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3-09-22 15:38:39
※‘경건한 주말’ 구독자 여러분을 대상으로 감사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오는 10월 5일 오후 5시 시그니엘 부산에서 진행하는 ‘2023 부일영화상’ 참여를 인증하는 구독자 5분을 선정해 영화관람권을 2장씩 증정합니다. 구독자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pressjkk@busan.com으로 보내주세요. 부일영화상 현장에서 직접 촬영했거나 네이버TV 생중계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면 됩니다. 당첨자는 10월 6일 발표합니다.
참, 추석 연휴인 오는 29일 ‘경건한 주말’은 한 주 쉬어갑니다. 구독자 여러분도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
벤 애플렉 주연에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연출한 반전영화. 영화를 즐겨보는 관객이라면 구미가 당길 법한 SF물 ‘힙노틱’이 지난 20일 개봉했습니다. 홍보 부족 등 이유로 일반 관객들에게는 외면받고 있는 ‘힙노틱’을 직접 관람해보고 후기를 전합니다.
한편 국내 OTT ‘웨이브’에는 올해 6월 개봉작인 ‘노트르담 온 파이어’가 벌써 무료로 올라와 있습니다. 지난 18일 오전 업데이트된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포털사이트 평점이 8점대, CGV ‘골든에그’ 지수도 97%로 나쁘지 않습니다. 연출을 맡은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로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합니다. 추석 연휴 볼 만한 작품을 찾고 있을 구독자들을 위해 시청 후기를 정리해봤습니다.
영화 ‘힙노틱’과 ‘노트르담 온 파이어’.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찬란 제공
휘몰아치는 반전에 벤 애플렉 호연…킬링타임으로 좋은 ‘힙노틱’
루크(벤 애플렉)는 딸 ‘미니’를 잃어버린 형사입니다. 공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딸이 사라졌습니다. 이후 딸의 납치범을 찾았지만, 범인은 황당하게도 범행은 기억이 나지 않고, 딸의 행방과 생사 여부도 모르겠다고 주장합니다.
이 사건으로 아내와 이혼하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낸 루크는 ‘일이라도 해야 미치지 않을 것 같다’며 현장에 복귀합니다. 그러나 황당한 일은 계속됩니다. 은행 강도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문의 신고를 받고 동료들과 잠복근무를 하던 루크는 뛰어난 직관력으로 용의자(윌리암 피츠너)를 미리 알아챕니다.
용의자가 몇몇 사람과 접촉해 암호로 추정되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자, 공범들은 망설임 없이 범행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은행을 턴 공범들은 자살과 다름없는 사고로 죽어버리고, 용의자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갑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용의자가 노렸던 개인금고에 루크의 딸 ‘미니’의 사진이 있었다는 겁니다. 사진에는 ‘델레인을 찾아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영화 ‘힙노틱’.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루크는 은행강도 사건 제보자인 다이애나 크루즈(앨리스 브라가)를 찾아가 최면술이 범행에 사용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범으로 보였던 사람들은 최면술에 조종당했던 겁니다. 딸의 사진에 적혀 있던 ‘델레인’은 비밀 조직에서 훈련을 받은 전설적인 최면술사이자 은행강도 사건 용의자의 이름이었습니다. 다이애나도 델레인과 함께 훈련받았던 최면술사였습니다.
이제 영화는 루크와 델레인의 대결 구도로 흘러갑니다. 루크는 정체가 들통난 델레인의 살해 시도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지만 다이애나와 함께 공개 수배되고, 두 사람은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딸의 실종에 델레인의 조직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루크. 시간이 갈수록 흑막이 드러나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됩니다.
영화는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로 단숨에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알린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한 SF 액션물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로드리게즈 감독은 ‘패컬티’(1999), ‘씬 시티’(2005), ‘알리타: 배틀 엔젤’(2019) 등 시네필이라면 익숙할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제76회 칸 영화제 비공식경쟁 부문 초청작인 로드리게즈의 신작 ‘힙노틱’은 제목처럼 최면술이 핵심 소재입니다. ‘현실도 환상도 뒤엎는다’는 포스터 문구처럼, 최면으로 만들어낸 가상 세계와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짜릿한 반전을 안깁니다. 반전이 연속되면서 관객은 영화 속 장면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실제 인물인지 최면으로 만들어낸 인물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인셉션’(2010)을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최면을 통해 왜곡된 세상을 구현하는 방식부터 인셉션 속 장면과 유사하고,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세계가 반복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에서도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다만 반전 등 핵심 요소가 뻔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극장 곳곳에서 ‘헉’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반전이 연속됩니다. 반전들도 나름의 개연성이 있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저음이 강조된 음악을 활용한 서스펜스도 상당합니다. 특히 긴박하게 흘러가는 초반의 은행강도 신은 몰입감이 상당합니다.
영화 ‘힙노틱’.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최면에 빠져 좀비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영혼을 잃은 듯 최면술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조연과 단역들의 연기가 일품입니다. 빌런인 델레인 역을 맡은 윌리암 피츠너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연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인공인 루크를 맡은 벤 애플렉의 연기도 핵심 감상 포인트입니다. 영화 속 루크는 ‘정신장벽’이 강해 최면에 쉽게 휘둘리지는 않지만, 델레인의 강력한 최면술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면 탓에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자 당황하는 벤 애플렉의 연기가 로드리게즈 감독의 감각적 연출과 만나 흡인력이 상당합니다. 공포영화 못지 않은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여러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들도 남습니다. 영화를 즐겨보는 시네필이라면 힙노틱 속 반전이나 설정들은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전체적으로 ‘인셉션’과 비슷한 느낌인데다, 상대 감정을 조종하는 델레인은 영화 ‘엑스맨’ 시리즈 속 ‘프로페서 엑스’를 연상시킵니다. 플롯(구성) 역시 기존 반전영화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또 몇몇 반전 요소는 영어 표현을 활용한 것이라 한국 관객 입장에선 임팩트가 약하게 느껴집니다. 예컨대 화면 속 모니터에 영문으로 된 반전 요소가 있는데, 이를 자막으로 짚어주지 않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법한 장면입니다. 비밀조직의 존재감이 다소 약한 점도 아쉽습니다. 특히 의상에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좋았겠습니다. 영화 내내 연속되는 반전이 주는 재미는 있지만, 이렇다 할 ‘한 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공감이 갑니다.
그래도 93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에 반전이 몰아치니 지루할 새는 없었습니다. 결말은 다소 다급하게 전개되지만, 나쁘지 않은 마무리입니다. 짧은 엔딩크레딧 후 나오는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같은 극 영화…소방관 실화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찬란 제공
2019년 4월 15일 새벽. 스마트폰에 설치한 외신 어플들이 일제히 푸시알람을 보냈습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14세기에 완공된 세계적인 유산이 불타는 광경에 깜짝 놀라 잠이 싹 달아났습니다. 황급히 노트북을 켜고 속보를 처리한 뒤 경과를 지켜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올해 6월 29일 개봉한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4년 전 발생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건을 다룬 재난 영화입니다. 860년이나 된 건물에서 난 화재를 진압하느라 사력을 다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영화는 화재 당일 일어난 일들을 시간 순으로 배치하는 단순한 구조로 흘러갑니다. 몇 시간짜리 교육만 받은 통제실 담당자, 대성당 공사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몰지각한 인부가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결국 인부가 버린 담배꽁초가 불씨가 돼 불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실제 노트르담 성당 화재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담배꽁초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혹은 사건 초기부터 제기됐습니다. 당시 현지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담배꽁초 7개를 발견했고, 성당 보수작업을 맡았던 업체도 현장 근로자들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재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연출 기법을 답습했습니다. 발화지점에선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성당 내부는 잠잠합니다. 통제실의 화재경보기에 뜬 경고에 따라 보안 직원이 찾아가본 ‘성물실 다락’은 멀쩡합니다. 보안 직원은 “경보 시스템이 몇 년째 말썽이라 상부에 보고를 몇 차례나 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래도 화재경보가 떴으니 성당엔 대피방송이 흘러나오고, 미사를 보던 교직자들은 성가시다며 투덜댑니다. 같은 시각 성당 상부층에선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날 리가 없다’며 반신반의합니다. 결국 ‘본당 다락’이 발화지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성당 측은 부랴부랴 소방에 신고하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이제 공은 파리 소방대에게 넘어갑니다. 고층인 대성당 상부에서 발생한 불을 끄는 것도 문제지만, 가시면류관을 비롯해 역사가 깃든 보물들을 안전하게 구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실제 화재 당시 곳곳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삽입돼 현장감이 있습니다.
영화는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심어뒀습니다. 보수 작업 때문에 설치해둔 500톤에 달하는 비계 구조물이 녹아내리면 성당이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종탑이 화염에 휩싸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화재 확산을 필사적으로 막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은 존경심을 자아냅니다.
성당의 가장 중요한 보물인 가시 면류관을 구하려는 노력도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면류관을 보관하는 금고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성당 관리인이 황급히 성당으로 향하는 장면이 화재 현장과 여러 차례 교차됩니다. 긴박감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보이는데,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역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찬란 제공
영화는 실화 바탕이라는 점에서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연출과 편집 등 완성도만 놓고 보면 허점이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연출이 진부하고, 재난 영화답지 않게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소방대 간부의 계급을 반복적으로 강조한 연출은 ‘구리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음악을 활용해 감동을 안기려는 신파적 연출도 올드합니다.
특히 감정을 이입할 만한 주인공이나 서사가 없어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습니다. 대표적 소방관 영화인 ‘온리 더 브레이브’(2017)의 경우 소방관 선후배인 ‘에릭 마쉬’(조쉬 브롤린)와 ‘브렌단 맥노도프’(마일스 텔러)의 갈등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가 감동을 자아냈지만, ‘노트르담 온 파이어’에선 그 정도 감동을 느끼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들의 분투를 전달하는 면에선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시 소방관들이 느꼈을 공포감이나 고립감, 답답한 심정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불길이 잡히지 않아 성당이 붕괴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살과 다름없는 내부 진입 작전에 기꺼이 자원하는 소방관들의 용기와 헌신은 경이롭습니다. 화재현장을 보는 듯한 현장감도 대단한데, 장 자크 아노 감독은 대성당의 일부 공간을 본뜬 세트장을 만들고 실제로 불을 붙여 촬영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사회적 메시지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지휘체계를 확실히 정하고 첨단 소방장비를 동원하는 프랑스의 선진 소방 시스템이 인상적입니다. 현직 프랑스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현장을 방문하는 대목에선 통쾌한 풍자가 드러납니다. 화재 진압에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긴급상황에 고위 정치인이 찾아오는 건 방해가 될 뿐입니다. 대통령이 방문하자 소방대 간부는 브리핑을 위해 가짜 상황실을 차리고 눈속임에 나섭니다. 한국 정치인들도 주목해야 하는 장면입니다.
소방관들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은 화재 현장 방문이 아니라 처우 개선일 겁니다. 프랑스 소방관 수천 명은 2020년 ‘화재진압 수당이 경찰의 위험수당 수준에 못 미친다’며 파리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소방관들의 낮은 처우 문제는 해묵은 과제입니다. 행정안전부는 내년부터 소방공무원에게 지급되는 구조구급 활동비를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인상한다고 지난 6일 밝혔습니다. 구조구급 활동비 지급 제도가 1996년에 생겼으니 인상까지 20년이나 걸린 겁니다. 경찰에게 지급되는 ‘대민활동비’는 애초 소방의 2배인 20만 원이었습니다.
소방관 영화를 보고 나니 지난 1일 부산 동구 목욕탕에서 발생한 화재 폭발 사고로 다친 소방관들의 안위도 걱정됩니다. 이 사건으로 소방관 2명이 안면부에 2도 화상 등 중상을 입었습니다. 최근 ‘한겨레’가 기획 보도한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시리즈는 소방관들이 겪는 고충을 생생히 다뤘는데, 일독을 권합니다.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애쓰는 소방관들에게 새삼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