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명문사학이 소위 '교수들의 갑질문화' 퇴출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중심에 선 대학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국대학교. 근래들어 이 대학 일부 교수들은 욕설과 폭력, 성추행과 성폭력, 공금이나 연구비 유용 등 마치 막가파식 행보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대학 측은 이같은 일탈행위를 그대로 방치했다간 '교육의 요람'이 아니라 '부패 상아탑'으로 낙인찍힐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정부, 학생과 함께 비리교수 퇴출 운동을 펼치고 있다.
■ '교육의 요람' 아니라 '부패 상아탑'
동국대가 이처럼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비리교수 퇴출운동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상아탑 흔들림 현상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심경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대학 일부 교수들의 연쇄적인 비리 행위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지적이다.
먼저 사례로 졸업한 제자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대학 신문방송학과 김모 교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주점에서 졸업생 A씨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하고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김 교수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무기로 강제추행했다"고 진술했다. 김 교수는 혐의를 부인하며 "서로 눈 크기를 비교하는 등 장난을 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재학생이나 졸업생들도 해당 교수에게 추행을 당했다는 제보를 연이어 내놓으면서 문제가 확산일로에 있다.
피해를 보았다는 학생들 주장에 따르면 김 교수는 주로 자신이 만든 `독서모임'에서 이들과 만났다. 친구의 소개로 2013년 이 모임에 처음 나간 B씨는 "김 교수가 술자리에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캐물었고, `지갑에 콘돔이 있는데 끼지를 못한다'는 등의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적 표현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B씨는 "가슴 사이즈와 속옷 색깔을 물어봤고, 속옷을 사줄 테니 같이 고르러 가자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인 C씨는 "김 교수가 연예인 사진을 보고 `저런 애들은 맛이 없다. 너같은 허벅지가 좋다'고 하거나 `너는 내 은교다. 네가 내 은교를 해라'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김 교수는 문자로 `보고싶다' `따로 만나자'거나 `여행가자'는 말을 자주 한다"며 "학생들에게 허리에 손을 올리는 등의 스킨십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졸업생 중 현재 대학 강사로 재직 중인 D씨는 "재학 시절 만취한 채 집으로 찾아온 김 교수가 특정부위를 가리키며 `연고를 발라달라'고 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호소하는 등 김 교수에 대한 피해사례가 연이어 신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 여학생 기숙사 무단침입 들키자 "어디 교수한테 덤벼!"
최근에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도 빚어졌다. 이 대학 어문계열의 한 남자교수가 여학생 기숙사를 무단 침입해 경비원에 들키자 막말을 해 논란이 되고 있는 것.
대학측에 따르면 김모 교수는 지난 1일 술자리를 마치고 중국인 유학생 E씨를 기숙사에 데려다 준 뒤 나가는 과정에서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경비원이 없는 사이 무단으로 기숙사에 들어온 해당 교수에 출입 경위 등을 물어보자 "싸가지 없는 XX, 어디 교수한테 덤비냐"는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곤 "넌 때려도 개 값도 안 돼서 안 때려" 등의 막말도 이어졌다.
경비원이 "나이 먹은 사람한테 이러면 되냐, 저런 놈도 교수라고 그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불쌍하다"라고 응수하자 그는 "나이를 쳐먹었으면 나이 값을 하라"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CCTV 화면에는 김 교수가 경비원의 어깨를 밀치는 모습도 담겼다.
■ 국가 연구비 착복하고 뒷돈도 챙겨
이에 앞서 지난 8월에는 조모 교수가 정부의 연구지원비 8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또다시 대학측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서울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조 교수는 지난 2008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농촌진흥청이 동국대 산학협력단에 지원한 연구비 8억65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그는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받은 연구비를 연구원에게 인건비로 지급했다가 다시 돌려받는 수법으로 5억6500만 원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별개로 농촌진흥청 지원금으로 발급한 연구비 카드로 연구재료 대금을 75차례에 걸쳐 허위 결제하고 이를 돌려받아 3억 원을 몰래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 장학금 가로채고 심사비 명목으로 돈 뜯어내
교수들의 비리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았다.이젠 잊을만 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던 지난 12일, 지도 교수가 대학원생의 장학금을 가로채고 논문심사비 명목으로 수백만 원을 챙겼다는 주장이 제기돼 학교 측이 조사에 나서 또 한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동국대에 따르면 지난 8월 대학원생 9명은 지도 교수가 제자들에게 부당한 돈을 요구했다며 이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최근 학내 인권센터에 제출했다. 증거자료로 교수가 수시로 돈을 요구하는 내용의 통화 녹음 파일 등도 함께 냈다.
대학원생들은 "교수가 논문 심사비로 200만 원을 요구하고, 3년간 학생들의 장학금을 가로채왔다"며 "또한 교수가 학생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게 한 뒤 연구조교 월급을 해당 계좌로 들어오게 해 받아 챙겼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수가 증거가 남지 않도록 수표 말고 현금을 달라고 요구했다"고도 밝혔다.
■ 견제없는 교수사회, 감시기구 설립 필요성 제기
이런 사건은 비단 동국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일련의 사건이 동국대에 집중되고 이에 따라 마치 '교수 비리의 백화점'으로 인식된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육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교수 사회의 고질적인 갑질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기구 설립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 동국대의 한 관계자는 "교수 사회가 외부의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 특성을 감안해 보다 실질적인 제재를 할 수 있는 학내 감시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이 대학은 지난 5월부터 학생이 지도교수를 교체할 수 있는 '지도교수 자율선택제'를 시범 운영하면서 의미있는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학생들이 교수의 비위 행위에 대해 부담 없이 신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국대에서 지난 1년간 지도교수 교체 신청서를 낸 학생은 46명.이들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폭언, 성추행, 개인 업무 지시, 논문 대필 등을 경험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동안 시범 운용을 통해 학생들의 만족도를 확인한 동국대는 지난 8월 국가인권위원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이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아무튼 '교수들의 갑질문화' 퇴출 공개 선언한 동국대의 용기있는 행보에 이래저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홍규 기자 4067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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