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원픽] 아무도 펼치지 않는, 낡은 노트

김강석의 미술 평론 노트
박진희(미술평론·더마루아트 대표)

2026-06-28 14:31:07

부산 1세대 미술평론가인 김강석 씨는 삼백여 편의 원고를 남겼고, 아직 해제 작업이 완성되지 못했다. 박진희 제공 부산 1세대 미술평론가인 김강석 씨는 삼백여 편의 원고를 남겼고, 아직 해제 작업이 완성되지 못했다. 박진희 제공

한자와 한글을 병행한 김강석 미술 평론가의 원고 모습. 박진희 제공 한자와 한글을 병행한 김강석 미술 평론가의 원고 모습. 박진희 제공

2016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로 미술정보센터를 담당하던 나는 그 고요한 자료의 숲에서 낡은 노트들이 담긴 보자기를 만났다. 부산 1세대 판화가이자 미술 사료 수집가 이용길 선생이 오십 년간 모아 기증한 자료의 일부였다. 장갑 낀 손으로 조심스레 펼치니, 빛바랜 종이 위로 만년필 자국이 골을 이루었고, 긴 세월에 흐릿해진 한자들이 손끝을 붙들었다. 미술평론가 김강석의 노트였다. 오래도록 아무도 펼치지 않은, 부산화단의 다단한 역사가 담긴 노트. 나는 미처 맺지 못한 문장의 끝을 더듬는 기분이었다.

김강석. 1932년에 태어나 1975년, 마흔셋에 결핵으로 떠난 부산 1세대 미술평론가다. 십여 년의 짧은 활동 동안 그는 미술평론 삼백여 편을 남기며, 한국적 주체성과 전통의 현대화를 외치고 지역미술의 좌표를 세우려 했다. 보자기에는 해방 직후 부산 화단이 처음 꿈틀대던 시절부터의 전시 목록과 신문 스크랩이 가득했고, 미완성인 부산현대미술사 원고도 있었다. 김강석이 떠난 뒤 동생이 형의 원고를 들고 이용길을 찾아왔으니, 부산미술의 자취를 끈질기게 모으는 수장가에게 노트는 제 갈 길을 찾은 셈이었다. 김강석의 노트에 이용길 선생이 주석을 단 문장이 있다.

"1974년 12월 대학병원에 결핵환자로 입원하고 있을 때 '부산현대미술사는 정리되었읍니까'라고 물으니 '내 머리 속에 있읍니다'라고 대답했다. 완쾌되면 집필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하느님은 외면하였다. 그의 유품 속에선 끝내 <부산현대미술사>는 발견되지 않았고 집필의 예정표만 남겨졌다. 앞으로 있을 부산미술사 정립에 참고가 될 내용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그 주석은 후배들에게 건네는 당부 같았다. 그래서 나와 미술사가 이현주, 부산현대미술관 박정구 실장이 연구·해제를 이어 왔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따라 간다. 함께 연구하던 박정구 실장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 시대의 가치를 알고, 기억하려는 자는 얼마 남지 않았다. 기억은 사람과 함께 저물고, 자료만이 남는다. 남은 것은 노트와, 그것을 끝내야 한다는 약속뿐이다.

김강석과 이용길, 박정구의 바람은, 결국 남은 자의 몫이 아닐까. 결국은 누군가 정리하리라 미루는 사이 십 년이 흘렀다. 더는 미룰 수 없다. 그래서 이현주와 나, 둘이서 남은 해제를 마치기로 했다. 가을이 오기 전에 책이 나올 것이다.

한 시절을 뜨겁게 살아낸 윗세대의 정신과 염원이 잊히지 않도록, 누군가는 외로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빈약해 보일지라도 언젠가 소중한 초석이 될 것이다. 시작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도, 의미 있는 삶이면 좋다. 그래서 내 인생의 원픽은, 그 한자 가득한 낡은 노트다.

박진희(미술평론·더마루아트 대표)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