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2026-01-09 16:59:18
부마항쟁 당시 부산대 진압에 투입된 기동대. 부산일보DB
1979년 부산대 교정에서 부마민주항쟁 시위에 참여해 구류 처분을 받았던 60대 남성이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만 19세 나이로 ‘언론 자유’를 외치며 애국가를 불렀다가 부산지법에서 즉결심판을 받은 그는 47년 만에 같은 법원에서 뒤바뀐 판결 결과를 받게 됐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6단독 김정우 부장판사는 지난 8일 60대 남성 A 씨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사건 재심 선고기일을 열어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1979년 10월 16일 오전 11시께 부산 금정구 부산대 교정에서 학생 1000여 명이 참여한 부마민주항쟁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즉결심판에 회부됐다. 당시 A 씨는 언론 자유 등을 외친 시위대 뒤쪽에 가담해 애국가를 부르고, ‘우이샤 우이샤’ 등 함성을 지르며 30분간 시위에 참여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에 붙잡힌 A 씨는 그해 10월 30일 부산지법에서 ‘구류 3일’ 즉결 처분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받은 A 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부산지법은 지난해 7월 17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A 씨가 참여한 시위가 옛 집시법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 집회 또는 시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학교, 연구 기관, 도서실, 의료기관 등 공공시설 업무에 지장을 준 정도의 소란 또는 위압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시위는 유신 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이라 정당한 행위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극심해지던 중 유신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인 부마민주항쟁이 전개됐다”며 “부산 시민들에게 해당 시위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시민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초래하는 정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으로도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 증명이 없거나 형법 제20조가 정한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어져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