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억 대 과징금 소송…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에 해운업계 울상

공정위, 23개 선사 962억 과징금
운임료 담합 등 ‘부당 행위’ 판단
대법, 원심 뒤집고 공정위 손 들어
서울고법 판단 따라 처분 판가름
해운업계 ‘싱크탱크’ 필요 목소리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2025-05-07 17:41:46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던 글로벌 7위 선사 에버그린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서 국내 선사들의 소송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난달 16일 홍콩 콰이청 항구에 접안한 에버그린 컨테이너선.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던 글로벌 7위 선사 에버그린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서 국내 선사들의 소송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난달 16일 홍콩 콰이청 항구에 접안한 에버그린 컨테이너선. 연합뉴스

국내 해운업계가 ‘동남아 노선 담합’ 관련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조치에 대한 법정 다툼에서 대법원으로부터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서 900억 원대 과징금을 물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대만 선사 에버그린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34억 원 취소 청구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의 원고 승소 판결을 뒤엎어 파기환송했다.

공정위는 2022년 1월 에버그린을 비롯한 국내외 23개 선사(국내선사 12개, 해외선사 11개)가 동남아와 한일·한중 항로에서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며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운임 하한과 인상 규모 등을 협의하고, 합의 위반 사항 감시와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 하는 등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23개 선사 중 19곳이 공정위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중 한 곳인 에버그린이 가장 먼저 지난해 2월 서울고법에서 2심 판결을 받았다. 결과는 에버그린의 승리였다. 해운법 제29조 제1항에 따라 외항 선사는 운임 등을 결정할 때 공동행위를 할 수 있고, 다른 법령에서 정한 정당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규제 권한이 해수부 장관에게만 있다는 배타성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해운법에 공정거래법 적용 예외 조항이 없다는 점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에 대해 규제할 권한이 해수부 장관에게 있는지 해운법에 정하지 않아 해수부와 공정위 어느 쪽이든 규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 △해운업에서 운임에 대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선박 배치나 화물 적재 등에 관한 협력만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해외 여러 나라들이 법제를 정비하는 추세라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2월 고법 판결에서 힘을 얻었던 나머지 18개 선사는 대법원 파기환송심 이후 충격에 빠졌다. 서울고법에 계류된 판결이 대법원의 에버그린 판결대로 나온다면 과징금을 납부해야 할 상황이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국내 선사는 △고려해운 296억 4500만 원 △흥아라인 180억 5600만 원 △장금상선 86억 2300만 원 △HMM 36억 7000만 원 등이다. 해외 선사는 △완하이 115억 1000만 원 △TSL 39억 9600만 원 △에버그린 33억 9900만 원 △양밍 24억 1900만 원 등이다. 업계는 1963년 제정된 이후 해운업의 특수성을 폭넓게 인정받아 수출입 최일선의 공급망 역할을 해온 국내 해운산업 경쟁력에 큰 변수가 발생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해운업계가 법적 대응에 미숙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이 지적한 것처럼 1980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이후 해운법을 여러 차례 개정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공정거래법 적용에 예외를 둔다는 조항과,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에 대한 규제 조항을 신설하지 않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해운업의 특수성을 법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할 ‘싱크탱크’가 있었다면, 대법원 판결 방향도 달랐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장 김인현 명예교수는 “해상법이나 해운물류, 조선 등의 분야에서 제기된 오랜 쟁점이나 최신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필요한 때 의견서나 보고서를 즉각 제시할 수 있는 해운 분야 민간 연구원이 필요하다”며 “국내 보험업계가 운영하는 보험연구원이나, 일본 선주협회와 도선사협회가 공동 운영하는 해사센터가 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