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6-08 15:52:58
지난 4월 13일 개막해 6개월간 열리는 일본 오사카 세계박람회(EXPO)는 158개 국가가 참여한 국제 이벤트로 다양한 건축 디자인의 국가관을 만날 수 있다. K컬처와 IT기술로 꾸민 한국관은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한국의 날’로 정한 지난 5월 13일은 축구장 217개 규모에 달하는 현장이 열기로 넘쳤다. 1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행사를 준비했는데, 이날 메인 행사는 바로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조선통신사 행렬’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이라는 ‘오오야네링’을 따라 1km 정도 이어진 조선통신사 행렬은 전 세계 방문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취타대의 웅장한 연주를 시작으로 전통 복식을 갖춘 행렬대, 무용단, 연희단의 공연은 목조 건물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그런데 오사카 엑스포에서 왜 조선통신사가 대한민국 대표 행사로 선정됐을까. 부산문화재단 글로벌문화팀 김현승 팀장과 김효정 과장은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전쟁의 역사를 가진 두 나라가 이후 서로를 인정하며 수백 년간 소통했다는 게 세계가 기억해야 할 가치라는 걸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14년간 부산과 일본을 수십 차례 오가며 매년 양국의 조선통신사 축제를 열었다.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통신사선 복원, 복원된 조선통신사선의 일본 항해까지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역사적인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문화재단은 여러 부서를 순환하며 근무하는데 저희만 조선통신사 하나에 청춘을 다 바친 셈이죠. 낮과 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사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정되며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 싶었는데…. 통신사선 복원과 뱃길 종착지인 일본 오사카까지 항해 계획이 생기며 올해까지도 조선통신사 사업을 하고 있네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정작 두 사람은 문화재단 후배에게 핀잔을 받는 처지다. “왜 그렇게까지 자기 시간을 희생하냐”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사실 조선통신사 사업을 위해 두 사람이 뛴 지난 14년의 활동은 놀랍다.
김 팀장은 일본 유학 시절 우연히 일본에서 진행하는 조선통신사 행렬단에 참가했고, 한국에 돌아와 2009년 운명처럼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에 입사했다. 김 과장은 교수의 부탁으로 조선통신사 행사의 통역 봉사자로 2년간 참여한 후, 2011년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 업무를 맡게 되었다.
매년 5월 부산에서 열리는 조선통신사 축제는 관련 업무 중 가장 규모가 큰 행사이다. 일본에서 250여 명, 한국에서 3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나라 사람을 챙기는 일은 긴장의 연속이다. 일본 대마도와 시모노세키, 시즈오카의 조선통신사 행사도 준비부터 현장까지 모두 조율한다. 두 나라의 조선통신사 소식지도 발간하고, 교육 사업과 역사관 운영까지 책임져야 한다.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도전하며 실무 작업은 고스란히 두 사람의 일로 돌아왔다. 특히 정부 차원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가 주도하며 준비가 몇 배 더 힘들었다. 한국과 일본의 학자가 12번의 심포지엄을 통해 어떤 자료들을 포함할지 하나하나 짚었다. 행사 준비뿐만 아니라 모든 회의에 통역까지 맡았다. 조선통신사의 역사와 현재를 잘 모르는 일반 통역사로선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면 기록을 다 정리한 후 다음 회의 준비에 돌입했다.
무엇보다 적으로 싸운 전쟁의 역사를 가진 두 나라기에, 미묘한 관점의 차이가 가장 힘들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임진왜란을 일본의 침략으로 기재했지만, 일본은 출병으로 표현했다. 이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난항에 빠졌을 때, 조선통신사의 초심을 떠올렸다. 서로를 존중하며 믿음을 바탕으로 교류했던 것처럼, 일본 학자는 마지막에 한국의 주장을 인정했다.
조선통신사는 신청 2년 만에 등재가 결정됐다.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등재 후 일본은 각 지역에 조선통신사 기념관이 생겼고 전국에서 관련 단체들이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소강상태에 빠진 것 같아 아쉽다.
“조선통신사 자료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기념관이 필요합니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400m 길이 한지 인형 작품도 있고 다양한 예술 작품도 있는데 그걸 수장고에 묻어 두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유네스코 등재를 기다리던 2016년 전남 목포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의 홍순재 박사가 두 사람을 찾아왔다. 조선통신사 선박을 복원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출장지는 일본의 여러 도시에 목포까지 더해졌다. 2018년 진수식을 했고, 2019년 목포에서 부산까지 왕복 800km 시험 항해도 성공하며 일본에 갈 준비를 끝냈다. 일본 관계자들과 연락하며 배를 타고 갈 날을 기다리던 중 양국 관계가 악화되며, 한국 쪽에서 항해를 취소한다.
“곧 배를 타고 가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막막했어요.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일본 담당자들이 오히려 저희를 위로했죠. 당신들은 분명히 올 것 같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코로나 기간 국가 간 교류 행사가 모두 취소됐지만, 한국에서 유일하게 조선통신사 행사가 진행됐다. 서로에 대한 굳은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 조선통신사 뱃길의 첫 기항지인 대마도까지 복원선이 갔고, 2024년 대마도와 시모노세키까지 항해를 성공한다. 2025년 마침내 통신사 뱃길의 종착지인 오사카항에 조선통신사 복원선이 도착한다. 김 과장은 4월 28일 부산항에서 복원선을 타고 출발해 5월 11일 오사카까지 뱃길을 함께 했다. 항해 중 들른 7곳의 도시에선 정말 많은 시민들이 환영 행사에 참가했다. 도착한 도시의 시장 혹은 부시장이 직접 의전을 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나무배로 국제 항해를 한다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항상 일본의 안내선이 나와 부두까지 인도했고, 사고가 많이 날 수 있는 접안도 현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하늘이 이 항해를 허락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61년 만에 조선통신사 배가 오사카를 찾았고, 올해 9월 도쿄에서 조선통신사 마지막 행사가 예정돼 있다. 조선통신사 전 여정을 복원했으니, 두 사람의 다음은 무엇일까. 다른 부서 일도 해보라는 말도 듣는다. 현재 고민 중이란다. 인터뷰 끝내고 나서는데, 2년 후면 조선통신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이란다. 어떤 행사를 기획할까 기자의 의견을 듣고 싶단다. 못 말리는 애정이다. 아무래도 1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