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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의료개혁특위, 지역·필수의료 강화에 흔들림 없어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료개혁특위)가 25일 공식 출범했다. 특위는 그동안 지적돼 온 의료 관련 핵심 문제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취지 아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정책을 구체화하는 기구다. 하지만 예상됐던 대로 의료개혁의 당사자인 의사협회와 전공의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이날 특위에 불참했다. 정부가 양보안을 내고 특위를 통한 대화의 길까지 열었는데도 이를 거부한 채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만 고수하는 의사들의 행태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출범한 특위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중심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날 특위에는 노연홍 위원장을 비롯한 18명의 민간위원과 사회부총리 등 6명의 정부위원 등 모두 24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노 위원장은 “의료개혁은 교육, 지역 문제, 과학기술 등 사회 전반과 연관된 문제”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적 협의체 논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할 것이다. 환자와 의사 모두 안심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려면 법안 마련과 재정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특위는 중증·필수의료 보상 강화, 의료 전달체계 정상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등 4개 과제를 선정해 향후 집중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부는 이미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원칙에서 한발 물러서서 유연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얼마 전에는 의과대학 입학 모집인원을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양보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료계는 이에 아랑곳없이 의대 증원 정책의 폐기와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특위 참여를 거부한다. 한 치 양보 없이 굴복만 강요하는 태도는 국민도 정부도 안중에 없는 집단 이기주의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게 있다면 특위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특위 구성이나 의제 설정이 불만이라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밝히면 되고 다른 방식의 사회적 협의체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함께 의논하면 될 일이다.
특위가 의료계의 불참 탓에 반쪽짜리로 출범했지만 의료개혁 추진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특히 지역과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데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한다. 애초 필수의료 인력 부족과 중앙-지역 간 의료 격차를 메우기 위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나온 것도 그런 의미였다. 지역·필수·공공의료의 취약성 해소가 의료개혁의 본질이라는 사실은 의료 공백 사태 속에서 벌써 입증됐다. 환자와 국민들의 고충이 날로 커지는 시점에서 사회적 협의체를 통한 의료개혁의 타협안 도출이 시급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어떤 형태로든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의료계가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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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상의 'HMM 본사' 부산 유치 추진을 환영한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 본사 부산 유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부산항을 거점으로 한 국적 해운사 유치는 해양수도 부산의 숙원이었는데 최근 HMM 매각 협상 과정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기에 부산상공회의소 양재생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HMM 본사 부산 유치를 강조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부산의 경제 수장이 대기업 본사 부산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양 회장은 25일 전정근 HMM 해원노조위원장을 부산상의로 초청해 본사 부산 이전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본사 부산 북항 건립을 놓고 긍정적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HMM은 부산항을 모항으로 출발해 글로벌 해운사로 성장했다. 1967년 부산에서 설립돼 1990년대까지 세계 10위권 해운사로 도약했으나 2000년대 이후 글로벌 해운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다 2016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글로벌 해운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현재 국내 1위, 세계 8위 규모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90% 이상이 부산항에서 처리되고 있고 실질적 업무도 부산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본사가 부산에 위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앞으로 북극항로를 통한 부산항 성장 전망을 감안하면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부산의 글로벌 허브도시 도약을 위해서도 HMM 본사 부산 유치는 중요한 모멘텀이다.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의 중심축이 해양과 금융이다. 해양 관련 공기업들이 모두 부산에 입지하고 있고 HMM 대주주이자 해운사를 지원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 본사도 부산이다. 해양 분야의 집적과 시너지를 위해서도 HMM 본사 유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북항재개발로 본사 입지를 위한 여건도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 2000명에 최근 3년간 연간 매출액이 8조~18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부산에 온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상징성을 갖는다. 부산이 글로벌 해운 중심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이나 서울과 부산의 두 바퀴로 성장하는 대한민국이 구호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HMM과 산업은행 본사 부산 유치와 같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일으킬 대기업이 부산으로 와야 수도권에 대응하는 경제권 역할이 가능하다. 글로벌 허브도시특별법도 결국 국내외 대기업의 부산 유치를 위한 것이다. HMM 본사 부산 유치의 경우 앞서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나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추진을 약속했고 심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에도 포함됐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적극적이다. 여야가 힘을 합해 추진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HMM과 산은의 부산 본사 유치가 하루빨리 성사돼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의 주춧돌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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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예술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도시
일주일 전, 〈부산일보〉 1면에 ‘과자 한 개, 두부 한 모 사기도 겁난다’는 기사가 실렸다. 시장 물가를 몸으로 체감한 지는 이미 오래다. 부산을 대표하는 서민 메뉴 돼지국밥도 평균 1만 원 시대에 돌입했다.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인의 점심값이 한 달에 20만 원이 넘는 셈이 된다. 생필품 가격도 장난이 아니다. 바야흐로 ‘초고물가’ 시대다. 소비자의 구매 의욕은 줄어들었고 외식은 언감생심이다. 곳곳에 빈 점포가 넘쳐난다. 일자리와 인구의 감소는 도시의 평균 연령만 높이고 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저소득층이 저소득층을 괴롭히는 ‘같은 계급끼리의 자해’가 생길 수도 있다. 프란츠 파농이 말한 ‘수평 폭력’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1929년 10월 미국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미국 수출에 의존하던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치명타를 입었다. 당시 대미 수출에 의존하던 독일은 600만 명이나 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독일인들은 그 해결사로 히틀러를 선택했다. 그는 “내가 집권하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독일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외쳤다. 덕분에 1928년 의회 의석이 12석이었던 나치당은 1930년 104석으로 늘어나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런 히틀러의 선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다.
2024년 현재 부산은 노인 인구가 약 22%나 되는 초고령화 도시다. 지난 3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부산의 인구수는 328만 7292명이다. 전월 대비 2109명이 감소했다. 평균 연령은 46.8세이고, 도시의 절반이 50세 이상 중장년층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총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노인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 2035년에는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인구 3분의 1이 노인이라는 말이 된다. 더욱이 지역 대학을 졸업하고도 양질의 직장을 구하지 못해 매년 5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부산을 떠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부산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5년간 일자리·주거·문화 등의 분야에 약 2조 원을 투자해 “젊고 희망 있는 활기찬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구체적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열매만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당장에 해결책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 문제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자리 정책이란 일과성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 정책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된다. 제조업이 떠난 부산의 다음 먹을거리는 항만과 공항을 바탕으로 한 물류 산업과 문화 산업이라야 한다. 문화 산업 가운데 공공극장의 제작극장화는 많지 않은 비용으로 일자리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책이 될 수 있다. 문화의 창작(제작)-유통(매개)-소비(향유)가 집약되어 선진국과 같은 문화 산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연간 약 18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한다. 인구가 약 330만 명이나 되는 도시가 공공극장을 일자리 늘리고 사람 모으는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 고작 32만 명이 사는 독일 도시 만하임은 1년 예산 2조 원 중 약 640억 원을 투자하여 예술가 250명을 포함해 700명의 공공 일자리를 유지한다. 하물며 독일 중소도시 인구의 10배가 넘고 예산이 8배가 넘는 부산에서 전문화된 조직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공연장 가동률이 30%밖에 되지 않고, 장소나 임대하는 대관 사업이 공공극장의 주 업무로 전락해서야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공연 예술가들은 공연만으로 먹고 살 수는 없는가?
대한민국에는 127개의 지역문화재단과 267개의 문예회관이 있다. 공공극장은 공연을 예술적 상품만이 아닌 문화적 공공재로 보고 예술 공연을 제작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부산시는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준비를 위해 39세 이하 시즌 단원을 공모한다. 해마다 같은 일의 연속이다.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부산에서 집을 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 일자리를 예술과 문화에서 먼저 시작하자.
부산은 원래 역동적인 도시였다. 지금은 부산 물고기가 고향 물을 떠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다른 도시보다 부산이 먼저 문화적인 역동성을 보이자. 중앙정부가 못하면 지방정부부터 먼저 시작하자. 미래를 보는 일은 바로 눈앞의 열매만을 노리면 안 된다. 분야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으고, 멀리 보고 긴 호흡으로 설계하자. 그래야 세계 각지에서 예술 인재가 모이는 도시, 살고 싶은 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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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거대 양당제 고착화한 4·10 총선
이달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야당의 압승, 여당의 완패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전체 300석의 과반을 훨씬 넘는 175석을 차지했다. 조국혁신당 같은 범야권까지 감안하면 192석으로 늘어난다. 반면 여당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를 포함해도 108석에 그친다.
압도적인 성적표에 고무된 민주당은 총선이 끝난 지 보름도 안돼 또다시 절대다수 의석의 힘을 동원해 입법 독주 행태를 보인다. 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열어 민주유공자법 제정안과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도록 요구하는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전자는 ‘운동권 셀프 특혜’ 소지가 있어 여권은 물론 국민 상당수가 반대할 정도로 논란을 빚는 사안이다. 후자는 가맹점주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한 것으로, 본사·점주 간 이해관계가 첨예해 갈등 해소를 위한 숙의와 신중한 입법이 요구된다. 앞서 18일 본회의로 직회부된 양곡관리법 등 5개 법안에 이어 야당의 두 번째 단독 처리다. 민주당은 다음 달 30일 임기가 시작되는 22대 국회에서 논의해도 괜찮을 쟁점 법안들 통과를 21대 국회 막바지에 밀어붙일 태세다.
민주당은 입법 강행을 위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받들겠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여당의 무능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민주당의 승리로 귀결됐다는 분석은 맞는다. 하지만 야당이 확보한 의석만큼 국민이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해석하는 건 민의를 잘못 읽은 게다. 다분히 독선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전국 지역구 161석을 휩쓸게 지지한 유권자는 민주당 후보들에 투표한 50.45%다. 겨우 절반을 넘겼다. 이와 5.4%포인트 차이에 불과한 45.05%의 유권자는 민주당보다 71석이나 적은 90석을 얻은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표를 줬다. 민주당이 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만 당선되고 나머지 후보를 선택한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덕을 톡톡히 본 것뿐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총선 민심을 빙자해 입맛에 맞는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는 데 치중하며 여당과의 대화와 협치를 잊은 듯한 민주당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4·10 총선은 정치 개혁과 민생 안정을 외면한 채 여야 간 정쟁으로 일관해 정치 불신과 혐오감을 키운 정치권과 국회를 준엄하게 심판하지 못한 꼴이 됐다. 여야는 선거 과정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적 쇄신이나 유권자가 기대한 비전·정책 대결 없이 친윤석열·이재명계 후보나 부적격자 공천, 사생결단식 상호 비방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각각 180, 103석을 나눠 가진 21대 국회와 흡사한 구도를 만든 이번 총선으로 거대 양당제만 공고해진 셈이다.
거대 양당 간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지금 상태라면 22대 국회는 정쟁이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양당이 당리당략으로 사사건건 충돌하고 극단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일부 강성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오랫동안 대치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22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와 경제 위기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해외에선 국내 정치 분열로 인한 한국경제 기적의 종언과 인구절벽에 따른 국가소멸을 우려하는 시선을 보내는 터라 답답하기만 하다.
경제난과 민생고는 뒷전인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과 군소정당이 끼어들 틈이 없는 정치 양극화. 현행 소선거구제가 낳은 거대 정당제의 심각한 폐단이다. 소선거구제는 풍부한 인재풀과 자금력으로 당선자를 대거 배출할 수 있는 여당과 제1야당에 유리하다. 특히 이번 총선이 증명하듯 적은 득표 차이로도 큰 의석 차가 생길 수 있어 문제다. 부산의 경우 민주당은 18개 지역구에서 45%대를 득표하고도 1석만 건졌다. 이처럼 특정 권역에서 지역구 1위가 많이 나온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할 수 있어 특정 지역의 일당 지배체제를 초래하기 일쑤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보면 유권자들이 여당에 탄핵·개헌 저지선인 100석가량을 보장한 건 여야의 협치 노력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지 싶다. 야당은 기고만장하지 말고 여권은 겸허한 자세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국민 삶을 잘 챙기는 데 머리를 맞대라는 명령이다. 민주당은 무리한 입법 폭주를 멈추고 지역균형발전을 촉진할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산은법 개정안과 밀린 민생법안들부터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여야는 협치와 정치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소선거구제 개편을 적극 검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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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황금알을 낳던 거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최근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자조적 표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입지가 좋은 부산의 재개발·재건축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입주권을 따내기 위해 부동산마다 줄을 섰다. 입주 전에 추가 분담금을 조금 내더라도 집값 상승을 통한 이익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원자잿값이 크게 오르고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조합원들에게 갖은 혜택을 주겠다며 구애를 펼치던 시공사들은 태도를 싹 바꿨다. ‘우리도 남는 것 없으니,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싶으면 하라’는 식이다.
서울에서는 억 소리 나는 분담금 폭탄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진구 범천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은 기존 평(3.3㎡)당 539만 9000원이던 공사비를 926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문을 시공사로부터 ‘통보’ 받았다. 3년 전과 비교해 72%나 증액된 금액이다. 범천뿐만 아니라 부산 도심의 여러 사업장에서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갈등이 예고된다.
재개발·재건축 조합 입장은 난감하다. 매달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이자를 조합 돈으로 내야 하는데, 시공사와의 줄다리기가 길어질수록 손해는 조합원들에 쌓인다. 공사비 산정 기준을 명확히 밝혀달라는 조합 측 요구도 묵살되기 십상이다.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한다면 업체 입찰부터 산적한 단계를 새로 밟아야 한다. 새 시공사와 종전보다 저렴한 공사비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공사비 인상에서 시작된 갈등이 조합의 내홍으로 번지는 경우도 여럿이다. 이런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비화된다면 조합원들은 몇 년간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재건축 패스트트랙 등 각종 규제완화 조치를 발표하고 있지만, 분담금 폭탄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사회적 재난 수준의 물가 인상을 겪고 있는 시공사들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정부는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들의 갈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이 휘청이면 여파는 조합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이 급감하면 4~5년 뒤 시장에 풀리는 신규 아파트가 줄어들 게 뻔하다. 이는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부동산 시장은 극단적인 사이클을 그리며 요동치게 된다. 하루 아침에도 수천만 원씩 오르내리는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에서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부동산 폭등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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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새의 노래', 피스, 피스, 피스!
4월 26일은 역사 속에서 두 개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986년 오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1937년엔 스페인의 게르니카 폭격 사건이 일어났다. 오래전 마드리드의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왕비미술관)에서 ‘게르니카’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가로 7미터, 세로 3미터가 넘는 흑백 톤의 그림이 주는 힘은 압도적이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지 않았다면 1937년 4월 26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쿠데타로 집권한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내전을 벌여 권력을 잡았다. 1937년 오늘, 프랑코 측과 동맹을 맺은 독일의 콘도르 군단이 공화파의 거점 도시 게르니카를 융단폭격했다. 바스크 지방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는 28톤이 넘는 폭탄이 쏟아졌고 무수한 양민이 불바다 속에서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참담한 마음으로 ‘게르니카’를 완성해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했다.
프랑코 독재 정권에 저항한 예술가는 피카소뿐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첼로의 전설’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도 있었다. 게르니카 폭격을 감행한 후 프랑코는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고,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였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카잘스는 프랑스 남단의 프라드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음악회를 통해 스페인의 민주화를 호소했다.
카잘스가 앙코르곡으로 가장 사랑한 레퍼토리는 ‘새의 노래(El cant dels ocells)’였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민요를 편곡한 것으로, 우리나라 ‘아리랑’ 같은 정서가 담긴 곡이다. 3분 정도의 짧은 멜로디지만 고국에 대한 사랑과 세상의 평화를 염원한 카잘스의 상징적 노래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된 카잘스는 혼자서만 첼로를 연습할 뿐 무대에는 서지 않았다. 그런데 1971년 10월 UN 회의장에서 연주할 것을 요청받았다. 당시 95세의 카잘스는 연주 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 공식적인 연주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해야 할 것 같군요. 카탈루냐 민요 ‘새의 노래’를 연주하겠습니다. 카탈루냐 새들은 하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피스(peace), 피스(peace), 피스(peace)!’ 그것은 바흐와 베토벤, 모든 위대한 음악가들이 사랑하고 찬미해 온 멜로디입니다. 너무나 아름답지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은 ‘게르니카’ 같은 그림을 그려내고, ‘새의 노래’ 같은 음악을 남겨 놓는다. 그것은 어떤 말보다 오래도록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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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황매산 철쭉제
매년 이맘때가 되면 지천으로 피는 꽃이 철쭉이다. 산자락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선홍빛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철쭉은 그 색깔과 영롱함에 반할 수밖에 없다. 봄의 대표적인 꽃으로 분홍색, 빨간색, 흰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철쭉이란 어원은 중국에서 사용하는 ‘척촉(척촉)’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지나가던 사람이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가던 길을 더 가지 못하고 걸음을 머뭇거린다’라는 뜻이라고 전해진다.
철쭉 하면 떠오르는 여인이 수로부인이다. 〈삼국유사〉 헌화가에는 신라 성덕왕 시절 천 길 벼랑 끝의 철쭉이 아름답다고 하여 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로부인에게 꺾어서 바친 이야기가 나온다. 수로부인은 그 노인에게 “한 다발 꽃분홍 철쭉이 나를 부르네/ 아프고 괴로웠던 추운 시절 잊게 하네/ 암소 끌고 오신 이여/ 꽃 바친 그 정성으로 올해 농사 가물지 않도록/ 천지신명이여 굽어살피소서”라고 답가를 보냈다고 한다. 철쭉은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의 머리에 꽂는 꽃으로도 사용되었을 만큼 한민족과 오랫동안 함께했다.
꽃의 계절이다. 만개했던 벚꽃이 꽃비가 되어 흩날린 지 며칠 만에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다가왔다.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축제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먹고 마시는 축제부터 눈을 즐겁게 하는 꽃 축제까지. 영남에서 꽃과 관련한 대표적인 축제가 경남 산청 황매산 철쭉제다. 오는 27일부터 5월 12일까지 산청군 차황면 법평리 황매산 일원에서 열린다. 태백산맥의 마지막 준봉으로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황매산에는 5월 초부터 철쭉이 산상 화원을 이룬다. 황매산 해발 800~900m의 평원에 철쭉이 만개한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올해 철쭉제 주제는 ‘산청, 철쭉에 물들다’이다.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어느 가수가 “바람의 향기 불어와 철쭉 꽃비가 내리면/ 그 옛날의 사랑이 그리워지네/ 나 그곳에 가리라/ 옛사랑의 추억을 찾아서/ 이렇게 그리운 밤에는 철쭉 꽃비가 내린다”라고 열창했다. 철쭉은 향기가 없지만, 그 가수에게는 바람에 실린 사랑의 향기가 느껴졌나 보다. 철쭉이 피는 이 계절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 철쭉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기억을 통해 우리네 신산한 삶에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번 황매산 철쭉제에서 모처럼 사랑도 고백하고, 철쭉의 선홍빛에 물드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꽃처럼 잠시라도 해맑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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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외국인 유치로 인구 위기 극복을
대학의 취업률은 공식적인 대학평가뿐만 아니라 대학 인지도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에 힘입어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널리 알려진 기계과에서도 코로나 팬데믹의 특수한 기간 동안 학생 취업이 저조하여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취업률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나 눈에 띄는 변화가 발생했다. 이전에 비해 대기업, 반도체, 이차전지 관련 기업을 비롯한 고성장 신생기업 등에 취업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올라갔다. 전문대학 졸업자의 급여도 높아졌고 복지와 근무 환경도 기존 취업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기업으로의 취업 비율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겉으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려스러운 면이 존재한다. 근래 대학이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구 감소와 이공계 기피 현상이 겹쳐 기계 전공의 학과들은 가혹한 신입생의 급격한 감소를 겪었다. 입학생이 감소하니 배출되는 졸업생의 숫자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처우와 근무 환경이 양호한 대기업, 신성장 기업 쪽에서 먼저 졸업생을 채용해 가다 보니 대기업, 우량기업 취업 비율이 갑자기 상승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지역의 중소기업 취업률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출생아 수의 감소가 교육계의 학생 감소, 제조 산업의 인력난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나타난 결과이며 인력 공백을 메우지 못하게 되면 결국 산업생태계의 붕괴로 인한 국가경쟁력의 추락을 맞을 수밖에 없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정부도 대학도 대학구조개혁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느 정도 대비해 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학의 신입생 감소는 몇 년 뒤에 졸업생 수의 감소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산업현장이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중소 제조 산업체의 상황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 심화한 대기업 선호 현상과 겹쳐 구하기 어려운 청년 인력은 중소기업에서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되어버렸으며 구인을 포기하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푸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출생아 수가 더욱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는 대한민국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인구의 흐름은 수많은 사회적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그 추세가 이른 시일 내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연간 출생아 수가 20만 명 초반대로 추락한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인구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국인 출생아 증가를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당장 시선을 해외로 돌려야 한다.
이미 인력 부족으로 위기에 몰린 산업체들이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신입생 충원 미달로 위기에 직면한 많은 대학이 앞다투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외국인으로 빈자리를 채운 산업현장이 돌아가고 비어있던 대학 강의실이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워져서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반가운 활력이 당장 눈앞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잘 자리 잡아서 정주할 수 있도록 정부 지자체, 민관이 함께 포용 문화 확산, 외국인 친화적인 생활환경 조성 및 각종 법률 제도적 장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왕에 외국인을 국내에 유입해야 한다면 가능한 건전하고 우수한 외국인들을 국내로 유입하도록 해야 한다.
외국인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될 때 우수한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선택하여 정주하게 될 것이고 인구감소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며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우리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시의적절하게 잘 준비된 외국인 유입 방안을 구축하여 머지않아 미래에 대한민국이 인구감소 위기를 벗어나 국가경쟁력이 더욱 높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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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억에 관한 단상
불현듯, 누군가 생각날 때가 있다. 부지불식간에 연락이 끊겼거나 어떤 이유로 관계가 소원해졌거나, 혹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와의 추억을 아련히 떠올리다 보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게 혼자 실컷 감상에 젖다가 돌연, 이런 생각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나만 기억하고 청승 떠는 게 아닌가?”
이런 유치한 생각을 떠올렸던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학창 시절에 꽤 어울려 다녔던 친구가 있었다. 우연히 친구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친구의 경조사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다 그렇듯 우린 술잔을 기울이며 학창 시절 추억을 되씹었다. 소위,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는 식이었다.
근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당황스러웠다. 내 딴엔 소중했던 추억을 떠벌리고 늘어놓았는데 정작 그 친구는 그 추억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방학 때 친구가 나에게 쓴 편지 내용이라든지, 여학생 앞에서 부끄럼이 많았던 친구를 놀렸던 나의 장난, 혹은 그가 입영하기 전, 늦도록 함께 술 마셨던 날도 기억하지 못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지만, 솔직히 상처받았었다. 그의 기억에는 내가 함께 어울려 다녔던 친구가 아니었다. 인생의 한순간을 함께 했음에도 가볍게 잊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생각이 들자 묘한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다. 물론, 기억 못 한 친구를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내 잘못도 아니었다. 아니, 잘못을 따지는 번지수부터가 틀렸다.
나 또한 어떤 사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던가. 각자의 의미에 따라서 다르게 기억하는 게 오히려 당연했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 친구는 나름의 의미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억과 다르다는 이유로 섭섭하게 여긴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가거든’이라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 삶이 다하고 나야 알 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이 가사를 되뇌면 왠지 가슴이 시큰해진다. 나도 이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사라졌는데,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다니…. 누구라도 나를 그렇게 기억해 준다면 내 삶은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내 삶이 다하고 난 뒤,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 자체를 나는 어떻게 알까? 죽음에 임박해서 내 삶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고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내 삶의 가치를 타인의 기억으로 판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내가 잊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역이지 내 삶의 가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그 사람이 안타까워할 일이다. 그의 삶에서 누군가를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기억에 남기 위해 애쓰는 것은 공허한 욕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낼 뿐이다. 그래서 기억되길 바라는 삶보다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삶이 더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리워하고, 추모하고, 기억해야 할 누군가가 많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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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침체일로 부산 산단 체질 개선해 신성장동력 돼야
한국 경제의 한 축이자 기둥인 부산의 국가산업단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산단 곳곳에는 공장 매매·임대 스티커가 즐비하고 입주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기업들의 폐업도 줄을 잇는다. 지역 산단 전체 고용 인원은 1년 만에 2000여 명이 줄었다. 전국의 국가산단 평균 가동률은 84.1%지만, 녹산산단 가동률은 겨우 74.1%에 머무는 수준이다. 5년 전에 비해 녹산산단 입주업체는 114곳이 감소해 텅 빈 공장이 많은 상태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 신호다. 이는 부산 전 지역 산단 모두가 처한 상황으로 제조업 중심의 산단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산단은 부산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근간이다.
지역 산단에서 확인되는 현장의 몰락 정도는 심각하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조선기자재와 기계 생산업체 밀집 지역인 부산 강서구 녹산산단 한 골목에선 기계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고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고 한다. 경기 상황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기업 자체적으로 혁신을 꾀하기도 힘들고 연구 개발할 고급 인력 수급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산단을 나가려는 기업은 있어도 입주하려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든 이유기도 하다. “조선기자재 업체였는데 지금은 나가고 공장 대신 냉동창고로 쓰이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한 직원의 말은 지역 산단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활력 잃은 산단은 비단 녹산만이 아니다. 신평장림산단, 회동·석대도시첨단산단, 반룡산단 등 부산 지역 산단 전체가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신평장림산단은 오후 5~6시만 되면 산단 내 모든 공장의 불이 꺼지고 적막감만 감돈다. 지난해 3분기 누계 수출액은 21.3%나 줄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부산 산단 특성상 산단 입주기업 상당수가 원자재 가격 상승, 대출 이자 상승을 버텨낼 체력이 바닥났다고 분석한다. 부산 산단 27곳 중 20년 이상된 곳이 8곳에 달하고, 중장년 인력 중심의 ‘늙은 산단’이 돼버린 것도 문제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 산단이 무너지면 부산의 미래도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서 침체의 늪에 빠질 순 없다. 부산 산단의 산업 다각화는 위기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돼야 한다. 산업 경쟁력의 기반인 산단을 미래형으로 바꾸는 ‘산단 대개조’가 필요하다. 외곽에 산단이 몰려있는 데다 특정 분야에 집약된 부산 산업 구조상 글로벌 위기가 닥쳤을 때 산단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부산 기업들이 첨단 산업 등 신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후 산단의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 지역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고급 인력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산학은 물론 부산시와 기초지자체도 적극 협력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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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빈집 해결 나선 영도구, 원도심 활력 제고 성과 내길
주거지 내 공·폐가는 도시의 활력과 매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치안과 위생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흉물로 장기간 방치된 건물은 외벽이 무너지거나, 안팎에 쓰레기가 쌓여 있기 일쑤다. 우범 지대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빌리자면, 동네에서 몇 곳으로 시작한 빈집이 방치되면 어느샌가 슬럼가로 변모할 수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부산 동·서·영도구뿐만 아니라 부산진구 등 산복도로를 낀 고지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부산 영도구가 빈집을 매입해서 정비한 뒤 주민에게 돌려주는 데 사용할 기금 마련에 나선 것도 같은 문제의식의 일환이다.
‘빈집 기금’을 전국 처음으로 마련해 폐가 문제에 적극 대응한 부산 서구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서구는 2021년 도시재생·빈집정비기금 30억 원을 확보해 1000곳가량의 공·폐가 중 100곳을 정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무단 투기 쓰레기 더미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악취·해충으로 고통을 주던 흉측한 공간이 주민 쉼터로 재탄생했다. 치안 사각지대는 밝은 LED 조명과 함께 순찰차 전용 주차장이 설치돼 여성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빈집 정비 사업으로 정주 환경이 개선되면서 마을 분위기가 밝게 바뀐 것이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또 영도구 등 다른 기초지자체들에 좋은 선례가 됐다.
영도구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0%를 넘은 초초고령화 지역이다. 젊은 세대의 유출과 맞물리면서 ‘나 홀로’ 노인과 공·폐가가 동시에 급증하고 있다. 영도구도 버려진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빈집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소유주의 동의를 받아 구청 예산으로 철거하고 3년간 빌려 쓰던 기존 정비 사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지역 내 빈집이 지난해 1147곳에서 올해 1339곳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도 ‘매입 후 개발’로 방향을 튼 계기다. 폐가를 주민 편의·공공시설로 바꾸는 영도의 ‘빈집 기금’ 사업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원도심 재생 사례가 될지 기대된다.
부산시는 올해 ‘부산형 빈집 정비계획’을 마련하고 16개 구·군 빈집 1만 1000여 곳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 다만 무허가 주택은 통계에 잡혀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실태를 밝힌 다음 부산시가 내놔야 할 것은 효율적인 활용 방안이다. 텃밭, 돌봄센터, 도서관, 취약 계층 임대 주택 등 선택지를 다양화해야 한다. 버려진 빈집을 자원으로 활용한 창의적인 사례도 참조해야 한다. 충북 충주의 관아골은 빈집을 저렴하게 고쳐 쓸 수 있게 젊은 층에 제공해 인구 유입과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다. 부산도 영도·서구의 경험을 더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그게 원도심이 활력을 되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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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4월 20일은 무슨 날이었을까요?
4월 2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장애인의 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유엔은 1981년에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면서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 모든 국가가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에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했죠.
왜 4월을 '장애인의 날'로 선정했을까요? 봄이 시작되고, 4월이 1년 중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부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의 날을 지나면서 장애인들 곁을 묵묵히 지키는 분들이 생각납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은 조창용 부산시장애인총연합회 회장입니다. 그는 50년간 장애인복지운동가로 활동하며 20년 가까이 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장애인 곁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다음은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이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입니다. 지난 15일 부산상의 회장 취임식을 가진 그는 그 다음날인 16일 공식행사로는 처음으로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장애인 한마당 축제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날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를 외치며 장애인들과 초긍정 에너지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강충걸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회장의 숨겨진 공로와 선행까지 언급했습니다.
그가 밝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2023 부산세계장애인대회'를 유치했지만 대회 경비가 문제였습니다. 이의 해결을 위해 강 회장이 나서 양 회장과 이경욱 (주)참콤 회장과 함께 1000만 원씩을 기부했습니다.
이게 단초가 돼 강의구 부산영사단 총영사단장이 2000만 원을 기부했고, 이어 최금식 부산사랑의열매 회장 등이 주도한 '나눔명문기업' 15곳에서 1억 3000만 원을 지원해 대회가 성공리에 끝날 수 있었습니다.
강 회장은 지난 40년간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전면허 취득·정보화 교육, 시 낭송 아카데미와 전국 장애인 시 낭송 경연대회, 장애인 가족사랑행복나눔대회, 자기계발 '영혼이 춤추는 도서관' 운영 등을 하고 있습니다. 202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차별과 맞서 싸우는 40대 '여전사'도 있습니다. 부산 유일의 뇌병변 장애인 복지관인 '부산뇌병변복지관' 이주은 관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30년간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뇌병변 장애인 복지관을 13년째 혼자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지난 16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동네 이웃과 장애인을 초대해 '우리마을로 온 영화관'을 열었습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주민 등 900여 명을 초대, '동네 축제'로 만드는 등 장애인과 이웃이 함께 하는 행사를 만들어 지역 통합과 차별 해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희망을 전하는 부산 금정구 이지투게더 안미경 대표도 '작은 거인'입니다. 그는 이지특수교육연구소와 비영리단체인 이지투게더에서 '이지글리 합창단'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탈리아 바티칸 성당에서 미사 공연 초청을 받아 발달장애인 13명을 무대에 세웠습니다. 성당 공연에 이어 로마에서도 두 차례 공연을 더 열었고, 발달장애 예술인의 그림 전시회도 가졌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제는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마음 문을 열고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을 후원하는 이들은 '앞으로 몇 년이나 봉사를 더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가득합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까지는 끝까지 봉사하겠다"는 하나같은 다짐에 또 감동합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이 세상에는 장애인은 없다. 다만 편견만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뿐 아니라 내 가족 누구라도. 우리는 일시적 비장애인일 뿐입니다. 장애인을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보고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제도와 교육 등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1년 365일이 장애인의 날이자 비장애인의 날이 되길, 오랜 시간 장애인과 함께 해온 모든 분들과 함께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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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퇴계, 향산, 양산
지난 총선 때 한 후보가 자신의 저서 중 퇴계 이황의 사생활 관련 표현이 문제가 돼 곤욕을 치렀다. “감히 퇴계를 모독하느냐”며 유림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공맹에 견줘 이자(李子)로 칭송되는 성인을 폄훼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실 퇴계가 대학자이자 민족의 사표라는 데 이론을 달 이는 별로 없다. 더구나 그는 매서운 절의(節義)를 가진 선비이기도 했다. 초야에서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한 은인(隱忍)의 학자로 흔히 알지만, 이는 퇴계의 절반만 아는 것이다.
그의 본래면목이 잘 드러난 시가 ‘절죽(折竹·꺾인 대나무)’이다. ‘강항오조좌(强項誤遭挫·굳센 목덜미가 잘못 꺾어져도)/ 정심비소파(貞心非所破·곧은 마음이 깨지는 것은 아니어라)/ 늠연립불요(凜然立不撓·늠름히 서서 흔들리지 않으니)/ 유감격퇴나(猶堪激頹懦·오히려 무너지고 나약한 자를 격려한다네).’ 퇴계가 63세 때 지은 이 시에는 어떤 어려움에도 절의를 지킨다는 선비의 의연한 기상이 갈무리돼 있다.
퇴계의 절의는 대를 이어 전해졌고, 그 절정이 11세손 향산 이만도(1842~1910)다. 어려서 퇴계학을 전수받은 향산은 평소 선비로서 뜻 세움을 중히 여겼다. “뜻을 세우는 건 가슴에 대못 박는 것과 같아서 한 순간이라도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의 부친도 마찬가지여서, 향산이 25세에 장원급제하자 “조정이 너를 죽을 자리에 두면 반드시 죽음으로써 선비의 책임을 다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자 향산은 고향 안동으로 돌아가, 퇴계가 그랬던 것처럼, 후학 양성과 학문에 몰두했다. 이후 일제의 침략에 저항해 의병을 일으켰던 그는, 1910년 한일병탄이 발표되자 “죽음 말고 무엇이겠는가”라며 24일간의 단식 끝에 순절했다. 안타깝게도 향산의 순절은 당시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향산이 선비로서 보여준 삶과 죽음은 망국지경에서 지식인의 선택과 결단이 어떠해야 하는지 숙고하게 만든다. 그의 자취를 좇아볼 법도 한데, 마침 양산시립박물관에 좋은 기회가 마련됐다. 26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리는 ‘양산군수 특별전’이다. 조선시대 양산에 부임해 칭송받은 역대 군수들의 면모를 소개하는 전시인데, 대상에 향산이 포함됐다. 향산은 1876년 양산에 부임해 목민의 의무를 다했다. 전시를 찾는다면 향산의 절의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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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몸
이동욱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주재료인 폴리머클레이, 흔히 ‘스컬피’라고 말하는 재료를 이용해 정교한 인체 조각을 만든다.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그리는 것보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조각작품을 통해 생명을 표현하고 인간의 존재성을 강조한다.
‘Human Boss’, ‘Green Giant’, ‘Dolphin Safe’ 등 초기 작업에서는 제품이미지 속의 캐릭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 되어가는 오브제로 묘사했다.
이 작품들은 기술적으로는 치밀하고 섬세하지만, 내용은 자기파괴적이고 자기착취적인 작업으로 사람과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자본에 대한 잔인한 낙관주의를 보여주었다. 당시 작품들은 몸에 털이 하나도 없는 기괴하면서도 주변의 상황에 연약하고 예민한 살덩어리를 그대로 노출시켜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렬한 존재로 보였고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자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이상하고 불편한 감정을 자극했다.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 〈무제〉(2016)는 초기 인체 작업에서 범위를 확장시켜 작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공간까지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체인과 벌집, 파이프,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 피규어 등 모든 세계는 싸구려 도금이 되어 있지만 엄청난 크기의 비계를 운반하며 노동하는 작은 인간만은 벌거벗은 살색이다.
이렇게 상세하고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제목이 무제( 無題 ,untitled)인 것은 작가는 세계를 창조했지만 그것을 읽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작품의 의미는 관람자의 자기반영성이 동력이 되어 작동되기 때문에 각자의 시공간이 바뀌는 어느 날이 되면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총, 칼을 들고 감시하는 군인들은 폭력적인 권력과 규율을 상징하며 파이프를 들고 나르는 저 작은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도 무너지기 쉬운 계급이면서 노동이 주는 젖과 꿀과 고통을 아는 존재들이다.
불균등한 관계 속에서 목숨을 건 절실한 일을 하는 자들의 세계. 작가는 자신은 항상 ‘흥미’, ‘취향’에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만든 세계는 우리에게 사회의 균열에 대해 무거운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러니 작가가 만든 저 익명의 불완전한 몸들은 미국의 미술사가 아멜리아 존스(Amelia Jones, 1961~)의 설명처럼 세계와 연결되는 ‘살’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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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즐겁고 맛있는 도시 부산
요즘 전국적으로 경기가 한산해진 느낌이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산 관광 러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2007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대한민국은 의료관광이라는 융합 관광에 관심을 가졌다. 의료관광은 동남아시아 관광의 메카였던 싱가포르와 태국이 관광 목적지로서의 수명이 다해가자, 관광 재도약을 위해 내걸었던 상품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의 의료관광이 전문 의료관광과 뷰티관광으로 갈래가 나누어져 태국 현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구분되어 성행하고 있다. 이때 의료관광과 함께 주요 콘텐츠였던 의료기관들에서 성행했던 것이 인증기관 평가였다. 그중에서도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국제 인증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1호로 받으면서 국내 병원 간에 국제 인증 붐이 불었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의료기관 평가를 강화하여 새로운 인증 기준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인증 붐이 외식 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라고 하는 레스토랑 전문잡지가 선정하는 레스토랑 평가 브랜드이다. 레스토랑 평가 인증은 미쉐린 가이드의 훌륭한 브랜드 비즈니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219개, 부산은 11개의 레스토랑이 선정되어 있다. 미쉐린 측은 미스터리 쇼핑을 통해 식당의 분위기나 서비스는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요리만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계약직 전문가를 고용하여 1년간 5~6차례 방문한다고는 하지만 요리를 평가 환경에 적합하도록 세팅된 곳에서 일괄적 평가를 하거나 전문가의 평가 센서가 철저히 분리 평가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은 이상 객관적인 평가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의료기관 인증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JCI 인증을 받기 위해 국내 대형 병원들과 전문병원들은 미국 본사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국내 의료기관 인증평가 제도가 발전되면서 의료기관의 서비스와 질도 함께 향상돼 해외인증 붐은 사라졌다. 외식 산업은 어떨까? 2016년 서울, 2024년 부산에서 시작한 미쉐린 가이드가 호텔 인증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힘입어 부산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음식관광에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부산의 대표 음식하면 밀면, 돼지국밥, 부산어묵 등 단품 음식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관광 트렌드는 단체 여행에서 개인 여행으로, 방문 목적지 여행에서 콘텐츠 체험 여행으로 변화했다.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고, 음식은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부산 음식, B-푸드(Food) 개발에 힘쓰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러한 콘텐츠가 수익성을 내기 위해서는 단품이 아닌 부산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음식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은 단지 코스 요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 문화와 교육적 인프라까지 포함한다. 외식 산업 측면에서 음식관광에 대한 산학연 및 지자체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이 한식 명품 요리의 대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인적 발전 기반도 갖추어야 한다. 부산을 세계적인 조리학교의 메카로 만들면 어떨까. 전국에는 120여 개, 부산에는 6개의 조리 전공을 가진 특성화 고등학교가 있다. 대학 교육이 특성화 교육으로 전환되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고등학교 교육 콘텐츠도 경쟁력을 갖출 시기다. 프랑스 요리전문학원 ‘르 꼬르동 블루’는 이미 서울에서 아카데미를 하고 있으니, 부산은 미국 뉴욕의 조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함께 새로운 B-food 문화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부산 영산대에는 CIA 출신 셰프 교수진과 대한민국 조리 명장들이 포진하고 있다. CIA 출신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부산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CIA를 부산으로 유치하고 부산이 가지고 있는 한식, 해양, 부산 음식의 특성을 가지고 새로운 부산 음식, 대한민국의 새로운 한식 산업의 기초를 마련해서 한식의 세계화를 부산에서 시작해 보자.
미쉐린 가이드 레스토랑 인증 브랜드에 못지않은 한국 외식 산업에 좀 더 특화된 브랜드 인증평가 제도를 CIA와 함께 개발하고 해외 조리학교에서 아직 과목으로 등록되지 않았던 한식 조리를 부산에서 교과목으로 개발하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식 조리 프로그램이 세계적인 교과목이 되는 순간 미국 조리학교로 유학 가던 아시아의 초보 셰프들도 부산으로 향하게 되고, 세계적인 셰프를 꿈꾸는 청년들도 부산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부산을 새로운 음식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준비가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관광객을 부산으로 유입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