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내 등산화 시장에서는 외국산 브랜드들이 최고급으로 여겨졌다. 검은 신발 밑창에 노란색 팔각형으로 상징되는 ‘비브람’이라는 소재를 앞세운 외국산 등산화는 당시에도 3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였지만 없어서 못살 지경이었다.
비브람은 몇 년을 신어도 뒤꿈치가 닳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워 기적의 등산화 밑창으로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그 시절 〈부산일보〉 주말 콘텐츠 관련 부서 등산 담당 기자는 비브람 소재가 한국의 산과는 궁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암벽등반이 아니라면 흙산 위주 산행을 하는 서양과는 달리 한국엔 소위 ‘골산’이라 불리는 바위산들이 많다. 비브람은 내구성이 뛰어난 반면 타이어 등에 들어가는 미끄럼 방지 물질인 부틸이 적게 들어가 있어 골산에서의 접지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반면 부틸이 많이 들어간 국산 밑창은 골산 표면에 쩍쩍 달라붙지만 내구성이 떨어진다. 직업적으로 등산을 가야 하는 입장에서 한국 산에서는 내구성이 떨어지더라도 부틸이 더 많이 들어간 국산 제품이 괜찮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시 기자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한국 등산화가 바로 트렉스타 제품이었다. 매주 신문에 실려야 하는 산행 기사의 특성상 비가 와도 산행을 접을 수가 없었기에 우중 산행에서도 접지력이 좋은 제품을 골랐을 테다.
그러나 접지력이 높은 제품은 역시나 내구성이 떨어졌다. 외국산 등산화에 비해 빨리 닳는 밑창은 곧 새 등산화 구입 비용 압박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외국산 등산화로 2~3배 더 오래 신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부서원들의 의견이 나오던 그때 트렉스타가 ‘밑창갈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잦은 등산으로 해어진 등산화의 밑창만 새것으로 교체해 주는 서비스였다. 당연히 등산 마니아들은 환호했고 너도나도 트렉스타 매장으로 달려갔다. 이 같은 소비자 중심 서비스가 있었기에 토종 브랜드인 트렉스타가 세계적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트렉스타가 유동성 위기로 올 초 체임까지 발생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밑창갈이 서비스를 하던 소비자 중심주의가 살아있는 한 트렉스타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부산의 5대 기관이 트렉스타 살리기에 총력을 모았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더 좋은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 확신한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