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 2025-06-09 07:00:00
수익을 좇아 자산이 빠르게 이동하는 이른바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주식과 가상자산은 물론, 예금과 적금까지 다양한 자산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과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시대’ 공약 등 정책 변화가 두드러지면서, 투자자들은 자산 재배분을 두고 복잡한 셈법으로 고심 중이다.
■뜨거워진 증시…돌아온 빚투
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증시는 최근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쏘아올린 이른바 ‘관세전쟁’ 우려에 2293.70까지 추락했던 코스피 지수는 지난 5일 2812.05로 지난해 7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2% 이상 상승한 이른바 ‘기술적 강세장’으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코스피 5000 시대’ 공약과 증시 활성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 등 정책 기대감이 투자심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재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주주의 권익을 강화해 한국 증시의 신뢰가 회복된다면 코스피 5000 돌파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 이 대통령의 주장이다.
새 정부의 주가 부양 기대감에 증시가 활황을 보이자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빚투’(대출을 받아 투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국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8조 5144억 원으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으로, 통상 주가 상승의 기대감이 클수록 늘어난다. 특히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도 3년 만에 60조 원대로 올라섰다. 투자자예탁금은 통상 주가 상승 기대감이 커지면 늘고 증시가 부진하면 줄어든다.
■‘불장’ 코인시장…국민 20% 투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올해 들어 가상자산 시장도 연일 뜨거워지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국내 시장의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107조 7000억 원으로 상반기(56조 5000억 원) 대비 9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하반기 가상자산 투자자 수는 970만 3775명으로 집계됐는데 전국민 5명 중 1명이 ‘코인 개미’다.
가상자산 대장주로 평가되는 비트코인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11만 달러를 돌파했다. 최근 10만 달러 초반까지 떨어졌지만 미국과 주요국 간 무역 협상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 다음 달부터 본격 랠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파이넥스는 기관 매수세, 고용지표 약세 등 조건이 갖춰지면 비트코인 가격이 다음 달 초 11만 50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스탠다드차타드(SC)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가격이 올 연말 20만 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적금 막차 행렬…안전자산도 인기
고위험자산으로의 자금 이동이 뚜렷한 가운데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예·적금 시장도 인산인해다.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5월 말 기준 940조 8675억 원으로 4월 말 기준 대비 18조 3953억 원 증가했다. 지난달 증가폭은 지난해 2월(+23조 6316억 원)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가장 컸다. 정기적금 역시 같은 기간 40조 4690억 원에서 41조 6654억 원으로 1조 1964억 원 늘어나면서 넉 달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는 금리가 더 떨어지기 전에 예·적금에 가입하려는 ‘막차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오는 9월부터 예금자 보호 한도를 기존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저축은행은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제공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목돈을 맡기는 데 있어 주저하는 투자자들이 있는데 예금자보호 한도가 상향되면 이런 우려가 해소된다. 보호 한도가 1억 원으로 올라가면 저축은행 예금은 16~25%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저축은행 예금 잔액이 현재 100조 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20조 원 안팎의 예금이 움직일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새 정부 출범 등 다양한 변수로 투자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며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춰 수익성과 안정성을 적절히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