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7-13 09:00:00
<청와대 사람들>은 제목만 들으면 자칫 대통령과 각료의 이야기를 담은 정치 관련 책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대통령이 사는 집, 청와대가 돌아가기 위해 정말 많은 분야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뉴스에 한 번 나온 적 없고, 조명을 받은 적도 없다. 심지어 청와대에 일하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대통령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거의 없는 직장인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했던 저자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된다. 정권이 세 번 바뀌고, 7년 이상 청와대에서 근무한 저자는 청와대라는 이름이 가진 특별함보다 사람 냄새나는 보통의 일상에 집중했다. 조경 보안 기록 외교 경호 의전 행사 통신 등 청와대라는 국가의 큰 시스템이 항상 똑같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서 김장하 선생은 “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청와대 역시 그렇다. 매일 아침 누군가 가장 먼저 불을 켜고, 회의실을 정리하고, 식물을 돌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국기를 다려서 걸고, 구내식당에서 요리하고, 매일 아침 연못 안 잉어의 수를 세며 간밤에 너구리가 물고 간 잉어 대신 새 잉어를 보충한다.
물론 청와대라는 특수한 공간이 주는 생경한 일화도 있다. 인터넷과 카메라가 없는 2G폰을 업무용으로 받고, 줌 미팅이나 단체메신저를 못하니 회의는 무조건 대면으로 진행한다. 햇살을 받으며 버드나무 아래서 회의하고, 화면 공유 대신 인쇄물을 출력해 밑줄 그어가며 대화한다. 요약 파일 전송 대신 메모지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 치며 설명하는 모습은 다 사라진 것 같은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져 낭만적이다.
메시지 전송을 하는데 글자 수 제한이 있는 2G폰에 맞게 최대한 글자 수를 줄여 보내야 한다. 덕분에 말을 아끼고 느리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저자는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과 공간을 알아가며 새로운 재미를 찾는다. 청와대를 장식하는 모든 식물을 키우는 온실에선 100종류 이상의 식물이 살고 있다. 회의실 한쪽을 채우는 난, 언론 브리핑 배경에 나란히 놓인 대형 화분도 조경 담당의 일이다. 대통령과 직원들이 계절을 느낄 수 있도록 청와대 산책로를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겨울이 채 가지 않은 날부터 미리 꽃을 준비할 정도이다. 3월부터 5월까지 산수유가 피고 수선화가 뒤를 잇고 진달래 철쭉 프리지어, 작약 순으로 봄의 꽃이 완성되는 식이다. 나무를 심을 때도, 가을에 어디부터 단풍이 시작될지 동선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국빈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명대 뒤에 걸리는 그림을 고르는 과정도 나온다. 그림은 공간의 얼굴이자 대화의 시작이다. 상대국의 문화, 색의 상징,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요소, 상대국과의 예술적 연결고리, 역사적 공감대까지 고려해서 단 한 점을 골라야 한다. 시간대별로 어떤 색이 살아나는지, 그림이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도 꼼꼼히 확인한다. 행사가 끝나면 그림은 미술관이나 작가에게 돌려보낸다.
명절이 다가오면 대통령 명절 선물 고르기가 굉장히 어려운 숙제로 다가온다. 국가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어떻게 건넬지 구성을 짜는 일이다. 지역별로, 나이별로, 직함별로 고려해야 할 것들도 있다. 포장까지 고급스러움을 담아야 하지만 모든 건 예산안에서 진행해야 한다. 국토 순례 하듯 머리를 맞대고, 어디에서 무엇이 나고 어떤 재료가 배송 중 덜 부서질지, 어떤 뜻을 담아야 할지 해마다 고민은 더 길어진다.
책의 후반부에선 청와대의 개방 이후 변화가 나온다. 그대로 남는 사람과 용산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생기고, 관람객들은 저자의 사무실을 구경하며 수시로 사진을 찍어댄다.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모두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든 시간도 보냈다. 청와대 남은 직원들은 업무폰을 반납했고, 막상 카메라가 있는 휴대 전화를 쓸 수 있지만 적응하기가 힘들다. 이제 단체 채팅방을 통해 모든 일이 진행된다.
저자는 청와대 주인이 바뀌어도 그대로 자기의 쓰임새를 다하는 관저의 가구를 보며 새로워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가구가 내뿜는 품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강승지 지음/페이지2북스/220쪽/1만 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