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2025-05-07 18:18:12
지역 건설업계가 ‘제로에너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음 달 말부터 민간 아파트도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수준을 의무적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고성능 단열재와 태양광 설비 등을 갖춰야 하는데, 원자잿값 인상에 이어 공사비를 대폭 증가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이라 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세대 이상 민간 공동주택에 ZEB 5등급 수준 설계를 의무화하기 위한 규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6월 30일 시행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당초 정부는 이 제도를 작년 초 시행하려 했으나 원자잿값·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까지 더해지면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시행을 1년 6개월 유예했다.
하지만 ‘탄소 저감’이라는 세계적 추세 속에 시행을 더 미루기는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와 생산하는 에너지를 합쳐 에너지 사용량이 ‘제로’(0)가 되는 건축물을 지향한다.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1등급(100% 이상)에서 5등급(20∼40% 미만)으로 등급을 나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짓는 공공주택에 대해선 2023년부터 ZEB 5등급 인증이 의무화돼 있다.
민간 아파트에는 5등급의 80∼90% 수준으로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이때 에너지 자립률은 13∼17% 수준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려면 고성능 단열재와 고효율 창호, 태양광 설비 등이 필요해 공사비가 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도 5등급 수준을 충족하려면 주택 건설비용이 가구당 약 130만 원(84㎡ 기준)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이를 통해 연간 에너지 비용 약 22만 원을 절약할 수 있어 6년 정도면 추가 공사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본다.
업계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정부 설명은 공사비 인상 폭을 과소 평가한 것이고, 실제로는 84㎡ 기준 200만~300만 원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부산의 한 건설사 임원은 “제로에너지 인증제가 도입되면 공사비가 10% 이상 오를 것”이라며 “특히 1군 건설사에 비해 준비가 덜 돼 있는 지역 업체들은 그 부담이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게자는 “고층 아파트의 경우 옥상 공간이 부족해 벽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밖에 없고, 이럴 경우 건물 외관에 문제가 생기는 데다 공사 비용도 예상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며 “앞으로 업계 화두는 제로에너지 시대에 비용 절감을 어떻게 하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주요 대형 건설사의 매출 원가율은 평균 90%를 넘겼다. 특히 현대건설(100.6%)과 금호건설(104.9%) 등 일부 대형 건설사들은 매출 원가율이 100%를 넘었다. 매출 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매출 원가의 비율로, 이 비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회사가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한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여기에 제로에너지 의무화까지 시행되면 비용 상승 압박은 더욱 거세진다. 이는 곧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고분양가 탓에 지방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는 마당에, 자칫하면 시장 침체를 장기화하는 요소로 작용할까 우려되는 지점이다.
국토부는 에너지 성능 기준 강화에 따른 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대체 인정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부지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거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 부족분을 채우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