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 2026-03-04 18:26:55
지난해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오던 증시가 ‘중동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지수는 불과 이틀 새 고점 대비 20% 넘게 급락하며 공포 심리가 팽배한 모습이다. 그동안 누적된 차익 실현 욕구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를 계기로 분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뛰어 오르고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채권과 금 가격까지 내리며 '퍼펙트스톰'이 몰아쳤다.
■국내 증시, 상승·하락률 모두 1위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달 말까지 코스피는 48.17% 상승하며 주요국 대표 지수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2위 역시 코스닥으로 28.88% 올랐다.
같은 기간 일본 니케이(16.91%), 중국 선전종합(9.19%), 중국 상하이종합(5.04%),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0.49%), 미국 나스닥(-2.47%), 홍콩 항셍(-0.61%)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국내 증시의 상승세는 단연 압도적이다. 지난해에도 코스피는 75.63% 올라 주요국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잘 나가던 한국 증시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촉발한 ‘중동 사태’로 예기치 못한 찬물을 뒤집어썼다. 전쟁이 발발한 후 첫 거래일인 지난 3일 코스피는 7.24%, 코스닥은 4.62% 각각 하락했다. 4일은 하락세가 더 가팔라졌다. 코스피는 12.02%, 코스닥은 14.00% 폭락하며 세계 주요국 주가 지수 중 하락률 1·2위를 차지했다. 일본(-3.61%), 중국(-0.98) 등 아시아 주요국과 비교해도 낙폭이 두드러진다.
특히 전쟁 전인 2월 27일과 이날을 비교했을 때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18.43%, 17.97% 폭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 니케이와 중국 상하이 지수는 각각 7.82%, 1.93% 하락하는 데 그쳤다. 미국 S&P500과 나스닥은 1%도 채 하락하지 않았다.
한국 증시가 중동 사태에 유독 예민한 것은 그동안 가파른 상승에 대한 부담과 함께 원유 의존도, 수출 중심 산업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수출 주도 업종으로 그간 지수 상승을 이끌어낸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업종이 크게 하락했다. 항공주와 석유화학 업종은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비·원재료비 상승에 직격탄을 맞았고, 수혜주로 여겨졌던 방산, 해운, 정유 등도 전방위적인 투매에 이날 장중 하락 전환했다.
또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위험자산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정보 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전장보다 17.39포인트(27.61%)나 급등한 80.37를 나타내고 있다. 전날 지수가 7%대 하락할 때 9.46%가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공포감이 전날보다 훨씬 더 커졌다는 뜻이다.
■향후 전망 엇갈려
시장이 패닉 조짐을 보이면서 전문가들의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단기 급등에 따른 과열이 일부 해소된 만큼 이번 하락을 투자 기회로 봐야 한다는 시각과, 전쟁 장기화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지정학적 위험은 지나고 나면 늘 기회였다”고 말했다. 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도 “현재는 전망보다는 대응이 유효한 시점으로 보인다”면서도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중동 사태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급의 악재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 연구원은 “지수 추세 하락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든다”며 “현시점에서 투매에 동참하는 성격의 비중 축소 전략보다는 기존 포지션 유지 혹은 낙폭과대 주도주 매수 전략의 실익이 더 클 듯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주재하고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제 영향 최소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관계기관과 함께 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과도한 시장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현재 운영 중인 ‘100조 원+알파’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할 것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