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6-13 09:00:00
“아빠가 좋아하던 바다에서 이젠 편안하게 쉬세요 ….”
얼마 전 해양장을 치른 A씨가 바다 위에서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말이라고 했다. 한번 만나 보고 싶었지만 그는 인터뷰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A씨는 “아직은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 이게 좋은 일이면 얼마든지 응할 텐데 상중에 산골(散骨)을 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인터뷰한다는 자체가 부담스럽다”라고 전해 왔다. 그 심정이 백분 이해가 되었다. 그 뒤에 경찰에 있는 친구 B씨도 해양장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3년 전에 장인이 세상을 떠나자 이미 부산영락공원에 모셨던 장모와 함께 해양장으로 바다에 보내드렸다는 것이다. B씨 처가 가족은 부모님 제사나 생신 같은 날에는 광안리에 모여 바다를 보면서 고인을 기린다고 했다. 하지만 B씨 역시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해양장’을 처음 듣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지난해 부산에서는 해양장이 2600건이나 진행됐다. 부산 지역에는 해양장 전문 사설 업체도 6개나 된다. 지난해 말 부산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지역 주민의 반대와 가용 토지 부족 등의 문제로 장사시설 추가 조성만으로는 늘어나는 장사 수요 대처에 한계가 있다. 내년부터 해양장이 법제화되고 부산은 입지적으로 해양과 가까워 선제적으로 해양장 운영을 적극 검토해 장사 수급 정책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4월 부산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이준호 의원(국민의힘·금정2)은 부산 지역 장사 시설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해양장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해양장 논의의 불길을 당겼다. 이 의원은 “부산 장사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 장례 절차가 지연되고, 봉안 장소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장사시설의 물리적 공간 부족과 유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해양장이 대안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 의원과 만나 이날 발언이 나온 이후 주변 반응을 물었더니 “젊은 층은 박수를 보냈고, 어르신 중에는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해양장은 고인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산골장의 한 방식이다. 시신을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히는 수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내에서는 2012년 해양수산부가 ‘해양 산골이 해양환경관리법 상의 해양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해양장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해양장 법제화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제기되면서 그동안 유보 상태였다. 그러다 2023년 12월 해양장을 법제화하는 장사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지난 1월 개정 법안이 시행되었다. 이제 해안선으로부터 5km 떨어진 해양에 유골을 뿌릴 수 있게 되면서 해양장 논의가 활발해지는 모양새다.
아직은 해양장으로 인한 해양 오염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해양연구원이 실시한 골분 성분조사, 산분해역 조사, 산분해역 생태독성시험 등의 결과를 종합하면 해양장이 해양환경에 악영향을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허가된 장소에서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아 분쇄 유골만 뿌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해양장이 확대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장사 시설의 한계 상황이다. 지난 1995년에 문을 연 부산영락공원은 가위 ‘만장(滿葬)’이다. 총 8만 7743구를 안장할 수 있는 시설이 이미 포화 상태다. 부산영락공원은 유가족이 유골을 반환해 공실이 생겨야만 기다린 순번대로 봉안이 가능한 실정이다. 부산영락공원의 봉안 기간은 15년에 5년씩 3회까지 연장이 가능해 최대 30년 간 머무를 수 있다. 개원 30년째라 올해부터 본격적인 반출이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설 봉안당으로 옮기면 지금보다 수십배의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유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부산영락공원에는 제때 반출되지 못한 표시인 ‘딱지’가 붙은 봉안당이 늘고 있다.
현재 부산에서 사망하면 대부분 부산영락공원에서 화장하고 기장군 정관읍 부산추모공원으로 향하게 된다. 2009년에 건립해 봉안당 수용 규모 8만 9468기인 부산추모공원 역시 지난해 11월에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부산시는 우여곡절 끝에 2026년까지 봉안시설 5만 기를 확충하기로 했지만 2033년이면 다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령인구 증가세에 비해 기피 시설로 인식되는 추모공원 조성은 애를 먹기 십상이다.
해양장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부지 확보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묘지나 봉안당을 마련할 필요가 없어 우리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국토가 좁은 나라에는 특히 효과적이다. 유족으로서도 매장용 땅이나 고가의 봉안당 공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기에 초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무덤 유지비나 봉안당 관리비도 들지 않아 후손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바다를 사랑했던 고인이라면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있다. 다만 아직까지 낯선 해양장에 동의하지 않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어 가족 간의 사전 합의가 중요하다
일인가구나 독거노인이 많은 일본에서는 2019년부터 해양장 전문인력 검정시험이 실시되고, 해양장 업체 광고가 지하철 광고판에 실리는 등 최근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기타큐슈 바닷가에 위치한 메카리 신사는 해양장 프랜차이즈 사업체 본부가 되어 각 신사에 해양장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부산시설공단이 지난 3월 부산의 해양장 도입 운영과 관련해 일본 후쿠오카 해양장을 방문한 결과도 나왔다. 부산시설공단 측은 “일본의 해양장은 올해는 연간 2만 명, 10년 후에는 20만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향후 부족한 봉안시설의 해결 및 지속가능한 장사 문화를 위해 공설 해양장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밝혔다. 2014년에 설립된 일본해양산골협회는 36개 회원사, 2019년에 설립된 전국해양산골선협회는 9개 회원사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도 매장으로 인한 육상 용지난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무료 도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양장을 권장하고 있다. 화장률이 높은 유럽 국가에서 해양장의 비율은 20~30%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인천이 민간 사업자를 중심으로 해양장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인천의 ‘현대해양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30여 년 전부터 국내 최초로 해양장을 시행해 지금까지 5만 분 이상을 모셨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천에는 선박 대신 드론을 이용해 해양장을 치르고,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부산시 장사시설 지역수급계획(2023~2027) 수립 용역 보고서는 “인천은 전국 해양장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인천시의 해양장 수요는 연평균 1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바다로 해양장(badarojang.modoo.at)’은 2019년부터 요트를 이용한 해양장을 서비스하고 있다. 해양장 진행 절차는 ①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요트 탑승→삼우제→지정 장소 이동 후 해양장(산골)→탑승 장소 복귀→위성 좌표기반 해양안장확인서 교부 순으로 이루어진다. 고객 만족도가 높아 이용객이 초창기에 비해 배가량 늘어 지금은 월평균 50~60건의 해양장을 치른다고 했다. ‘바다로 해양장’ 조유익(42) 대표는 “부산이 해양장을 하기에 입지적인 조건이 전국에서 제일 좋다. 우리는 오륙도, 이기대, 광안대교, 해운대, 달맞이언덕, 청사포가 다 보이는 중간 지점에서 산골한다. 상주들도 장례식장에서 지쳐 있다 바다를 보는 순간 정신적으로 치유가 많이 된다”라고 말했다. 장례지도사이기도 한 조 대표에게 때가 되면 자신도 해양장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머니가 가실 때가 되면 영락공원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바다에 모시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다. 나도 바다로 가고 싶다. 그때쯤이면 해양장이 문화로 정착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준호 시의원은 “당장 100% 해양장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봉안 시설이 부족하기에 해양장이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시민들에게 드려 봉안 시설 대란 사태를 조금 늦추고 그동안 해결책을 찾자는 의미다. 부산시가 민간에서 시행하는 해양장을 민관 협력 형태로 도입하면 저렴하면서 더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양장은 부산이 전국에서 제일 잘할 수 있다. 이 비좁고 비싼 땅에서 힘들게 봉안 시설을 찾을 필요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비좁은 땅덩어리보다 넓은 바다를 대안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