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4-12-16 15:24:58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2025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유난히 많은 작품이 몰려든 이유도 우리가 직면한 지금의 시대에서 찾아야겠다. 올해 신춘문예에는 비혼, 노인 문제, 유튜브, 코인, 1인 가족, 청년실업, 반려 식물, 기후위기,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쓰레기까지 당면한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흘러넘쳤다.
202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는 6개 부문에 걸쳐 1531명이 4271편을 응모했다. 1321명이 3733편을 응모한 지난해에 비해 우선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시와 소설이 급증했고, 시조·아동문학·평론은 비슷했고, 희곡·시나리오는 다소 줄었다. 특히 시에 많은 작품이 몰린 현상은 상금이 늘어난 덕분도 있지만 지금 시대에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희곡·시나리오의 감소는 지난해 너무 많은 작품이 몰린 데 따른 올해의 기피 현상으로 분석된다.
단편소설(322명 324편)에 응모한 작품들은 모두 치열하게 쓴 흔적이 역력했다. 청년들은 여전히 밥벌이를 위해 분투하다 좌절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취업에서 나아가 연봉, 주식, 코인 등 돈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예심위원들(나여경·이병순·이정임 소설가)은 “하지만 단순히 소재로 그치고 전체 서사와 긴밀하게 연결해 의미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부분이 아쉬웠다. 주제를 밀고 가는 뒷심이 약한 탓이다”라고 평가했다. 예년에 비해 학교생활을 다룬 작품이 많은 점도 특징으로 꼽혔다. 자서전, 수필 형식, 장편소설 분량의 원고 등 신춘문예 투고 기준에 어긋나는 작품도 있었다. 모두 7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본심(정찬·정인 소설가)에서는 별것 아닌 이야기 속에 우리 삶의 현실을 은유하는 서술이 독특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의 새로운 시도는 결이 달라 보여 신춘문예에 아주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597명 2405편)에는 작품이 쏟아졌다. 지난해 462명 1846편뿐만 아니라 예년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 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힘들기만 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가족 중에서도 노년의 삶이나 편의점 알바와 같은 젊은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식물을 대상으로 자아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시도 많았는데, 요즘 1인 가족이 반려 식물과 함께 생활하는 흐름과 통했다. 패미니즘적 주제가 줄어든 것도 눈에 띄었다. 시적 수준이 많이 향상되어 사회적 시선이 예리하면서 좋은 표현이 많았다는 심사평(신정민·조말선 시인)이 나왔다.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표현도 좋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조(113명 445편)는 수준의 편차가 심하고 시조의 틀에 내용을 가둔 작품들이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이 눈에 띄고, 철학이 녹아 있고, 현시대의 아픔을 고민하는 작품도 많아 평년작 이상이었다. 시조가 독립 장르로서 그 위치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작품을 기대한다는 심사평(정희경 시조시인)이 나왔다.
아동문학(동화 146편, 동시 210명 798편) 동화(동화작가 배익천)에는 생활동화가 주류였으나 마녀 이야기에서 A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타지가 시도되었다. 동시(박선미)에서는 청년의 실업문제를 조명하거나 기발한 비유를 통해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올해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보내온 작품이 모두 일정한 수준 이상을 잘 유지한 동시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혔다.
희곡·시나리오(111명 118편)에는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운 마음이 공간으로 투영되며 원룸 같은 좁은 공간이 두드러지게 선택되는 특징을 보였다. 심사평(김문홍 극작가, 김남석 교수)은 “자살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 점, 연극 혹은 예술의 세계를 작품의 기반으로 한 메타 연극적 요소가 비중 있게 출현한 점, 역사의 상처와 민중의 아픔이 투영된 작품도 간혹 나타난 점이 주목할 만한 경향이다”라고 밝혔다.
평론(영화 18편, 문학 17편)에서는 기후위기, 인류세, 신유물론, 장르 융합 등 새로운 이론의 경향을 성급하게 좇는 경우가 있었다. 심사평(구모룡 평론가)은 “논문에 가깝거나, 주관적인 인상 비평이거나, 지나치게 난해한 형식이 적지 않았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텍스트 해석과 이론과 방법의 균형을 이룬 문학 평론이 당선작으로 낙점됐다. 각 부문 당선자에게는 이미 개별 통보를 마쳤고, 당선작은 내년 1월 1일 자 지면에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