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과 AI가 손잡으면 인류 역사 바뀔까

미래학자 제이미 메츨 <슈퍼컨버전스, 초융합 시대가 온다>
개인 맞춤형 의료·바이오 기반 경제 등 산업지형 대변혁 예고
"생명설계 기술이 불러올 생태계 혼란·유전적 격차는 위기"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2026-01-25 09:00:00

생명공학에서는 크리스퍼(CRISPR·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정확히 잘라내고 편집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를 통해 선천성 질병을 태아 단계에서 치료할 수 있다. 한국유전자협회 제공 생명공학에서는 크리스퍼(CRISPR·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정확히 잘라내고 편집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를 통해 선천성 질병을 태아 단계에서 치료할 수 있다. 한국유전자협회 제공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폴드’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던 단백질 구조 분석을 단 몇 분 만에 끝내면서 인류의 미래는 완전히 바뀌고 있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그리고 AI가 손을 잡은 순간 인간은 의료·식량·에너지·경제·환경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혁신이 ‘초융합’하는 거대한 전환점을 마주했다.

세계적 미래학자 제이미 메츨은 혁신이 완전히 다른 스케일로 벌어지는 시대적 흐름을 ‘초융합’(Superconvergence)으로 규정하며, 이 혁명이 앞으로 우리의 생활과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전망했다. 역저 <슈퍼컨버전스, 초융합 시대가 온다>를 통해서다.

저자는 의료, 식량, 농업, 축산업, 경제, 환경, 질병, 경제 구조 등에서 5~10년 안에 현실화 될 변화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선택이 필요할지 강렬하고 생생하게 소개한다.

저자가 말하는 ‘초융합’은 단순히 기술이 융합되는 차원을 넘어 서로 다른 영역이 새로운 가치 체계를 형성하는 단계다. 인공지능이 생명공학을 가속화하고 생명공학이 다시 AI를 고도화하는 식으로, 기술 생태계 전체가 동시에 상승 곡선을 그리며 인류 문명을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실험실과 병원, 산업 현장 등에서의 대표적인 변화들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먼저 의료는 이제 ‘아프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프기 전에 예방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100달러면 자신의 전체 유전체를 읽을 수 있고, AI는 영상 진단에서 의사보다 암을 5년 먼저 발견한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정확히 잘라내고 편집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로 선천성 질병을 태아 단계에서 치료하며, 신생아는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 건강 계획을 설계받는다. 개인의 면역세포를 편집한 CAR-T(암세포를 인식할 수 있는 수용체) 치료는 정상세포가 아닌 암 세포만 직접 공격하도록 프로그램된다.

3D 프린터는 귀를 만들고 심장을 배양하며, 약물유전체학은 ‘모든 사람에게 다른 처방전’이라는 정밀 의료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mRNA 백신의 다음 목표는 암을 독감처럼 예방하는 것이다. 이제 의료는 ‘치료’ 단계에 머물지 않고 ‘예방·예측·개인화’라는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식량 시스템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크리스퍼는 단 세 개의 유전자를 편집해 쌀 수확량을 세 배까지 올렸고, 가뭄·병충해에 스스로 대응하는 스마트 농작물을 실험실에 등장시켰다. 합성 미생물은 화학비료 없이 작물을 잘 키우면서도 토양을 되살린다. 축산업은 동물 없이도 고기를 만드는 실험실 배양육과 식물성 단백질 기술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산업과 경제도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 박테리아로 기름을 만들고, DNA 1g에 도서관 전체 분량의 데이터를 저장한다. 또 살아 있는 시멘트가 스스로 건물의 균열을 치유한다. 거미줄은 방탄 소재가 되고,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 소재는 플라스틱을 대체한다.

석유에서 세포로, 채굴에서 배양으로 이동하는 바이오 경제는 환경을 넘어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흐름으로 설명된다. 바이오 경제가 단순히 친환경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효율적이고, 더 강력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인 이유도 설명한다.

하지만 모든 기술 혁신이 인간에게 밝은 미래만 선물할까? 저자는 초융합으로 인한 변화가 인류에게 거대한 기회인 동시에 심각한 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생명공학 실험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생명공학 실험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생명 설계 기술은 질병을 고칠 수 있지만 동시에 생태계를 흔들고 유전적 격차를 만들 수 있다. 전지전능한 기술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통제하며,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생명과 데이터의 시대에 권력이 어디로 집중될 것이냐에도 저자의 고민은 담겨있다.

이 책은 단순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류가 스스로의 운명을 설계할 수 있는 나침반 역할도 한다. AI·바이오테크·유전공학의 발전 속도와 그 의미를 이해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수적인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의료와 바이오, AI 관련 산업의 전문가뿐 아니라, 정책·기획 분야 종사자, 미래 사회 변화를 실감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앞으로의 10년은 단순히 기술을 사용하는 시대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우리가 미래를 설계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저자는 외친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 몸과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통찰하면서 초융합 시대의 미래를 직접 설계해 보자. 제이미 메츨 지음/최영은 옮김/비즈니스북스/616쪽/2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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