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의 왕’ 금, 전쟁통에 가격 왜 떨어졌을까

중동 사태 후 10% 가까이 빠져
달러 강세·현금화 수요 영향 탓
수익률 오른 미 국채 선호도 한몫
휴전 기대감 속 가격 반등 전망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2026-04-13 17:50:15

통상 전쟁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 금값이 오른다는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치솟은 국채 금리와 위축된 시장 유동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점에 골드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통상 전쟁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 금값이 오른다는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치솟은 국채 금리와 위축된 시장 유동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점에 골드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안전자산의 왕’으로 평가됐던 금값이 최근 전통적 공식을 깨고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라는 대형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에도 불구하고 금값이 전쟁 이후 약 10% 가까이 급락하는 이례적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금리·유동성에 눌린 ‘안전자산’

13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국제 금 현물가격은 지난 9일 종가 기준 4818.00달러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약 45%나 높은 수준이지만, 전쟁이 초기인 3월 2일과 비교하면 약 10%나 빠진 수준이다. 월간 기준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낙폭이다.

하락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해협과 이란의 핵 문제를 둘러싸고 민간·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위협을 주고받으며 긴장이 고조됐고, 이는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을 키웠다. 문제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금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한 달 새 40% 이상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이게 금시장에는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했다.

금값을 짓누른 핵심 변수는 금리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약 4% 수준에서 한 달여 만에 4.40%까지 치솟았다. 또 다른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대한 수익률이 오르는 만큼 금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감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라지며 금 투자 심리도 더욱 위축된 상태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시장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는커녕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유동성 문제도 영향을 줬다. 유가 급등으로 파생상품 시장의 증거금 부담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현금 확보에 나섰고, 보유하고 있던 금을 서둘러 내다 팔면서 금값 하락을 부채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세계금협회(WGC)는 이번 금값 하락의 핵심 원인을 금리보다 ‘현금화 수요’에서 찾고 있다. 시장 충격 시 금이 가장 먼저 팔리는 ‘기계적 매도’가 작동했다는 분석이다. 달러 강세 역시 금값 하락의 또 다른 축으로 평가된다.

다만, 최근 시장 분위기는 다시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완화되고 휴전 논의가 이어지면서 금값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단기간 급락에 따르면 기술적 과매도 구간 진입 역시 반등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금시장의 금 가격(99.99_1kg)은 전장보다 0.62% 오른 1g당 22만 6700원에 지난주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달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최후통첩 시한을 하루 앞두고 7.87% 급락해 20만 8530원까지 밀렸던 것 대비 낙폭을 회복한 모습이다.

■휴전 기대에 금값 재상승 ‘기대감’

전문가들은 향후 전쟁이 마무리될 경우 금 가격이 다시 상승 흐름을 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NH투자증권 황병진 연구원은 글로벌 자산시장의 ‘긴축 발작’에도 전쟁 이후에는 귀금속 강세 사이클이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목된 케빈 워시가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구분 없는 ‘에브리씽 랠리’가 재현될 것으로 전망했다. 황 연구원은 “(금값에 대해) 2분기에는 3월 급락 이후 저가 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라며 연내 금 가격을 온스당 4400∼6000달러 범위로 예상했다.

대신증권 최진영 연구원도 “이란 전쟁이 종료되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경기침체) 우려가 후퇴하며 금의 헤지 수요가 다시 올라가 반등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JP모건 등 주요 기관들 역시 금값이 온스당 6000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금리와 유동성에 눌려 있을 뿐, 구조적 상승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전망의 근거 중 하나로는 중앙은행의 꾸준한 매수가 꼽힌다. 실제 중국 인민은행은 17개월 연속 금 보유량을 늘리며 매입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금값이 급락하는 상황에서도 매입을 지속한 것은 금에 대한 정책적 신뢰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글로벌 중앙은행들 역시 달러 자산 변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금 비중을 확대하는 추세다. 금을 ‘비신용 자산’으로 보고 외환보유고 안정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시장에서는 향후 금값의 향방을 결정할 요인으로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와 중동 정세를 지목한다. 금리 하락과 유동성 완화가 맞물릴 경우 금값은 다시 강한 상승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긴축 환경이 장기화될 경우 반등폭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으로 ‘위기 때는 금을 사라’는 오랜 시장의 공식이 흔들렸지만, 금이 여전히 핵심 안전자산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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