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 이채원 기자 circle@busan.com | 2026-11-01 18:24:42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도시철도 양정역 인근의 오피스텔촌(사진 아래 부분)과 황령산 아래 재개발된 아파트 단지 모습. 정종회 기자 jjh@
부산의 전세사기 피해는 청년들이 교통과 주거환경을 고려해 선택한 신축 비아파트에서 주로 발생했다. 그런데 피해 건물 상당수가 인근 재개발구역 등 정비구역과 가까운 상업지역 등에 들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정비구역 내 임차 수요가 주변 상업지역 등으로 옮겨가면서 오피스텔 등 신축 주택 공급도 함께 늘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알지 못했다. 보금자리인 줄 알았던 집이 임대인의 빚을 떠받치는 공동담보의 사슬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재개발 밖 전세사기
〈부산일보〉 취재진이 복수의 전세사기 피해자와 접촉해 위치를 확보한 피해 건물 57곳(2015~2024년 사이 공급)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부산진구 양정동(11곳)과 연제구 연산동(13곳)에 몰려 있었다. 이들 피해 건물의 공통점은 양정 1·3구역과 연산 4·5구역 등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정비구역 바깥의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양정역 인근에 사는 대학생 심영현(23) 씨는 “학교와 지하철이 가깝고 학교 앞보다 집도 넓어 이쪽을 찾았다”면서도 “주변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를 많이 봐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비아파트 신축 공급이 몰린 시기와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시기도 겹친다. 양정동 공인중개업소들은 2015~2022년 사이 원룸과 오피스텔 신축이 집중됐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에는 대출과 건축자금 조달이 쉬웠고 전세 수요도 강했다는 설명이다. 한 중개업소는 “입주자의 80~90%가 20~30대 직장인 등 젊은 층이었다”고 전했다.
■부산 첫 피해의 여진
전세사기특별법이 처음 시행된 2023년 6월, 부산에서 처음 피해 건물로 인정된 부산진구 양정동의 오피스텔도 양정역 일대에 있다. 2021년 3월 사용승인을 받은 이 오피스텔은 양정1·3재개발구역 경계선 밖 준주거지역에 들어섰다. 지상 14층, 69호실 규모인 이 건물에서는 3년 전 전세사기 피해 60건이 발생했다.
이 오피스텔에서도 ‘부산형 전세사기’의 전형으로 꼽히는 공동담보의 특징이 드러난다. 토지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 피해 호실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2019년 12월 건축허가가 났고 이듬해 2월 착공됐다. 이어 사용승인을 앞둔 2021년 3월 2일 A 씨가 해당 토지 두 필지(등기부상 면적 합계 337.8㎡)를 매입했다. 건축주 역시 A 씨로 기재됐다.
A 씨가 금융권 대출에 공동담보를 활용한 사실도 확인된다. 건물 사용승인 직후인 2021년 3월 31일 A 씨는 금융기관 두 곳에서 돈을 빌리고 각각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두 금융기관의 채권최고액 합계는 68억 4000만 원이었다. 오피스텔 전체 호실도 공동담보 목록에 포함됐다.
지난 1월 20일 재판에 넘겨진 임대인 A 씨의 1심 재판은 11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임차인의 평균 전세보증금은 거의 1억 원으로, 전체 피해액은 50억 원을 넘어선다. 평균 피해 변제율은 70%대에 머물고 있다.
2021년 8월 이 오피스텔의 한 호실을 임차한 B(37) 씨가 경매 통지서를 받은 것은 입주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사기를 당하기 전 결혼 계획이 있었지만, 이 일로 언제 결혼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고도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청약이 취소된 피해자가 있고, 보증금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매로 매입한 기존 호실에서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으로 계속 살고 있는 피해자도 있다”고 토로했다.
■깨끗한 신축의 역설
대규모 정비구역 경계 밖에 들어선 신축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을 중심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30세대에게 직장·학교와의 거리, 교통 편의성, 전세자금 대출 가능 여부 등이 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통상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은 교통 편의성 등 입지 조건이 다른 곳보다 나은 편이다.
또 재개발구역 등 정비구역 일대의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부산대 사회학과 우동준 연구원은 올해 6월 학술지 〈공간과 사회〉에 게재한 논문 ‘부산 전세사기와 개발형 법인 임대 사업자의 공간 전략’에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우 연구원은 정비사업 구역의 거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임차 수요가 인접한 비정비지역인 상업지역·준주거지역으로 이동했고, 그곳의 신축 소형주택이 수요를 흡수했다고 분석했다. 전세사기를 당한 청년들이 신축 건물을 선택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정비지역 내 주택은 임대인의 소극적인 관리로 주거환경이 점차 슬럼화됐다. 특히 범죄로부터의 안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젊은 여성들의 고민이 컸다고 논문은 강조한다. 반면 정비지역 외곽에 소규모로 개발된 신축 오피스텔 등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쾌적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부산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이단비 위원장도 2022년 부산 수영구의 한 신축 오피스텔에서 전세사기를 당했다. 해당 건물은 22개 호실이 공동담보로 묶여 있었다. 이 위원장은 “서울 생활을 마치고 부산에 와 원래 살던 남구 지역에 집을 먼저 알아봤으나, 재개발 단지가 많아 적당한 집을 찾기 어려웠다”며 “재개발 구역 안의 관리가 안 되고 오래된 주택보다 같은 금액이라면 주거환경이 비교적 깨끗한 집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