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 2026-01-18 20:00:00
부산항에서 선박용 기름 불법 유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19년 3월 5일 해경이 180억 원대 해상용 면세유를 빼돌려 유통한 일당을 검거한 뒤 범죄 수법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지법은 지난 17일 부산항 일대에서 빼돌린 해상 면세유를 유통해 억대 수익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일당 14명에게 징역 1년 6개월 등의 실형과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6월에는 부산항에서 면세유가 불법 유통된다는 점을 악용, 해상 급유선 운영업자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수천만 원을 갈취한 50대 남성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부산항에서 계속 반복되는 선박용 기름 불법 유통 사건이 부산항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사)한국발전연구원 김길수 원장(국립한국해양대 명예교수)은 관계 기관의 책임 공백을 해소시켜 중고 연료를 투명하게 거래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빼돌리는 기름의 출처와 거래 과정
면세유 불법 유출은 주로 외국 무역선 벙커링 현장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 가장 대표적인 수법은 이른바 ‘포켓 오일’이라 불리는 방식이다. 실제 주문량보다 적게 공급한 뒤, 남은 물량을 급유선 탱크에 몰래 숨겨두는 행위다.
이른바 ‘깡’으로 부르는 방식은 급유선 업자와 선원이 공모해 계량기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공급량과 소모량을 장부에 허위 기재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빼돌려진 면세유는 ‘뒷물’이라는 이름으로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주로 선박 연료 소매상들이 선원이나 급유선 업자로부터 헐값에 기름을 사들인다. 이 무자료 유류는 정상적인 세금을 내지 않은 채 다시 국내 일반 선박은 물론 공장이나 온실 등 육상 사업장으로 유통된다. 보고서는 이러한 ‘뒷물’ 거래의 유통 단계마다 중간 이득이 발생해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한다고 파악했다.
■세수 1000억 손실, 신뢰도 추락
보고서는 선박용 기름 불법 거래 추정 규모를 2024년 기준 45만~60만kL로 봤다. 보고서는 세수 1000억 원 이상이 손실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조세 포탈이라는 가시적 피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장 질서 교란이다. 2021년 10월 합법적인 중고 연료 유통을 위해 국내 최초로 사업자 등록을 낸 한 회사는 5년이 지나도록 단 한 차례도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하고서는 무자료 유류와의 가격 경쟁에 밀려 도저히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또 이런 불법 행위가 만연한 항만이라는 오명은 부산항과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산항에 가면 잔존유를 손쉽게 팔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동아시아의 거대한 암시장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인식은 오히려 정상적인 급유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북극항로 거점항 비전에도 악영향을 줄 우려가 크다.
■관계 기관 책임 공백 타파해야
잔존유 불법 유통에 대한 관계 기관 대응은 소극적이다. 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는 “면세유 부정 유출·거래 단속 권한은 관세청에 있다”고 말했다. 단속 주체인 세관과 해경은 불법 거래 단속 때마다 현장에 보이는 급유선이나 소매상 위주로만 수사한다. 제도적 허점이나 배후의 관리 책임까지는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두 기관 모두 “향후 대규모 단속을 할 때 구조적 문제들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는다.칸막이 행정과 책임 공백이 부산항을 비리 온상으로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무리가 아니다.
보고서는 문제 해결책으로 해수청이 외국 선사를 대행하는 해운대리점의 선용품 공급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운대리점이 합법적인 중고 연료 유통업자와 잔존유 수출입 계약을 맺었는지 계약서를 해수청에 제출해 검토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세관과 해경은 단속 패러다임을 바꿔 현장 절도범 단속 수준을 넘어 잔존유의 소유·통제권을 가진 외국 선사 지점과 해운대리점의 관리 책임 소홀을 더 엄중히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