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07-15 15:40:13
“‘무모한 망상이다’ ‘하던 거나 잘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응원과 지지를 받아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현실만큼 심리적으로도 어려웠습니다.”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로 한국영화 사상 미국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장성호 감독은 작품 준비 과정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16일 개봉하는 이 작품은 지난 4월 북미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쓴 기록을 갈아치워 화제가 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힘들고 아픈 일이 많았지만, 미국 시장에서 반응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찰스 디킨스의 단편 소설 ‘우리 주님의 생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소설가 디킨스와 아서 왕을 동경하는 아들 월터에게 ‘왕 중의 왕’ 예수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액자식 구성의 영화다. 극 중 디킨스와 월터는 20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예수 곁에서 그의 삶을 지켜본다. 국내 개봉에 앞서 북미 지역에서 4월 11일 공개됐는데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누적 극장 수입은 6,000만 달러(약 827억)를 넘어섰다. 장 감독은 “국내 시장은 예측이 어려워서 미국 개봉 때보다 더 긴장되고 걱정된다”고 했다.
‘킹 오브 킹스’는 기획에서 개봉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당초 장 감독은 제작만 할 예정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하게 됐다. 그는 “미국 내 기독교 콘텐츠 시장을 조사해 보니 실패 사례가 없었다”면서 “북미 지역은 부가판권 시장이 크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제작비를 회수해 투자금을 잃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미 합작영화 ‘워리어스 웨이’,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등에 참여하며 현지 스태프들과 친분을 쌓은 덕분에 캐스팅 과정은 순조로웠단다. “운이 좋았죠. 다행히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래나 씨가 ‘내가 시나리오를 썼어도 이렇게 쓰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해줘 벤 킹즐리, 피어스 브로스넌, 포리스트 휘터커, 오스카 아이삭 등 다른 배우들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장 감독은 30년 이상 시각특수효과(VFX) 분야 전문가로 활약해왔다. 그는 국내 VFX 1세대로 1994년 모팩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 30여 년간 ‘공동경비구역 JSA’ ‘해운대’ ‘태왕사신기’ ‘별에서 온 그대’ 등 300편 이상의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에 참여했다. 감독은 “실사 영화로는 저만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어려울 것 같아 주위의 저항감이 적을 듯한 애니메이션을 첫 영화로 택했다”면서 “애니메이션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전은 계속된다. 감독은 “자화자찬 같지만 미국에서 해외 애니메이션 영화가 이 정도의 완성도로 이만큼 성공한 예는 없을 것”이라며 “최소한 아시아에선 유일무이한 일을 해내며 할리우드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영화 개봉 후엔 현지(할리우드)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올 정도”라면서 “실사 영화도 만들고 싶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애니메이션을 좀 더 만들어가는 게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