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공짜 탄소’ 시대… ‘유료 배출권’ 시장 경쟁 본격화

기후부, 4차 온실가스 목표 확정
발전 유상할당 10%→50% 상향
‘그린 머니’ 거래 시장 성장 기대
배출권 가격 약세, 당분간 지속
수요 늘며 가격 점차 상승할 듯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2025-11-17 07:00:00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제4차 배출거래제 할당계획 및 산업계 대응방안’ 세미나가 개최됐다. 한국거래소 제공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제4차 배출거래제 할당계획 및 산업계 대응방안’ 세미나가 개최됐다. 한국거래소 제공

정부가 더욱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업계 대응이 바빠진 가운데, 그동안 ‘반쪽짜리’에 불과했던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도 활성화될지에 관심이 모인다. 사실상 ‘공짜 탄소 시대’가 끝나고 ‘진짜 탄소 거래’ 시장이 열릴지, 선물 옵션 등 다양한 탄소 파생상품들과 결합한 ‘그린 머니’ 시장이 열릴지 주목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1일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53~61%로 최종확정하고, 제4차 계획기간(2026~2030)의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을 최종 심의했다. 정부는 특히 발전 부문의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을 현재 10%에서 2030년 50%가 되도록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유상할당이 50%라는 의미는 무상할당이 50%, 경매 등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할당량이 50%라는 의미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각 업계는 탈탄소 설비 확대냐 배출권 구입이냐 등을 놓고 시기와 방식을 조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탄소 배출이 많은 ‘굴뚝 산업’에는 탄소 비용이 ‘환경 구호’가 아닌 ‘실질 비용’이 된 만큼 업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가령 연간 100만t의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의 경우 지금까지는 10만t만 구매하면 됐지만, 유상할당 비중이 50%로 늘면 50만t을 사들여야 한다. t당 1만 원만 잡아도 추가 비용 부담이 40억 원이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배출권시장협의회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제4차 배출거래제 할당계획 및 산업계 대응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김마루 기후경제과장은 3차 계획기간(2021~2025)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배출권거래제 4기 할당 계획의 주요 내용과 향후 과제를 발표했다. 김 과장은 “배출권 대부분인 96%가 무상으로 할당되는 등 느슨한 총량 설정과 낮은 유상 할당으로 공급과잉이 지속되며 배출권 가격은 약 1만 원 수준으로 감축 투자 유인이 저하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과장은 이번에 늘어난 유상할당 비율과 관련해 “효율이 우수한 기업에는 배출권 할당량을 늘리는 등 인센티브를 주고, 할당 대상을 62%에서 77%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24일부터 할당대상업체와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회사, 연기금 등 제3자가 참여하는 위탁거래 시스템도 가동한다. 위탁매매가 도입되면 증권사 등의 중개로 시장 접근성이 대폭 높아지고 거래 절차가 효율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를 통해 배출권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김 과장은 “위탁매매 이후 선물시장, 금융상품 도입을 통해 시장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탄소배출권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 이를 헤지(Hedge)하기 위한 선물, 옵션 등 다양한 파생상품이 시장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관련 상품 개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업들은 정부가 정해준 할당량 안에서 배출 활동을 하면서 여유분을 시장에 팔 수 있고, 반대로 할당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려면 배출권을 사야 한다.

지금까지 문제는 느슨한 총량과 낮은 유상할당 비율로 공급 과잉이 지속되다 보니 배출권 가격이 매우 낮게 설정됐다는 점이다. 탄소를 감축하게 위해 들이는 비용보다 배출권 가격이 싸면, 기업으로서는 온실가스를 배출한 후 시장에서 배출권을 헐값에 사들이는 게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이시형 과장은 온실가스 감축 투자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이 1·2차(76%·63%) 대비 3차(36%)에 오히려 더 줄었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할당배출권 거래 가격은 1만 550원으로, 처음 도입된 2015년 평균보다도 낮다. 최근 유럽연합(EU)의 배출권 평균 거래 가격이 70유로대(11만~12만 원대)인 것에 비춰보면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다. 정연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약 1억 4000t에 달하는 배출권이 3차에서 4차 기간으로 이월될 것으로 예상돼 4차 기간 초기에도 배출권 약세 흐름은 불가피해 보인다”면서도 점차 배출권 수요가 증가하며 시장 활성화와 배출권 가격의 점진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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