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시들이 참 많다는 생각으로 원고를 넘기는 동안 마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따로 챙기는 원고가 수북했다. 그중에서도 뚜렷하게 변별이 생기고 있었는데 이미 소비된 소재인가, 새로운 소재인가, 하는 지점이었다. 좋은 시를 고르는 기준이 소재의 문제는 절대 아니지만 신춘이라는 무대는 모든 진부함을 벗고 새로움의 얼굴을 드러내는 장이 아닌가. 어쩌면 새로움이라는 말이야말로 진부하지 않은가, 라고 반문할 정도로 우리는 새로움의 정체를 벗기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려나 시를 쓰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시적 언어의 바깥은 지평선처럼 물러서며 또 다른 언어를 채집할 방랑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가장의 퇴직, 청년실업은 특히 요 몇 년 새에 많이 소비된 소재였다는 점이 새로운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클리셰에 묶여버리는 것이 아쉬웠다. 선자들은 그 점이 가혹하다고 읊조리며 ‘저 별들은 내가 닦기로 되어 있다’는 가슴 아픈 문장과 이별해야 했다. 우리의 삶이 커다란 ‘대삼각형’을 그리며 사는 구조라면 더 큰 범위로 확대할 수 있으리라, 믿기로 했다. 실험적이고 모던한 시들도 몇 편 눈에 띄었지만 그 시들이 발표될 지면도 곧 있을 것 같았다.
‘애도’ 외 7편의 시를 읽는 시간은 즐겁고도 흥분되었다. ‘따로 함께였다가 함께 혼자인’ 시들을 동봉해 버린 시인의 심정이 흥미로웠고 각 시편들은 혼자서도 좋은 시였다.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에게는 살아 있을 때의 존중과 존엄도 중요하지만 죽음 이후의 애도란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존엄 그 이상이다. 거기서부터 산 자의 삶이 다시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랑을 폐기할 때는 애도가 필요한 세상이기에 그 시의성을 은근히 드러낼 줄 아는 시인의 애둘러가는 마음도 읽혔다. 그렇게 애도할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의 구업에 대해서도 멈춰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였으므로 우리는 당선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기로 한다.
심사위원 조말선,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