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5-01 16:45:09
19초짜리 영상 하나가 20년 뒤 추정 가치 800조 원의 기업으로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유튜브 이야기다. 공동 창업자 자베드 카림이 2005년 4월 24일 올린 동영상 ‘동물원에 있는 나’(Me at the zoo)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 시대의 서막이었다. 2년 뒤 등장한 스마트폰은 유튜브 성장에 날개를 달아 줬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태어나 유튜브 육아로 성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 말은 안 들어도 유튜브 가르침은 어기지 않는다는 얘기도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초등학생 희망 직업 1순위가 크리에이터라는 유튜브 만능 시대. 누구나 유튜버가 될 수 있다지만 ‘구독자 100만 명 유튜브’가 되는 건 또 다른 얘기이다. 그러니 ‘유튜브로 ○○ 벌기’류의 유튜브 계정이나 서적의 유행도 자연스럽다.
<인생 녹음 중> 역시 유튜버가 지은 책이다. 그것도 첫 영상을 올린 지 9개월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넘긴 결혼 8년 차 부부 유튜버라니 꽤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을 만하다. 책 제목은 부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그대로 가져왔다. 책날개엔 “부부 티키타카가 재밌다” “배려 깊은 소소한 대화에 절로 행복해진다” “결혼 장려 영상”이라는 평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채널 소개가 실려 있다. 책이 유튜브 내용을 바탕으로 한 만큼 ‘유튜브 9개월 만에 사표 쓰기’ 같은 경제적 성공담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
책은 연애 시절부터 현재의 소소한 일상까지 남편과 아내의 시점으로 각각 써 내려간 알콩달콩 에세이다. 대단한 모험담이나 충격적인 사건, 혹은 엿보기 심리를 자극할 만한 은밀한 얘기는 전혀 없다. 책에 실린 이미지조차 고작 남편이 그렸다는 삽화가 전부인데, 그마저도 다소 심심해 보일 정도로 단순하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지나온 페이지 여러 곳에 스스로 밑줄을 그어 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남편은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지는 낌새만 보여도 일단 ‘우와’라고 크게 감탄부터 한다. (중략)순간 내가 퍽 대단한 요리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거나 “부동산 앱에서 본 그 많던 동그라미가 싹 사라진 걸 보고 아내가 마술 같다고 박수를 치고 웃던 모습” 같은 문장들이다. 각각 요리에 자신이 없는 아내의 상차림을 대하는 남편의 귀여운 처세술이나 신혼집 구하며 겪는 어려움을 재치 있게 넘긴 아내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인생 녹음 중>은 책날개에 소개됐다는 ‘결혼 장려’뿐만 아니라 ‘결혼 유지 비결’ 콘텐츠도 가득하다. 워너비 부부라고 싸움의 순간이 없었을까. 그럴 때마다 상대의 너그러움에 고마워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며 서로 닮아간다는 이들의 얘기는 마치 50년 이상 해로한 노부부의 잔잔한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보기에 따라 ‘고작 8년 차’가 될 수도 있는 이들이 ‘티키타카 부부’로 불리는 비결은 뭘까. 부부의 글에는 유독 ‘웃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잘못 든 길’에서도 웃음이 터지고, 서운함은 웃긴 상황극을 빌려 피식 날려버리고, 예상치 못한 시련에도 행복으로 빠져나갈 유쾌한 실마리를 발견해 내며 기어코 ‘웃을 일’을 만들어 내는 부부. 책은 때론 달지만 때론 맵기도 한 현실에서도 웃음이라는 만능 양념장만은 빼먹지 않고 살아온 부부의 ‘행복 레시피’ 묶음이다.
인생 녹음 중 부부 지음/김영사/224쪽/1만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