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07-01 09:37:15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그만큼 많이 배운 작품이에요.”
배우 박보영의 연기 변신이 눈부시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쌍둥이 자매 유미지와 유미래를 동시에 연기했는데 결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을 180도 다르게 그려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그의 또 한번 도전이자 연기 확장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BH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박보영은 “부담이 컸지만, 그만큼 욕심도 많았던 작품이었다”며 “촬영 전엔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지만, 끝나고 나니 내게도 위로가 된 드라마였다”고 미소 지었다.
박보영이 1인 2역에 도전한 미래와 미지는 성격이 정반대다. 서울의 공기업에 다니는 미래는 차분하고, 고향에서 어머니와 사는 미지는 무척 밝다. 박보영은 회사 내 괴롭힘과 성추행으로 고통받는 미래와 미래를 도우려는 미지가 서로 삶을 바꾸면서 ‘미래인 척하는 미지’ ‘미지인 척하는 미래’까지 사실상 각기 다른 네 개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박보영은 “미래와 미지 캐릭터에 과하게 차이를 두기보다 각자만의 디테일을 살리려 했다”며 “예를 들어 미래는 늘 꼿꼿이 앉아 있는 반면 미지는 구부정하게 걸터앉는다”고 말했다. 하루에 두 캐릭터를 모두 촬영할 때는 감정이입에 힘썼다. 박보영은 “차분한 미래를 찍을 때는 대기실에서 나갈 때부터 기운 없이 어기적거리며 걸어 가고, 밝은 미지를 찍을 때는 높은 톤으로 ‘빨리 가자!’ 외치며 뛰어갔다”며 “각자의 텐션을 만들기 위해 그 캐릭터로 지내는 시간을 늘리려 했다”고 말했다. “미래는 아이라인을 깔끔하게 채우고, 미지는 일부러 점막을 비워뒀어요. 말투, 걸음걸이, 헤어스타일까지 다르게 설정했죠.”
미래와 미지가 함께 있는 장면을 촬영할 땐 특히 난이도가 높았다. 그는 “(연기 상대가 없어) 허공을 보며 연기하기도 했다”며 “미래, 미지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붙였을 때 어색하지 않게 눈 높이와 리액션 타이밍 등을 하나하나 계산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박보영은 “안 하던 것을 하다 보니 많이 성장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1인 2역은 다시 안 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힘들수록 성장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작품을 한 뒤 내 스스로가 성장한 것이 느껴진다”며 웃었다.
작품 곳곳에 나오는 대사는 시청자뿐 아니라 박보영에게도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부상으로 육상 선수의 꿈이 꺾여 3년간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한 미지가 할머니에게 “너무 초라하고 지겨워. 나한테 남은 날이 너무 길어서 아무것도 못하겠어”라며 울 때 할머니가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라고 말한 장면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박보영도 그랬다고. 그는 “저도 ‘이렇게 많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지, 막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며 “미지의 대사가 너무 가슴에 걸렸고, 할머니의 말이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20년 차 배우 박보영은 여전히 매일을 고민하고 성장해가는 중이다. 2006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한 그는 영화 ‘과속스캔들’ ‘늑대소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힘쎈여자 도봉순’ ‘멜로무비’ ‘조명가게’ 등에 출연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충무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박보영은 연기에 대한 애정, 팬들의 응원, 그리고 자신을 다잡는 시간까지 모두 그의 연기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차기작은 ‘골드랜드’다. 박보영은 “예전엔 연기란 걸 평생 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이게 내 운명이구나’ 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떤 작품이 ‘박보영이 어떤 배우인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번 드라마가 그 답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박보영이 보여줄 앞으로의 20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