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포스트 아포칼립스'...유령도시로 바뀐 후쿠시마

2016-07-13 17:33:21

많은 사람이 영화, 문학, 게임 등으로 즐기는 SF 장르 중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세계종말을 테마로 한다. 인류 문명이 외계 침공이나 핵전쟁 등으로 종말한 다음 세상이 배경이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에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진도 9의 강진이 들어닥쳤다. 또다른 문제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더불어 단 두 번 뿐인 7등급 원자력 사고라는 것이다.
 
때문에 후쿠시마 지역은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렸다. 방사능이 퍼진 땅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가축과 야생 동물, 식물만이 어우러져 '종말이 왔다면 이런 모양일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지난 11일 말레이시아 출신의 사진작가인 키워 위 룽(27)은 이 곳을, 그 중에서도 일반인들의 접근이 차단된 '레드존'을 방문했다. 룽과 친구들은 새벽에 경찰의 눈을 피해 몰래 숲을 통해 잠입했던 것.
 
그는 이곳에서 찍은 많은 사진을 "눈이 불타는 느낌, 공기 중에서 맡을 수 있는 짙은 화학약품 냄새"라는 문구를 곁들여 공개했다.
 
소설 '그날이 오면',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 영화 '나는 전설이다', 게임 '폴아웃 시리즈' 등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묘사한 콘텐츠를 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룽의 사진을 보고 이를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반바지에 베낭을 맸지만 방독면을 쓰고 있는 룽의 모습만큼이나 그가 촬영한 후쿠시마의 사진은 기괴하다. 룽은 실제로 약탈 당했던 편의점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기웃거린다. 룽은 "아마 동물들도 먹이를 찾아 왔을 것"이라며 동물들의 흔적들도 발견했다.
 
'유령도시'의 모습은 계속됐다. 빨래방에는 빨래들이 그대로 남겨져있다. 룽은 세탁기에 사용했던 100엔짜리 동전들도 많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가정집에 걸린 달력은 사고가 일어났던 2011년 3월에서 멈춰있다. 당시 유행했던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2'는 박스채 버려져 있고, 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길거리에는 여전히 신호등이 깜박이고 있다.
 
룽은 "어릴때부터 텅빈 도시에 홀로 있는 걸 꿈꿨는데 이제 현실이 됐다"며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사진이 공개되자 이를 본 전 세계의 누리꾼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댓글 창에는 위험한 장소에 허가 없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대로 가상으로만 그리던 모습의 현실판 사진에 흥미로워하는 방문자들도 많다. 이와 별개로 최근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게임 '포켓몬 GO'를 언급하며 "거긴 포켓몬 없냐"고 묻는 철없는 누리꾼도 있다.
 
누리꾼들은 이처럼 다양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지만 말 한 마디 없는 후쿠시마의 사진은 오히려 많은 말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상혁 기자 sunny10@

<저작권자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