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해 기자 eastsea@busan.com | 2026-10-14 10:04:38
현대엔지니어링 사옥 전경. 현대엔지니어링 제공
현대엔지니어링의 인도네시아 정유공장 공사에 참여한 국내 중소기업의 100억 원대 추가 공사비 정산 문제(부산일보 7월 3일자 14면 보도)가 1년 넘게 해결되지 않으면서 해당 중소기업이 폐업 위기에 몰렸다. 원청인 현대엔지니어링은 ‘현지 공동사업체가 계약 상대’라며 책임을 부인하고, 터무니없는 협의금을 제시하는 등 대기업답지 않은 행동으로 비난을 사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플랜트 시공업체 인방산업은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 공사의 추가 비용 약 100억 원을 1년 넘게 정산받지 못해 현대엔지니어링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공사는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 페르타미나가 정유공장을 신설하고 낡은 기존 공장을 고치려고 발주했다. 인도네시아 법상 외국 기업은 현지 업체와 손잡아야 공사를 맡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현대엔지니어링과 SK에코플랜트, 인도네시아 국영 업체 2곳이 공동사업체(JO·조인트 오퍼레이션) ‘RDMP JO’를 꾸려 공사를 따냈다.
인방산업은 2022년 3월 현지 업체와 따로 꾸린 공동사업체를 통해 이 공사의 배관 설치를 맡았다. 자재 공급 지연과 잦은 도면 변경 등으로 공사 기간이 2년 가까이 늘었다. 인방산업은 지난해 8월 말 공사를 마친 뒤 늘어난 인건비와 간접비 등 약 101억 9000만 원의 추가 정산을 청구했지만 RDMP JO는 이를 거절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방산업의 계약 상대가 자사가 아닌 RDMP JO라는 입장이다. 그간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 본사는 해당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며 직접적인 책임을 부인했다.
인방산업은 지난해 11월 현대엔지니어링을 하도급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 6월 이 사건을 ‘외국 법인 간 거래’로 보고 조사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인방산업은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사업체를 현지 법인이라고 설명하는 등 사실과 다른 자료를 내세워 제대로 된 조사를 피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동사업체의 성격에 대한 현대엔지니어링의 설명은 절차마다 달랐다. 인방산업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1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하 조정원) 분쟁조정 과정에서 공동사업체를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다 지난 8월 민사소송에서는 “인도네시아법에 따라 설립한 단체”로 바꿨다.
부산일보의 질의에 현대엔지니어링은 RDMP JO가 국내 상법상 주식회사와 같은 독립 법인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다만 RDMP JO가 자체 세무 등록과 회계, 은행 계좌를 갖추고 사업을 수행한다며 “각 표현은 설명의 목적과 맥락에 따른 표현상의 차이일 뿐, RDMP JO의 법적 성격에 관한 회사의 기본 입장이 변경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인방산업은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사업체가 법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한 만큼 대금 책임은 공사를 이끈 현대엔지니어링에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조사도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분 설명도 엇갈린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조정원과 법원에 입찰 단계인 2018년 맺은 합의서상 지분 35%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공사를 처음 공시한 2019년 사업보고서에는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율이 54.7%로 적혀 있고, 2022년부터는 70.3%로 적혀 있다. 공사 계약 주관사도 현대엔지니어링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사업 과정에서 참여사 간 역할이 조정되면서 지분율이 바뀌었고, 현재 자사 지분은 70%,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현지 업체가 갖고 있다고 밝혔다. 조정원에는 최초 합의서를 기준으로 설명했지만, 공정위에는 지분 변경 경과를 정리해 제출했다는 입장이다. 인방산업 측은 책임 범위가 쟁점인 분쟁 절차에서 7년 전 폐기된 수치를 내놓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조정원에 낸 공동사업체 결재 서류에서도 공동사업체의 실제 운영 구조가 드러난다. 2023년 2월 작성된 인력 파견 통지서의 결재란에는 인도네시아 업체 2곳과 현대엔지니어링 몫의 자리만 있고, 함께 공사를 따낸 SK에코플랜트 몫의 자리는 없다. 현대엔지니어링은 SK에코플랜트의 지분이 0%로 줄어 공동사업체 운영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공동사업체에 남은 한국 기업은 현대엔지니어링뿐이다.
인방산업은 최종 승인권자인 현장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소속이었고, 업체 선정부터 대금 지급까지 모두 현대엔지니어링 본사 결재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은 현장소장이 공동사업체에 파견된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본사 결재 역시 공동사업체가 결정한 사항을 각 참여사가 내부에 보고하는 절차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방산업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조정 절차에서 쓴 표현이 ‘보고’가 아니라 ‘품의’였다며, 품의는 결재권자의 승인을 구하는 절차라고 재반박했다.
이에 더해 인방산업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사실상 사업 주체인 만큼 이 공사에서 난 손실도 현대엔지니어링이 직접 떠안았다고 주장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24년 사업보고서에서 “플랜트 일부 현장의 대규모 손실 반영으로 1조 2401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은 공동사업체 손익 가운데 자사 지분에 해당하는 몫만 재무제표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공사에서 난 손실 규모와 참여사별 분담 내역은 경영상 중요 정보라며 확인해주지 않았다.
인방산업 측 소송을 맡은 변호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 같은 공동사업체에 대한 설명을 변경한 것에 대해 “공동사업체의 법적 성격이 절차마다 달라질 수 없다”며 “공정위의 심사불개시는 공동사업체가 외국 법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는데 인도네시아 법령상 공동사업체는 법인이 아닌 만큼 공정위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계약 명의만 공동사업체일 뿐, 지분 70%를 갖고 본사 품의를 거쳐 대금 지급을 결정해 온 현대엔지니어링이 실질적인 원사업자로 보인다”며 “현지 공동사업체라는 형식만 갖추면 대기업이 하도급법상 책임을 피할 수 있다면 해외 건설 현장의 국내 협력사는 보호받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분쟁은 <부산일보>가 지난 7월 3일자로 단독 보도했다. 당시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방산업 측 현지 법인이 추가 공사비를 요청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증빙 자료가 미흡해 추가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이후 양측은 정산 협의를 이어왔다. 협의 과정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측이 RDMP JO를 통해 제시한 금액은 약 24억 원으로, 인방산업 청구액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인방산업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처음에는 이 돈을 중간 정산금으로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금액만 받고 민사소송 중인 정산 분쟁을 모두 끝내자는 최종 합의금으로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인방산업은 현재 자금난 등으로 모든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반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처음부터 이 금액을 기준으로 협상해왔다는 입장이다. 양측은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