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2025-12-23 11:16:2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영시협의회는 22일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영시의회의 사업비 전액 삭감은 초유의 야만적 의결”이라며 조속한 예산 원상복구와 시의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독자 제공
경남 통영시의회가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의 내년 사업비 보조금 전액을 삭감했다.
시의회는 사업의 구체성이 부족한 데다 시급성도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한편에선 최근 여권 성향 인사들이 자문위원으로 다수 합류한 데 따른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평통 통영시협의회는 22일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비 전액 삭감은 초유의 야만적 의결”이라고 반발했다.
앞서 통영시의회는 지난 16일 열린 제240회 제2차 정례회 제3차 본회의에서 민주평통 보조금 2000만 원을 삭감한 2026년도 본예산안을 표결 끝에 가결했다.
현재 통영시의회는 국민의힘 9명 더불어민주당 4명 구성이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 중 8명이 찬성하고 1명은 기권했다. 민주당 의원 4명은 전원 반대했다.
애초 통영시가 편성한 민주평동 보조금은 총 3300만 원이다. 이중 이번에 삭감된 예산은 자문위원 워크숍,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체험탐방, 평화통일 노래가사 경연대회,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사랑애 김장담금과 나눔 등에 필요한 사업비다. 나머지 1300만 원은 직원 수당 등 운영비다.
예산 삭감을 주도한 국민의힘 김희자 의원은 “해당 사업은 보다 충분한 사전 계획과 구체적인 사업 설계가 선행될 필요가 있어 보이며 당장 집행해야 할 시급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돼 삭감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사업 계획을 수립한 이후,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부연했다.
반면 통영시협의회는 지난 4년 임기 동안 똑같은 사업 내용과 예산 금액을 두고 한 번도 문제 삼지 않다가 이번에 실효성 등을 이유로 삭감한다는 주장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다고 반발했다. 정례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을 당초예산에서 없애놓고 추경을 거론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관련법 취지와 제도 근간을 훼손하는 결정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민주평통은 헌법 92조에 의해 설치된 대통령 자문기구로 1981년 설립된 국가기관이다. 남북관계·통일정책 등을 대통령에게 건의·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법은 전국 228개 시군구에서 조례를 제정해 지역협의회 활동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삭감으로 통영은 전국을 통틀어 사업비 예산이 0원인 지자체가 됐다.
통영시협의회는 “선출직 공직자의 법과 제도 그리고 통일 문제에 대한 심각한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이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라며 “헌법기관을 부정하고 의장인 대통령 평화통일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의심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의원은 무소불위의 권리가 아니다. 칼이 쥐어졌다고 막 휘두르면 당신들도 다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잘못된 결정을 가장 빠른 기간 내 바로잡고 평화통일 운동 최선봉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문위원과 통영시민에게 정중히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지역 정치권에선 지난달 새로 구성된 제22기 자문위원에 보수 성향 인사들이 빠지고 진보 성향 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데 따른 표적 삭감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체 자문위원 49명 중 20명 남짓이 민주당 성향”이라며 “사실상 당연직으로 함께했던 시의원들도 이번에 국민의힘 쪽은 대거 등록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장은 발대식에서 불참했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 아니겠냐”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