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5-04-24 15:36:28
“부산일보도 압수수색 당할라.”
지난해 11월 7일 대통령 기자회견 때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건넸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당시 박 기자는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두루뭉술하다고 지적했을 뿐이었는데, 독자들은 ‘압수수색’을 우려했습니다.
이런 반응이 나올 법도 합니다. 실제로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대통령 심기를 건드리는 보도로 압수수색을 당했습니다. 뉴스타파는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명태균 게이트’ 등을 최초 보도한 매체입니다. 이들은 압수수색을 비롯해 검찰과 정치권으로부터 온갖 압력을 받은 과정을 기록해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검찰이 상영을 막으려 한 이 영화가 지난 23일 개봉해 직접 관람해 봤습니다.
말로만 듣던 압수수색을 실제로 당해보면 어떤 심정이 들까요? 압수수색 현장에서 검사와 수사관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탐사보도 전문 기자는 압수수색에도 담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압수수색’을 보면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는 SBS 시사교양 ‘그것이 알고 싶다’나 문화방송의 ‘PD수첩’ 같은 형태를 취합니다. 의심스러운 사건을 취재한 과정을 상세히 풀어내는 식입니다. 그러나 ‘압수수색’은 이러한 취재기에 더해 정치권과 검찰로부터 표적수사를 당할 때의 압박감과 이에 맞서는 사명감에 집중합니다. 수사기관과 정치권, 언론의 추악한 면을 조명한다는 점에선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2016)이나 정언유착을 다룬 ‘공범자들’(2017)과 유사합니다.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는 여러 굵직한 특종을 터트려왔습니다. 대선 직전 나온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녹취록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해당 녹취에서 김만배 씨는 윤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무마시켰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습니다. 당시로써는 대선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대형 보도였습니다.
이 보도는 그러나 뉴스타파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권에서는 해당 인터뷰가 허위로 조작된 대선 개입 시도라며 ‘사형’까지 언급했고, 검찰은 이례적으로 대규모 수사단을 꾸렸습니다. ‘압수수색’에 대한 전조 증상이었습니다. 뉴스타파 기자들도 압수수색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9월, 뉴스타파 본사와 기자들의 자택에 검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영화는 이 압수수색 사건을 중심축에 두고 진행됩니다. 주인공도 압수수색을 당한 뒤 현재까지 재판을 받고 있는 뉴스타파 기자들입니다. 김용진 전 대표와 한상진, 봉지욱 기자는 압수수색을 당했을 때의 당혹감과 분노, 공포감 등을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압수수색 현장을 생생히 촬영한 영상은 현장감과 몰입감이 상당합니다. 이와 함께 압수수색을 당하기 전까지 여권 정치인들이 펼친 강도 높은 공세, 그리고 검찰 수사의 미심쩍은 부분들을 지적하며 뉴스타파에 대한 수사가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가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뉴스타파는 윤 전 대통령 입장에선 눈엣가시였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의 악연은 윤석열이 검찰총장 후보였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뉴스타파는 그가 인사청문회에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과 관련한 거짓말을 한 사실을 포착하고 이를 단독 보도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에도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관여 의혹을 최초 보도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보도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불쾌감을 여러 차례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 역시 뉴스타파가 처음 보도했습니다. 뉴스타파 측 주장처럼, 다수의 언론과 전문가는 명태균 게이트로 코너에 몰린 윤 전 대통령이 최후의 발악 차원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분석합니다.
결국 영화가 이야기하는 건 저널리즘입니다. 권력이 언론을 압박하고 통제하는 행태를 고스란히 담아 비판의식을 갖게 하는 한편, 언론의 진정한 역할은 견제와 감시라는 점을 역설합니다.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는 관객에겐 기자들의 사명감이 드러나는 대목이 인상적일 겁니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전개 덕에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뉴스타파 구성원들끼리 대화하는 장면 중 일부는 약간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부 관객에게 영화 속 사건은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평소 뉴스를 관심 있게 봤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흐름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습니다.
영화가 답답함과 분노를 유발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기자들이 받는 재판도 검찰의 편향성 논란도 현재진행형인 탓에 속 시원한 마무리가 없고, 이렇다 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은 위안이 되지만 언론과 검찰 개혁이 요원하다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현실 ‘빌런’들이 분노를 유발하기 때문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욕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 기자 근처에 앉은 한 관객은 몇몇 장면에선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탄식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한편, 검찰은 앞서 지난 1일 영화 ‘압수수색’이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상영을 막아 달라고 법원에 요구한 상태입니다. 영화는 개봉 이튿날인 24일 오후 현재 6000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독립영화 히트작’ 기준인 1만 관객은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