을 추천한다. 4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전용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다. 해안선을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는 장수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의 ‘김씨박물관’ 전경. 김준현 기자 joon@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의 ‘김씨박물관’ 내부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 소사동
다음으로 떠나볼 곳은 화려한 풍경 대신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선물하는 숨은 명소,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의 ‘김씨박물관’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소사마을에 자리 잡은 김씨박물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김현철 관장이 19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수집한 장난감과 생활 필수품 등 수천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가족의 추억과 생활 흔적을 보존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이 박물관은 원래 김현철 관장의 외조부모 집이었다.
정겨운 마을 골목에 들어서면 ‘부산라듸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와 같은 옛 간판들이 눈길을 끈다. 박물관 밖 스피커로는 영화 ‘영웅본색’의 주제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전화기와 전축, 분유통 등 과거 생활 용품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1970~8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곳은 규모가 아담해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박물관 옆 건물에서는 옛날 엽서 등 기념품도 살 수 있다. 박물관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김달진 문학관 입구. 김준현 기자 joon@
김달진 선생의 생가. 김준현 기자 joon@
박물관 옆 골목에 위치한 ‘김달진 문학관’과 생가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시인이자 승려, 한학자였던 월하 김달진 선생(1907~1989)은 한국 서정시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문학관 1층에는 선생의 생애와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필 원고와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바로 옆에 정성스레 복원된 생가에서는 과거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골목 밖에 위치한 김달진 문학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두 군데를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계절은 지났으나, 봄철에 꼭 방문해야 할 장소도 소사마을에 있다. 벚꽃 명소로 유명한 웅동수원지다. 평소에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나, 봄철에만 한시적으로 일반 시민에게 개방된다. 군사 지역으로 관리가 철저해 어느 곳보다 깨끗하고 단정한 벚꽃 무리를 볼 수 있다. 지난해 57년 만에 개방된 덕분에 수령 70년 이상의 거대한 왕벚나무들이 벚꽃 지붕을 만들어 장관을 연출했다. 만약 봄에 소사마을을 찾는다면, 웅동수원지도 방문할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바닷가에 놓인 기찻길이 인상적인 행암마을. 김준현 기자 joon@
■기찻길을 품은 바닷가 마을, 행암마을
마지막으로 갈 곳은 옛 진해에 위치한 고즈넉한 명소다. 바닷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은 마치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창원시 진해구 행암마을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다.
행암마을은 바다와 철길이 나란히 맞닿은 독특한 풍경을 자랑한다. 초승달 모양으로 굽이친 선착장과 그 곁을 따라 길게 뻗은 철길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내비게이션에 ‘행암동 경로당’을 검색하자. 바로 앞에 조성된 공영주차장 덕분에 편리하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곳 철길에는 드물게 열차가 오간다. 한 마을 주민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열차가 지나간다”며 “미군 기지로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특수 열차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해안 산책로. 김준현 기자 joon@
철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파도 소리를 벗 삼아 걷기 좋은 해안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이는 길지 않은데, 성인 남성의 걸음걸이로 약 5분이면 끝까지 도달할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탁 트인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해 질 무렵 마주하는 노을이 압권이다.
행암문예마루 전경. 김준현 기자 joon@
행암문예마루 1층 도서관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김준현 기자 joon@
마을 인근의 ‘행암문예마루’도 빼놓을 수 없는 추천 장소다. 과거 행암전망대를 문화 예술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시민을 위한 도서관으로, 2층부터는 예술가를 위한 창작 공간으로 운영된다.
특히 1층 도서관은 단순한 열람실을 넘어 여행자에게 ‘정적의 휴식’을 선물하는 공간이다. 여행 중 잠시 멈춰 서서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통창 너머로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색을 감상하는 것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조용히 사유에 잠기거나 창가에 앉아 진해 앞바다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좋겠다. 행암문예마루는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