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2025-05-22 17:19:10
미국의 태평양 시대 선언과 대중국 견제, 러시아의 동진으로 인한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 패권 질서 재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그 중심부에 진입할 수 있을까?
‘공대의 경제학자’, ‘국가 미래 전략가’로 불리는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는 “북극항로를 선점하고 거점항구를 확보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린다. 과학기술, 경제학, 역사학을 넘나들며 인류문명의 발전과 쇠퇴에 관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해 온 저자는 지구온난화로 열리게 될 북극항로가 단순한 물류 혁신을 넘어 대한민국이 세계 패권 질서의 중심으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임을 이 책을 통해 역설한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로, 현재 세계 해운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수에즈 항로에 비해 30~40퍼센터 이상 항해 거리 단축이 가능하다. 항로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려면 반드시 배가 정박하고 머물 수 있는 거점항구를 보유해야 한다면서 항로 위의 물류 흐름에 단지 ‘편승’하지 않고 물류의 생산과 환적을 통해 항로를 ‘지배’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어 유럽에서 러시아 영해를 따라 베링해협을 거쳐 캄차카 반도 남단을 지난 동해와 대한해협을 거치며 한반도 동남단을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한반도의 부산·울산·경상도 지역은 북극항로가 개통될 경우 전략적 거점 항구가 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타고 났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극항로 주도권 확보에 나선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부산항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면서 부울경 전체가 하나의 첨단 산업 메가 클러스터로 기능해야 한다고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려수도를 따라 한반도 남단에 말라카 해협의 금융거점인 싱가포르 같은 금융 중심 도시를 새로 건설할 수 있고, 쇠퇴하기 시작한 홍콩·마카오를 대신할 상업·위락 중심지를 유치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다만 부울경은 경제와 산업이 침체되고 청년들이 떠나면서 활력을 잃고 있다면서 북극항로 거점항구로 발전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부울경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와 동시에 북극항로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국가인 미국과 러시와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주요 국가를 국력과 전략적 위치에 따라 1~5군 국가로 분류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강소국이 필승하기 위해서는 ‘1+3+5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1군)과 한국(3군), 러시아(5군)가 협력하는 1+3+5 전략, 이른바 ‘한·미·러의 합종’이 한국 외교의 대원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북극항로 거점 항구 확보도 지금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게 될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북극항로의 개통과 한미러의 합종 같은 민족사적 기회는 천 년에 한 번 오기 힘든 마지막 기회라면서 국가 발전 원리에 입각한 필승전략을 세워가자고 제안한다.
김태유 지음/서울대출판문화원/224쪽/1만 8000원.