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1-19 14:11:47
일상이 평범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지난해 12월 어느 밤 이후 대다수 국민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영하의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눈이 몰아치는 밤에도 아늑한 방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예술로 그들의 마음을 전한다. 지금의 정국과 딱 맞을 것 같아서 기획했다는 전시, 부산판화가협회의 ‘레드 포비아’전이다.
아리안갤러리에서 23일까지 이어질 이 전시는 부산판화가협회가 기획했지만, 회원들의 판화 작품전이 아니다. 오히려 회화, 조각 등 다른 분야에서 대가로 불리는 이들의 작품들이 주인공인 듯 중앙 자리를 차지했다. 판화가협회 회원 작품은 작은 크기로 준비했고 그마저 한쪽 벽에 모아서 걸었다. 그런 마음이 예뻐 보여 이 전시가 더 남달라 보였다.
전시 주제를 제안한 서유정 부산판화가협회 회장은 “대한민국은 레드 컴플렉스, 레드 포비아라는 현상이 오래 지배해왔고, 권력 유지의 좋은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레드라는 색이 가진 상징성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죽음 같은 불길한 예감, 위험의 경고, 힘과 권력, 권위와 통치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행복 축복 사랑 열정과 같은 의미도 있다. 회화 판화 미디어 설치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를 통해 레드가 가진 감각적인 자극과 상상을 새롭게 유발하고 싶었다”라고 소개했다.
회화 분야에서 정철교, 김응기, 심점환, 김성철 작가가 메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네 작가 모두 미술판에선 작품 세계가 분명하고 존재감도 대단하다. 백인곤 조각가의 붉은 조각들 역시 심상치 않은 힘을 뿜어내고 있다.
부산판화가협회는 타 장르와의 융합 전시를 통해 판화의 새로운 매력을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 역시 회화와 조각을 메인으로 올리고 부산판화가협회 회원들의 작품들을 함께 설치해 전시 그 자체가 거대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서유정 회장을 비롯해 차동수 홍익종 이원숙 서상환 등 경륜 높은 작가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23명이 참여했다.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전시장 한 벽을 붉은 펜으로 텍스트 이어쓰기가 진행되고 있다. 현 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부터 예술에 대한 이야기, 일상의 무게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솔직담백하게 쓰여 있다. 서 회장은 공동체적 소통과 이해,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치유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부산판화가협회는 레드 포비아를 시작으로 멜랑꼴리 블루, 블랙 느와르 등 3부작의 컬러 연작 전시를 올해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