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2025-05-08 17:36:55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문수 대선후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오는 11일까지 무소속 한덕수 예비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하려 했던 당 지도부는 법적 대응까지 예고한 김 후보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김 후보와 한 후보의 회동도 입장 차만 확인한 채 평행선을 달리면서, 단일화 구상은 좌초 위기에 놓였다.
김 후보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캠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 지도부를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한덕수 후보를 위한 강제 단일화를 당 지도부가 추진하고 있다. 본선 후보 등록도 하지 않겠다는 무소속 후보를 위해 왜 저 김문수를 끌어내리는 것이냐”며 “경선 후보들이 모두 들러리였냐. 이런 식의 강압적인 단일화에는 아무런 감동도 서사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무우선권’을 언급하고 법적 대응까지 시사하며 지도부와의 정면충돌을 예고했다.
김 후보는 자체적인 단일화 로드맵도 제안했다. 두 후보가 일주일간 선거운동을 펼친 뒤 오는 14일 방송토론, 15~16일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 후보를 정하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이를 거부하고, 오는 11일 이전 단일화를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 후보가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는 기자회견을 한 모습은 한심했다”며 “당원과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12일 이후 단일화는 우리 당으로선 도저히 현실 불가능하다”며 “TV 토론과 양자 여론조사를 진행하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단일화 로드맵 강행 의지를 밝혔다.
김 후보 측은 당 지도부의 강행 방침에 반발하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검토 중이다. 당 내부에서는 대선후보 교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당헌 74조 2항이 이미 선출된 후보에게도 적용 가능한지 여부다. 해당 조항은 “상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대통령 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을 비상대책위 의결로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나, 후보자 선출 이전에만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김 후보 캠프 김행 시민사회총괄단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당헌 74조는) 후보가 선출된 다음이 아니라 그 전에 발동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원 비서실장도 당 지도부를 향해 “법률가 출신인데도 왜 저러는지 정말 걱정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강경 대응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김기현 의원은 “당헌에 없는 내용을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고 했고, 나경원 의원도 “단일화를 강요하면 안 된다. 한덕수 후보가 사퇴하더라도 우리와 연대하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주호영 의원은 “법원에서 가처분이 인용되면 후보를 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강조했다. 단일화에 찬성하는 의원들까지도 법적 논란 가능성을 언급하며 지도부의 강행 움직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셈이다.
한편 지난 7일에 이어 이틀간 진행된 김·한 후보 간의 두 차례 회동 역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두 후보는 이날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2차 회동을 가졌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