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 2026-07-26 20:00:00
지난 16일 부산대학교병원 신생아집중치료센터에서 박경희 센터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지금이라도 전공의를 비롯한 젊은 의사들이 신생아 파트에 유입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펴서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찬 기자 chan@
“2024년 의정갈등 이후 전공의 의존도가 많이 떨어졌다. 대신 전문의 근무 비중이 늘어났는데, 지역 대학병원 전문의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많은 이들이 대우가 더 좋고 중환자 비율이 적은 2차 병원을 선택한다. 대학병원에 온다고 해도 교수직보다 월급 많고 근무 여건 좋은 촉탁의를 선호한다.”(A 대학병원 교수)
“젊은 의사의 수련·근무지 결정에서 의사로서 충분히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지, 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충분한 인력과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진료를 혼자 책임져야 할 수 있다는 불안이 지역 필수의료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든다.”(B 대학병원 전공의)
2024년 의정갈등 이후 부산·경남·울산 지역의 대학병원 등에서 중간급 교수진이 대거 이탈했다. 산부인과, 소아과, 외과, 순환기내과와 영상의학과 시술파트 등 여러 분야에서 전문의가 이탈했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력 충원은 쉽지 않다.
여기에다 전문의로 나아갈 전공의 지원자까지 줄면서 지역 필수의료과의 인력 공백은 위기감을 넘어 공포로 확산하고 있다.
■대학병원 계약직 의사마저 구인난
양산부산대병원 민문기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심한 폐렴으로 호흡 곤란이 있는 중환자가 내원하면 전문의 1명이 최소 2~3시간은 매달려야 한다”며 “여기에 중환자가 한두 명 더 들어오면 응급실이 거의 마비 수준이 된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이나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한 근무시간대에 필요한 전문의 최소인원은 2명이다. 의료진들의 번아웃을 막고, 진료 외 공공보건 영역까지 담당하기 위해서는 12~14명의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양산부산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9명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명이 계약직 의사인 ‘촉탁의’다. 계약직 의사는 계약 조건에 따라 진료·당직 등의 업무를 맡는다.
민 센터장은 “응급의학과 4명도 정말 어렵게 구했고, 추가로 촉탁의를 구하려 해도 지원자가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한 지역 병원에서는 올해 초 여러 과목에 걸쳐 20명 정도의 계약직 의사를 모집하려 채용 공고를 냈지만, 이번달까지 채용한 의사는 겨우 5명뿐이다.
전공의 부족 사태도 마찬가지다. 전문의와 비슷한 기준으로 전공의도 최소 8명 이상 필요하지만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단 2명 뿐이다. 민 센터장은 “전공의가 없으면 전문의도 없다”며 “전공의들이 지원할 수 있는 진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파국 막을 특단의 대책 시급
지난 10일 전북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을 책임지던 김진규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절벽에 내몰린 신생아·소아 의료의 현실에 모두 충격을 받은 가운데, 가뜩이나 신생아 세부전문의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 현장은 불안감이 더 크다.
부산대병원 박경희 신생아집중치료센터장은 "신생아 중환자는 의사가 직접 처치하는 경우가 많아 병상이 비어 있어도 전원을 못 받는 일이 생기는데 외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대병원의 신생아 전문의는 5명이다. 이중 계약직 의사는 3명이다. 박 센터장은 "신생아실 운영에 정말 중요한 분들이지만, 장기적으로 건강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공의 교육도 함께할 교수직이 더 많이 버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은 진료만이 아니라 교육, 연구, 학회 활동 등을 통해 의료 발전을 이끄는 역할도 해야 하는데 지금의 구조에서는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주병욱 부울경지역협의회장는 "과중한 진료, 당직, 행정과 교육의 부담을 견디지 못한 지도전문의의 사직·이직으로 기존의 전공의 수련을 유지하기 어려운 진료과도 생기고 있다"며 "전공의 지원 감소, 지도전문의 소진과 이탈, 수련 기능 약화가 물고 물리는 악순환의 우려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지속가능한 근무 환경 만들어야
그렇다고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린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중증 필수의료 진료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중증환자 치료와 안전한 전원이 가능한 배후진료 체계 구축, 최선의 진료를 위한 법적 안전망 구축 등 환경 개선 없이는 필수의료과로 의사들을 유도하기는 어렵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특히 의료진의 사법리스크 부담 문제는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역·필수·공공의료 간담회에서도 중증 필수의료 전공 기피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 ‘2026 전공의 수련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76.4%, 분쟁에 대한 걱정이 전공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75.4%에 달했다.
동아대병원 오소라 산부인과 교수는 “산부인과도 오랫동안 대표적인 기피과였다”며 “지역 상급병원에 중증 환자를 담당할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과도한 법적·사회적 부담 없이 진료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근무 환경이 만들어져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