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2-12 13:51:55
한때 학원가에 초등 대상의 창의력 수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심지어 문화센터에선 유아를 대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수업의 주된 활동은 다양한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상상한다거나 아이들이 돌아가며 한 문장씩 이야기하며 하나의 동화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수업을 재미있게 참관한 기억이 나는데, 학교 성적과 직접 연관이 없었던 탓인지 이 수업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예전 경험을 떠올린 건 부산 수영구 광안리 복합문화공간 포디움 다이브엠에서 진행 중인 ‘독일 현대미술 거장전: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를 보고 난 후였다. 이 전시에선 독일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선두 주자이자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사랑하는 거장, 크리스트프 루크헤베를레의 대표작 12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2개 층에 걸쳐 전시가 진행될 정도로 큰 규모이며, 특히 오랜만에 부산에서 열리는 외국 거장의 단독 전시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루크헤베를레 작가는 독특하고 다양한 예술적 표현, 회화와 조각을 동시에 작업해 네모난 캔버스를 탈출한 그림이 조각으로 변신하는 모습 등 유쾌하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인기가 많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이 지닌 의미가 관객들에 의해 결정되고 구성된다고 말한다. 작품이 작가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눈과 감각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제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작가의 회화는 추상이 아니라 명확한 형태와 인물이 있는 구상이지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제목을 붙이는 것조차 관객의 상상 여지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수한 창작의 의도로 점철된 그의 예술적 실행과 실험적 탐구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 스스로가 믿는 현대미술의 행태이기도 하다. 작가의 그림을 보며 초등학생의 창의력 수업이 떠올랐던 건 이런 이유였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특정한 상황이나 이야기, 주제를 떠올리며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루크헤벨레는 이미지 그 자체를 떠올리고 제안한다. 작가의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관객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회화라는 점 때문에 루크헤벨레의 작품은 세계적인 미술관들에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캔버스, 벽지 등에 작업한 작가의 회화를 비롯해 조각 작품까지 선보인다. 유화, 아크릴, 과슈 물감뿐만 아니라 흔히 자동차 도료로 사용되는 에나멜 그림도 많다. 나뭇결이 매력적인 목판화 작품들도 있으며 전시 마지막 파트에선 피카소처럼 장면과 인물을 과감하게 해체한 그림이 기다리고 있다.
포디움 다이브엠은 광안리에 새롭게 생긴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지하 1층 카페(다이브 라운지), 지하 2층 갤러리(다이브엠), 지하 3층 서점과 라이프스타일샵(아크앤북)이 있다. 이번 전시는 지하 1층 카페와 지하 2층 갤러리 공간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3월 30일까지 진행되며 유료 전시이다.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어린이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