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2025-04-23 20:23:00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 구간에 연이어 발생한 싱크홀의 원인으로 꼽히는 측구(도로 양옆 배수로)가 도시철도 공사 이전부터 노후화 등으로 인해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묵살된 채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관할 지자체인 사상구청이 공사 구간에 측구 확대와 보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부산교통공사에 보냈으나 두 기관은 ‘떠밀기 행정’ 끝에 아무런 조치 없이 공사를 강행했다.
23일 부산시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올해까지 발생한 14차례 사상~하단선 구간 싱크홀 중 6건은 측구 부실이 원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2023년 1월부터 3월까지 3차례 발생한 싱크홀 모두 측구가 파손된 것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듬해 7월에 발생한 싱크홀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도 지난 1월과 지난 14일 발생한 싱크홀의 원인은 측구 부실로 지목됐다.
측구는 도로 양옆에 있는 U자형 배수로인데 노후화 등으로 파손하거나 탈락하면, 측구에서 유실된 빗물이 지반에 침투하게 된다. 지반에 유입된 빗물은 토사와 함께 이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반에 공동이 형성되고 싱크홀로 발전한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확보한 ‘부산 도시철도 사상~하단선 사업계획승인안에 대한 유관 기관 회신란’에 따르면, 부산교통공사와 사상구청은 사상~하단선 착공 직전인 2016년부터 이곳 일대 측구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2016년 당시 사상구청 안전도시과는 사상~하단선 공사와 관련해 유관 기관 의견을 조회 중이던 부산교통공사에 “기존 측구 확대, 집수정 추가 설치, 유수 방향 변경 등 침수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냈다.
사상구청은 2015년 감전·주례동 일대에 대해 지반이 상습적으로 침수하는 원인을 파악하는 용역을 했는데, 용역 결과 사상~하단선 공사가 이뤄지는 새벽로를 비롯해 이곳 일대에 측구 보강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사상구청은 “해당 구간이 도시철도 공사 구간과 중복돼 공사 추진 시 중복 공사 및 이중 투자가 우려되니, 도시철도 공사와 연계하여 반드시 추진해야 할 것임”이라고 측구 공사 필요성을 부산교통공사에 전달했다.
하지만 부산교통공사는 예산상의 이유로 측구 공사를 하지 않았다. 당시 부산교통공사는 “기획재정부 총 사업비 관리 지침상 도시철도 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공정 등의 추가 사업비 사용은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냈다. 부산교통공사 측은 “측구는 관할 지자체 소관이고 도시철도 공사 사업비를 측구 공사에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기관이 ‘나몰라라’하면서 측구 공사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도시철도 공사가 진행되며 연이은 싱크홀 발생으로 이어졌다. 두 기관 모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이 일대 싱크홀은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부산시는 뒤늦게 측구 점검에 나섰다. 시는 사상~하단선의 잇따른 싱크홀 발생의 대책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새벽로 일대 400m 구간에 대해 측구 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로 결함이 있는 13개소를 발견했다. 또한 다음 달부터 3200m에 달하는 사상~하단선 구간의 측구를 추가로 점검할 계획이다. 측구 외에도 오수관로, 우수박스 등을 점검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측구 보강이 이뤄졌다면 상당수 싱크홀 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도시철도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에라도 측구에 대한 점검이나 보강 공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산과기대 첨단공학부 정진교 교수는 “도시철도 공사 전에 측구 공사를 마무리해서 배수, 침수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며 “지금은 도로 한가운데 개착 공사가 이뤄지고 있어 도시철도 공사가 마무리된 후에 측구 보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