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2025-01-13 17:48:39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일주일(현지 시간 오는 2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의 대미 외교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일찍이 방위비 증액을 압박해 온 데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정상 외교’ 중요성이 더욱 커졌지만 한국은 탄핵 정국으로 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13일 외교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기치로 백악관 재입성에 성공한 트럼프는 2기 행정부에서 한국과의 동맹에 대해서도 거래적 관점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그는 지난해 10월 선거 유세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 현금 인출기에 빗대며 2026년 적용될 방위비 분담금의 9배 수준인 100억 달러(약 14조 5000억 원)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 집권 후인 2017년 6월 첫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거 기간 동안 한국 방위비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 외에도 ‘거래 중심’ 동맹관을 내비쳐 온 만큼 8년 전보다는 압박 시점은 과거와 달리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등을 통해 트럼프 측에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대행 체제인 한국은 현실적으로 미국의 방위비 분담 압박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다 트럼프 당선인이 1기 때 브로맨스를 과시한 김정은과 대화를 추진할 경우 한국 정상 공백 상황은 더욱 뼈아플 전망이다. 그는 지난해 선거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핵을 가진 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으며, 당선 뒤에는 인터뷰를 통해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며 김정은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트럼프 당선인은 이미 새 정부에 알렉스 웡(국가안보 부보좌관)·윌리엄 보 해리슨(대통령 보좌관) 등 1기 행정부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인사들을 기용하며 정책의 틀을 짜기 시작한 상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일찌감치 정상 외교에 돌입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다음 달 초 미국을 방문, 트럼프 당선인과 첫 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요미우리신문은 이 자리에서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외교부를 중심으로 트럼프 정부와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 취임 직후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을 특사로 파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취임식에도 우리 측 정부에서는 조현동 주미대사가,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나경원, 김대식, 조정훈 의원, 경제계에서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풍산그룹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이 참석한다.
다만 계속되고 있는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 때문에 트럼프 측이 대행 체제의 한국 입장을 얼마나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조 장관은 이 같은 처지에 대해 지난 7일 한국외교협회 신년회 신년사에서 “우리 외교는 미증유의 국내 정치적 갈등 상황으로 인해 손발이 묶여있는 형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7년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전화 통화만 했을 뿐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울러 2017년과 달리 이번에는 트럼프 당선인이 경험이 쌓인 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각종 정책 수립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한국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세계가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재입성을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만 내부 정치 상황을 이유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경제가 이미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 만큼 정치권의 냉정한 판단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