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11-09 15:25:24
블랙핑크 로제(오른쪽)와 함께 아파트를 부른 팝 스타 브루노 마스. 연합뉴스
K팝이 미국 최고의 대중음악시상식 그래미 어워즈 본상인 ‘제너럴 필즈’ 후보에 진입했다. 현지 언론들은 "K팝이 주류 무대에서 인정받았다"고 평가하며 이 같은 결과를 ‘장르 위상 변화’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팬덤 중심 확장에 머무르던 K팝이 세계 권위의 시상식에서 본격적으로 평가 테이블에 오른 것이다.
7일(현지 시각) ‘제68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를 주최하는 전미 레코딩 예술과학 아카데미(레코딩 아카데미)에 따르면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는 히트곡 ‘아파트’(APT.)로 본상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 부문인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와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K팝 가수가 본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 등의 후보에 오른 건 처음이다.
1959년 시작된 그래미 시상식은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4대 시상식으로 꼽힌다. 가장 영예로운 상은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베스트 신인, 올해의 작곡가, 올해의 프로듀서 등 ‘제너럴 필즈’로 통칭되는 6개 본상 부문으로 꼽힌다. 앞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그래미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던 적은 있지만, K팝 장르로 분류된 노래와 그 곡을 부른 가수가 본상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린 적은 없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골든’(Golden)은 ‘올해의 노래’를 비롯해 총 5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골든’은 ‘아파트’와 ‘올해의 노래’ 트로피를 두고 경합하게 됐다. K팝 장르로 분류된 노래가 본상 부문 후보로 진출한 것 역시 최초로, 이 부문 후보 8곡 중 2곡이 K팝인 점도 주목된다.
하이브와 미국 게펜 레코드의 합작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는 ‘최고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베스트 뮤지컬 시어터 앨범’ 후보로 지명됐다. K팝 시스템으로 육성된 그룹과 한국 창작 뮤지컬까지 후보 범위가 확장된 건 산업 전반의 장르적 다양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해외 언론들은 이번 결과를 단순한 화제성이 아닌 평가 지형의 이동으로 해석했다. LA타임스는 “K팝이 주요 부문에 오른 것은 이 장르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님을 보여준다”며 “레코딩 아카데미가 K팝을 팝 음악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는 “K팝은 지난 10년간 글로벌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사적으로 외면 받아왔다”며 “그러던 것이 올해는 달라졌다. K팝 가수들이 사상 처음으로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곡의 주요 부문 후보 지명은 역사적이지만 전혀 놀랍지 않다”고 봤다.
다른 매체 골드더비는 “K팝 장르가 과거 레코딩 아카데미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K팝이 오랜 기다림 끝에 그래미 어워즈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것에 수백만 K팝 팬들이 기쁨을 터뜨리고 있다”고 했다. 이 매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후보 지명을 언급하며 "수많은 한국 아티스트들이 이 사운드트랙의 성공에 기여한 점을 고려하면 K팝 장르의 승리임이 분명하다"고 짚었다. 영국 BBC는 로제를 “그래미 ‘빅4’ 부문 후보에 오른 최초의 K팝 아이돌”로 소개하며, K팝이 미국 음악 시장에서 독립적인 경쟁력을 갖춘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석했다.
이번 시상식은 내년 2월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다. 수상자와 수상작은 약 1만 5000명의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 투표로 결정된다. 오는 12월 12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본상을 포함한 총 95개 부문에 대한 투표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