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예술인으로 살아남기’ 첫발 내딛는 청년들

극단새벽 ‘청년 예술인 발굴 프로젝트’
오디션·워크숍 통해 20대 13명 선발
연기·연주·작곡·소품 등 분야 다양해
8월 30일 효로인디아트홀 데뷔 무대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연습 한창
“예비 예술인에서 ‘예술인’으로 성장”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2025-08-06 09:00:00

극단새벽의 '청년 예술인 발굴 프로젝트'에 최종 선발된 열세 명. 이들은 오는 30일 시작하는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무대를 통해 예술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극단새벽 제공 극단새벽의 '청년 예술인 발굴 프로젝트'에 최종 선발된 열세 명. 이들은 오는 30일 시작하는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무대를 통해 예술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극단새벽 제공

강민희, 강진현, 김도윤, 김지영, 김찬송, 김현숙, 배유빈, 송아린, 손지원, 유석민, 이지은, 최소연, 황보성. 8월이 막 시작된 지난주 금요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도시철도 2호선 배산역 인근 효로인디아트홀 연습실에서 만난 청년 열세 명의 이름이다. 여기저기 2~3명씩 모여 앉은 이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는 30일 관객에 선보이는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출연진들의 연습 현장이 사뭇 진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가오는 공연은 이들이 ‘예술인’의 이름을 달고 오르는 첫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송아린 씨는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나지막하게 선녀의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한 소절이 끝나자, 작곡가 이지은 씨와 노래 해석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아린 씨는 곧 다시 감정을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그사이 지은 씨는 민요 독창 연습을 하는 강민희 씨의 요청에 자리를 옮겨 앉아 고수로 변신했다. 지은 씨 손에는 어느새 북채가 들려있었다.

충청도에서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연기학원에 다니기도 했다는 송아린 씨. 송 씨는 극단새벽 오디션을 통해 부산에서 연기자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 김희돈 기자 충청도에서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연기학원에 다니기도 했다는 송아린 씨. 송 씨는 극단새벽 오디션을 통해 부산에서 연기자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 김희돈 기자
방음시설이 된 연습실 방에서는 김찬송 씨의 연주에 맞춰 합창 연습이 한창이었다. 김희돈 기자 방음시설이 된 연습실 방에서는 김찬송 씨의 연주에 맞춰 합창 연습이 한창이었다. 김희돈 기자

충북대에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한 아린 씨는 연기에 대한 뜻을 펼치기 위해 서울의 연기학원에서 배움의 길을 이어 가다 지난 3월 극단새벽의 ‘청년 예술인 발굴 프로젝트’에 선발됐다. 공개 오디션과 워크숍을 통해 열두 명의 동기와 함께 최종 관문을 통과한 후 첫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의 친척 집에 머물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아린 씨는 “연희극 특성상 연기는 물론이고 춤과 노래 등 다양한 분야를 익혀야 한다”라며 “연기학원에서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성취감을 매일매일 즐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작곡 담당인 지은 씨는 대안학교 졸업 후 밴드에서 활동하다 발탁됐다. 이전까지 K팝에 몰두했었다는 지은 씨는 4개월의 ‘연습생’ 생활을 통해 영화 연극 등 다른 장르의 음악에 대해서도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한 게 가장 큰 소득이다. 이번 무대에서 작곡과 북 연주를 맡는다.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에서 작곡과 북 연주를 맡은 이지은(왼쪽) 씨와 사자 역 연기를 맡은 강민희 씨가 합을 맞춰보고 있다. 김희돈 기자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에서 작곡과 북 연주를 맡은 이지은(왼쪽) 씨와 사자 역 연기를 맡은 강민희 씨가 합을 맞춰보고 있다. 김희돈 기자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에서 대금 연주를 맡은 김현숙(왼쪽) 씨와 북 연주 이지은 씨. 부산대 한국음악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김현숙 씨는 자신의 연주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김희돈 기자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에서 대금 연주를 맡은 김현숙(왼쪽) 씨와 북 연주 이지은 씨. 부산대 한국음악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김현숙 씨는 자신의 연주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김희돈 기자

사자 역을 맡은 강민희 씨는 물리치료사 직업을 그만두는 모험을 강행했다. 대학생 때 뮤지컬동아리 활동을 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지만 생활 전선에 뛰어들며 미뤘던 꿈을 다시 품기로 한 것이다. 스스로 무대 체질이라고 밝힌 민희 씨는 “너무 운이 좋다”라는 짧은 말로 연습생 생활을 표현했다.

연습실 한쪽에선 극단새벽 이성민 상임 연출이 지켜보고 있었다. 작품을 직접 쓴 극작가이기도 한 이 상임 연출은 “이번 주까지 노래와 춤 연습을 마무리하면 다음 주부터 무대에서 실전 같은 연습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사이에도 연습생들이 수시로 다가와 디테일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 상임 연출은 “이 친구들이 잘 성장해서 제2의 송강호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감을 표하며 “이왕이면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기자 중 한 명인 송강호는 극단새벽 초창기 단원으로 활동했다.

극단새벽의 청년 예술인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인 13명의 예비 예술인들이 오는 30일 무대에 올리는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연습을 하고 있다. 극단새벽 제공 극단새벽의 청년 예술인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인 13명의 예비 예술인들이 오는 30일 무대에 올리는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연습을 하고 있다. 극단새벽 제공

지역 극단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된 건 한국문화예술위원희의 ‘2025 예비 예술인 최초 발표 지원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극단새벽은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을 발표작으로 정하고 공개 오디션과 워크숍을 통해 만 29세 이하 청년 13명을 최종 선발, 지금까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13명은 연기 9명, 작곡 및 연주 3명, 소품 1명으로 구성됐다. 극단새벽 변현주 대표는 “모든 게 서울 중심인 사회이지만, 지역에서도 청년 예술인이 ‘생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극단의 새 단원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청년 예술인을 육성하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포스터. 8월 30일~9월 6일 부산 연제구 효로인디아트홀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극단새벽 제공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포스터. 8월 30일~9월 6일 부산 연제구 효로인디아트홀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극단새벽 제공

청년 예술인들이 첫선을 보일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은 극단새벽이 1998년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는 대표 레퍼토리 작품이다. 극단을 만든 이성민 상임 연출이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전쟁으로 파괴된 코카서스 마을의 농장을 두고 벌어진 소유권 논쟁을 한반도 비무장지대 골짜기의 소유권 논쟁으로 바꾼 작품으로, 땅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태주의 관점을 반영해 만들었다.

극단의 대표 작품을 청년 예비 예술인에게 맡기는 건 모험이기도 하다. 변현주 대표는 이에 대해 “이 작품을 연기하려면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틀극과 극중극이라는 형식을 이해하고 춤과 노래 등 다양한 장르를 익혀야 한다”라며 “청년들이 예술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작품을 해 본다는 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변 대표는 이어 “처음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믿음이 커지고 있다”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예비' 꼬리표를 떼고 예술인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비 예술인 열세 명은 공연이 끝나면 각자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

▲극단새벽 나의 첫 무대: 연희극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8월 30일~9월 6일. 부산 연제구 효로인디아트홀 소극장. 토요일 오후 5시, 일요일 오후 3시. 목·금요일 오후 7시 30분. 총 5회 공연. 관람료 1만 원. 예매 극단새벽 홈페이지. 문의 051-245-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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