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대학 재적생 중 이공계 비율은 46.7%나 된다. 부산은 전국에서 세 번째로 과학기술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인재들은 사회에 진출할 때쯤엔 고민이 커진다. 부산에 일자리가 적다 보니 남고 싶어도 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부산은 과학기술 부문 졸업자의 순유출 규모가 2023년 기준 약 2만 명이다. 전국에서도 가장 크다.
자연과학, 정보통신기술, 공학 전공자들은 부산에 남더라도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 보니 이직이 잦고, 직업적 경험을 쌓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 부문 인재에게 실무 경험을 알려주고, 창업이나 일자리까지 연계해 ‘부산에서 사는 법’을 전파하는 ‘선배’들이 있다. 이하늘 ‘소프트스퀘어드’ 대표와 김광범 ‘모두의 AI’ 대표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개발자 양성 교육 프로그램 ‘라이징 캠프’는 IT 전공자들이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실무를 배울 수 있는 필수 코스로 통한다. 국내 ‘1세대 개발자’인 김 대표는 수년 전 챗GPT가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매력을 느끼고 독학으로 ‘미친 듯이’ 공부를 해 연구 성과를 공유했고, ‘후배’들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하늘 소프트스퀘어드 대표 '개발자로 살아남으려면'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 ‘라이징 캠프’ 운영
700명 수료…창업해 시리즈B 투자 받기도
“IT 전공자들이 기업에 취직해 획일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취업 대신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부산 출신으로 서울 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던 이 대표는 대학교 3학년 때 창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대학에서 이론 교육을 받은 IT 전공자들에게 현장에서 뛰어본 선배들이 실무를 알려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브랜드 ‘컴공선배’가 세상에 나왔고 자기주도형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 ‘라이징 캠프’가 처음 열렸다.
라이징 캠프에서는 캠프를 수료한 선배와 후배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된다. 교육에는 대학생은 물론 현직도 참여가 가능한데, 그동안 700명이 거쳐 갔고 수료 후 창업 사례도 여럿 나왔다. 한 개발자는 실제 창업에 나서 시리즈 B투자(규모 50억~100억의 투자)를 받기까지 했다.
캠프 수료자에게는 ‘A/S’ 기회도 주어진다. 바로 개발자들과 일자리를 매칭하는 플랫폼 ‘그릿지’를 통해서다. 수료자들은 실무 테스트를 거쳐 직접 그릿지에서 일할 수 있고, 새로 습득한 기술을 기반으로 자체 서비스를 개발, 창업도 가능하다.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산대 학생 2명은 그릿지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다.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동훈 씨는 "인턴십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논의를 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개발 방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프트스퀘어드의 비즈니스 모델에는 이 대표의 개발자로서의 고뇌가 담겼다. 이 대표는 “저 역시 학생 때는 실무를 배울 곳이 없었고, 실무를 배워도 프로젝트를 맡을 수 없으면 커리어를 쌓을 수 없었다. 그리고 커리어를 쌓고 나면 회사에서 획일적인 업무를 이어 나가야 했다”며 “이런 개발자들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장이 돼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서울에 본사를 뒀던 소프트스퀘어드는 지난해부터 부산 기업이 됐다. 많은 부산 기업이 그릿지를 통해 프로젝트를 의뢰해 오면서 이 대표도 ‘부산 수요’가 상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 기업들이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며 "소프트스퀘어드가 제공하는 교육과 플랫폼 일자리에 대한 부산의 수요가 높을 것이라 판단해 본사를 부산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김광범 모두의 AI 대표 '챗GPT를 내 비서로 두려면'
챗GPT 독학, SNS 게시 후 강의 요청 쇄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직군 교육
모두의 AI 김 대표는 소위 국내 ‘1세대 개발자’였다. 한때 인기가 높았던 음원 유통회사 소리바다를 개발한 게 그였다. 뒤이어 한국 중소기업 화장품을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유통하는 유통 플랫폼을 운영하던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한다. 태국 4대 백화점과 주요 홈쇼핑에서도 그의 업체 모시기에 바쁘던 시절이었다. 2017년 부산에 한국지사를 세웠다. 그는 “고향 부산을 내 사업으로 한 번 살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무역이 사실상 멈추면서 태국 창고에서는 물건들이 썩어버렸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폐업을 선택했다.
재기 의지마저 꺾일 즈음 세상에 공개된 챗GPT에 그의 개발자 DNA가 다시 꿈틀거렸다. 지금도 날짜를 또렷이 기억한다. 2022년 11월 30일. “챗GPT는 모두에게 처음이었어요. 한 발 빨리 챗GPT를 익히면 승산이 있겠다고 봤고 고시원에 살며 혼자서 미친 듯이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독학으로 챗GPT 구동 방식을 파헤쳤고 성과가 나면 개인 SNS에 업로드했다. 홍보가 저절로 됐다. SNS 연구 성과를 본 사람들에게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비스 커뮤니티를 론칭하려다 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생각을 바꿀 정도로 요청이 쇄도했다. 김 대표는 지난 4월부터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강의를 하고 있는데 벌써 수강생이 300여 명이다.
20~60대에 걸친 다양한 직업군의 수강생들은 김 대표의 교육 프로그램 ‘나만의 AI비서 만들기’에 빠져들었다. 프로그램은 ‘누구나 업무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콘셉트를 기반으로 한다. 강의에서는 생성형 AI를 통해 나만의 문체, 원하는 성과물의 형태 등을 고려해 프롬프트 즉, ‘AI 자판기’를 만든다. 그는 “수강자 중에 뉴스레터를 제작하는 업무를 맡은 분이 계셨다”며 “뉴스레터 주제에 맞는 기사를 선정하고 글을 쓰는 데 6시간이 걸렸는데, 강의를 통해 본인 맞춤형 프롬프트를 만들어 30분으로 줄였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부산에 AI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부산에는 AI 인력이 없어 잘만 쓴다면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AI 기술 중요성이나 생산성에 대한 이해를 더 넓혀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