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통영 해저터널 미디어아트 또 퇴짜

현대문화유산분과위 현상변경 ‘보류’
“구체적 원형 보존 계획·유료화 미흡”
2023년 첫 심의 땐 ‘부결’ 판정 받아
통행료 징수 반감 여전, 백지화 우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2025-01-22 15:38:05

동양 최초 해저 구조물인 통영 해저터널 입구. 부산일보DB 동양 최초 해저 구조물인 통영 해저터널 입구. 부산일보DB

경남 통영시가 민자 사업으로 추진해 온 ‘해저터널 미디어아트 테마파크’(부산일보 2024년 1월 3일 자 11면 등 보도)가 좌초 위기다. 국가등록문화재인 탓에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가 필수인데, 주무 부처인 국가유산청 허가 보류에 제동이 걸렸다. 통행료 징수 논란으로 지역 내 반감이 상당한 가운데, 인허가 절차까지 하세월 하면서 사업 자체가 백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 연말 개최한 ‘제6차 현대문화유산분과위원회 회의’에서 통영시가 요청한 ‘통영 해저터널 현상변경 허가 신청’을 출석위원 8명 만장일치로 ‘보류’ 의결했다.

위원들은 문화재 원형 보존의 구체적 계획과 전시 콘텐츠(유료화) 방안, 터널 활용구간에 영향을 미치는 설치계획 등 상세도면(구조물 고정 부분 등), 터널 주변 부대시설(신축포함) 활용 계획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 제시가 미흡하다고 짚었다.

통영 해저터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집단촌이 형성된 미륵도(봉평동)와 육지(당동)를 연결하려 건설된 동양 최초 해저 구조물이다. 1927년 5월 착공해 5년여 만인 1932년 12월 개통했다. 당시 바다 양쪽을 막은 뒤 콘크리트로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 해수면 기준 최대 깊이 10m 규모 터널을 완성했다.

초기엔 사람은 물론 차량도 오갈 수 있었지만, 노후화로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자 1967년 충무교 개통 후 차량 통행은 금지됐다. 이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제201호)으로 지정됐다.

터널 입구에 걸린 ‘용문달양(龍門達陽, 용문을 거쳐 산양에 도달한다)’이란 멋스러운 글귀와 달리 터널에 들어서면 어둡고 칙칙한 콘크리트 통로만 계속된다. 부산일보DB 터널 입구에 걸린 ‘용문달양(龍門達陽, 용문을 거쳐 산양에 도달한다)’이란 멋스러운 글귀와 달리 터널에 들어서면 어둡고 칙칙한 콘크리트 통로만 계속된다. 부산일보DB

하지만 명성에 비해 볼거리가 없어 관광지로는 외면받았다. 터널 속은 어둡고 칙칙한 콘크리트 통로만 계속될 뿐이다. 한 차례 새 단장을 거쳤지만 밋밋하긴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한국지식산업연구원 설문조사에서 통영을 찾는 관광객 10명 중 8명(79.1%)이 해저터널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해저터널을 찾은 방문객 71%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이 중 42%는 ‘매우 불만족’ 의견을 냈다.

이에 통영시는 해저터널 안팎을 복합 미디어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하고 2019년 타당성 조사 용역을 거쳐, 2021년 (주)통영해저테마파크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사업자는 기본계획을 토대로 215억 원을 들여 역사와 문화, 미래가 공존하는 문화 시설로 탈바꿈 시킨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당동과 미수동 진출입부에 높이 11.2m, 폭 11.1m 지상 2층 규모 박스 형태 유리 구조물을 세운다. 해풍 등에 취약한 입구 목조물을 보호하면서 현대적 느낌을 극대화하는 공간설계다. 내부는 8개 구간, 14개 아이템을 갖춘 전시구조물로 채우기로 했다.

그러나 지역에선 반복된 리모델링 작업에 따른 안전성 저하, 역사성 훼손, 주민 불편 우려가 커지면서 논쟁이 가열됐다. 특히 성인 기준 1만 8000원으로 책정한 유료화 방침은 거센 반발을 샀다. 현재 해저터널은 시민과 관광객 모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이를 두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민간업자 돈벌이 수단으로 내주는 꼴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통영 해저터널 미디아아트 테마파크 조감도. 통영시 제공 통영 해저터널 미디아아트 테마파크 조감도. 통영시 제공

예상보다 거세 저항에 시는 뒤늦게 무료 순환버스를 도입해 주민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이후 불만 여론이 일부 수그러들자 2023년 인허가 절차에 착수했지만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에 발목이 잡혔다. 국가유산청은 그해 연말 열린 제12차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관련 안건을 ‘부결’했다. ‘문화유산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통영시는 심의 의견을 반영한 수정안을 마련, 지난해 재심을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문턱을 넘지 못했다.

통영시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높은 희소가치에도 특색 있는 콘텐츠가 없어 지금도 보존과 개발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3월 중 재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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